프로스포츠 ‘한 해 농사’ 이들에게 달렸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12.1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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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 시즌에 주목되는 스카우터의 세계 / 한순간의 판단이 10년 에이스 잡거나 놓치거나

ⓒ일러스트 허경미


2006년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2차 지명이 실시되던 2005년 8월31일. 신인 드래프트가 열린 한국교육문화회관은 그 어느 해보다 열기가 넘쳤다. 2차 지명 대상으로 나온 류현진, 나승현, 손영민, 강정호, 황재균, 차우찬, 배장호, 민병헌 등은 현재 프로야구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1차 지명에서 선택받은 기아 타이거즈 한기주, 한화 이글스 유원상, SK 와이번스 이재원 등에 버금가는,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차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롯데는, 광주일고를 황금사자기 우승과 봉황대기 준우승으로 이끈 나승현을 선택했다. 동산고 좌완 에이스 류현진은 연고팀 SK에 이어 롯데로부터도 버림받고 2순위 지명권을 가진 한화 품에 안겼다. 이런 류현진이 이후 데뷔 첫해 다승·방어율·탈삼진 3관왕을 거두고 신인왕과 정규 리그 MVP,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싹쓸이했다. 나아가 WBC와 베이징올림픽에서 주전 투수로 맹활약하는 등 지금까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최고 투수로 군림하고 있다.

롯데 팬들에게는 ‘천추의 한’으로 남을 이 순간은 스카우터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순간이기도 한다. 스카우터는 신인 선수를 지명하거나 해외에서 용병을 수입할 때 판단 근거가 되는 데이터와 평가 자료를 작성하고 현장에서 직접 영입 작업에 나서는 사람들을 말한다. 스카우터 판단 하나에 10년 에이스를 잡을 수도 놓칠 수도 있다.

1년 중 스카우터에게 가장 중요한 일정은 신인 드래프트이다. 이 하루를 위해 스카우터는 1년을 쉬지 않고 준비한다. 8월에 실시되는 지명이 끝나면 다음 해 대상이 되는 선수들의 리스트를 정리한다. 좋은 기량을 보여주었거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선수들을 포지션별로 나누고 기록과 함께 현장에서 메모했던 사항들을 정리한다. 1, 2학년이 주축이 되는 추계대회에서 3학년에 밀려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던 선수들을 발굴하는 작업도 한다. 겨울에는 제주도나 남해 등 따뜻한 지역에서 펼쳐지는 전지훈련을 살펴본다. 반복적으로 경기를 보면서 5백~6백명 되는 고등학교 선수들의 데이터를 계속 보충한다. 이러다가 고교 야구 시즌이 시작되면 가지 치기에 들어간다. 영입할 선수들을 골라내서 우선 순위를 정하고 구단에 필요한 포지션이 있을 때는 더욱 정교하게 분석한다.

판단 기준을 만들고 구단 관계자를 설득하기 위해 구속을 측정하는 스피드건, 주력을 측정하는 초시계, 기록하기 위한 캠코더와 노트북 등은 스카우터가 반드시 휴대해야 하는 필수 장비이다. 그래도 장비보다 중요한 것은 선수를 보는 눈이다. 투수는 제구력이 있는지, 구속은 얼마인지, 어떤 변화구를 던질 수 있고 각은 어떤지를 본다. 타자는 멀리 칠 수 있는지, 맞히는 재주가 있는지, 발은 빠른지가 관심 사항이다. 투수와 타자 모두 경기 운영 능력과 대담성을 가지고 있어야 좋은 평가를 받는다. 두산 베어스 스카우트팀 김현홍 부장은 “공격력보다 수비와 기본기가 중요하다. 공을 맞힐 줄만 알면 공격력은 프로에 와서 키우면 된다. 몸 밸런스, 어깨, 수비력을 먼저 고려하지 고교 시절 타율이 좋다고 뽑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현재의 기량보다 발전 가능성을 중시

현재 보여주고 있는 기량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발전 가능성이다. 스카우터가 구한 ‘원석’을 잘 깎아서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몫이다.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인성이다. 김현홍 부장은 “실력이 조금 모자라지만 인성이나 근성이 낫다고 판단되면 그 선수를 선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올 시즌 1순위로 뽑은 2m7cm의 장신인 좌완 장민익 선수는 5년을 보고 있다. 당장 쓸 수 있는 선수도 급하게 쓰면 망가지는 경우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몇 년 전부터는 어떤 용병을 영입하느냐가 신인을 지명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해졌다. 신인 지명이 10년 미래를 좌우한다면 용병 영입은 1년 농사를 좌우한다. 선발 투수 원투 펀치를 용병으로 구성해서 우승까지 이루어낸 기아와 1년 내내 용병 문제로 골머리를 썩어온 두산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2군 선수 기록까지 충실히 정리되어 있는 메이저리그 홈페이지는 용병 영입에 중요하게 사용되는 데이터이다. 하지만 직접 보지 않고 기록과 경력만으로 용병을 수입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눈으로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용병 담당 스카우터에게는 중남미에서 윈터 리그가 벌어지고 있는 요즘이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대부분 프로구단들이 중남미 리그에 스카우터를 파견했다. 도미니카를 위시한 중남미 리그에서는 트리플A, 더블A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 메이저리그 소속이지만 40인 로스터에 들지 못하고 리그에서 많이 못 뛴 우수한 선수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김현홍 부장은 “실력만큼 적응이 중요하다. 한국 음식에 거부감이 없고 국내 선수들과 잘 어울려야 한다. 용병 중에서는 우월감을 가지고 국내 야구를 무시하는 선수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거의 실패한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LG 트윈스 김진철 스카우트 팀장은 국내 야구 스카우터의 대명사 같은 인물이다. 1989년 태평양 돌핀스에서 시작해 올해로 21년째 스카우터 일을 하고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 원년 멤버였던 그는 프로야구 선수 출신 스카우터 1호이기도 하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 박재홍, 김수경, 조용준, 이동학, 오재영 등 신인왕만 다섯 명을 배출해 스카우터의 중요성을 국내 야구에 각인시킨 주인공이다.

스카우터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나?

국내 프로구단이 적게는 두 명, 많게는 다섯 명까지 스카우터를 확보하고 있다. 스카우터를 확보한 구단이 유망주를 뽑는 확률이 높아지면서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스카우터를 스카우트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스카우터가 갖추어야할 조건은 무엇인가?

스카우터는 구단의 전력을 가장 많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스카우터로서 위기의 순간은 언제였나?

정민태와 권명철이 나왔던 1992년 태평양의 선택은 정민태였다. 그런데 정민태가 부상으로 오랜 시간 재활에 전념한 반면, 권명철은 베어스에서 첫해부터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구단으로부터 압박이 심했다. 정민태가 재기에 성공하고 최고 투수로 자리 잡으면서 그런 시선은 사라졌다.

고교 야구에서 나무 배트를 사용하는 것이 스카우터에게는 어떤가.

우리 입장에서는 환영이다. 알루미늄 배트는 반발력이 좋아 타격 능력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배트 스피드와 손목 힘이 동반되지 않으면 나무 배트로 좋은 타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나무 배트를 사용하면서 투수를 지원하는 선수가 늘어났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자신에게 맞는 포지션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고교 선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포지션이 포수인데, 스포트라이트는 덜 받을지라도 체력 관리만 잘 하면 가장 오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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