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돌봐주는 정권 실세 있나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9.12.0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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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률 전 청장에게 제기되는 네 가지 의문점 / 인사 로비 의혹·‘기획 출국’ 여부 등 여전히 안갯속에

▲ 그림 파문으로 사퇴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서울 국세청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직원들과 기념 촬영을 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다시 ‘정국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안원구 전 서울청 세원관리국장이 연이어 폭로하고 있는 각종 의혹의 중심에 그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갑작스레 미국에 간 뒤 두문불출해 온 한 전 청장이 직접 해명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뉴욕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그는 ‘음해성 거짓말’이라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한 전 청장의 지난 행적에 얽힌 의문 중 상당수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01 실세에게 인사 로비 실제로 있었나

인사 로비 의혹부터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학동마을 그림 로비’의 경우 의혹이 제기된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검찰 수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오히려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양상으로 퍼지고 있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 이외에 로비 대상이 더 있다는 소문과 함께, 현 정권 실세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안씨가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을 만나 한 전 청장의 유임과 관련한 이야기를 했다는 주장은 이러한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안씨의 부인 홍혜경씨가 한 전 청장이 재임 당시 남편에게 차장 자리를 제의하면서 ‘정권 실세에게 갖다 줄 10억원 중 자신이 7억원을 할 테니 3억원을 만들라’고 요구했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한 전 청장의 말은 다르다. 그는 “잘 알지도 못하는 부하 직원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얼간이가 있을까”라고 반문하면서 ‘3억원 요구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또, 청장 유임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로비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하지만, 한 전 청장의 해명만으로 의혹이 해소되지는 않고 있다. 노무현 정권 때 임명되었다는 약점이 있는 그가, 유임되기 위해 엄청난 로비를 벌였다는 것은 당시 정·관가에 널리 알려진 일이었다.

02 태광실업 세무조사는 표적 세무조사였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가 정당했는지 여부도 명쾌하지가 않다. 박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최종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겨냥했고, 이로 인해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서울청 조사4과가 부산까지 내려가 조사한 사실과, 그 결과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는 주장이 ‘표적 조사’의 근거로 제시된다.

여기서도 말이 엇갈린다. 안씨는 한 전 청장이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청와대에 직접 보고하는 자리에 자신도 있었다고 밝혔다. 반면, 한 전 청장은 그런 보고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태광실업 세무조사에 대해서도 자신이 시킨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사실 여부를 밝히기 위해서는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한 전 청장을 빨리 귀국시켜 조사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03 한 전 청장의 미국행은 기획 출국이었나

한 전 청장의 미국행도 의문을 낳고 있다. 그는 청장 자리에서 물러난 지 두 달여가 지난 3월15일 돌연 한국을 떠났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당시 진짜 출국 배경은 따로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당시 상황이 그렇다. 인사 청탁 로비 혐의로 검찰 조사가 예상되던 때이다. 공교롭게도 박연차 전 회장의 정·관계 로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하던 시기와도 맞물린다. 당시 소문으로 떠돌던 ‘박연차 리스트’에는 지난 정권뿐만 아니라 현 정권 인사도 다수 거론되었다.

여권의 유력 인사들이 박 전 회장에 대한 조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도 불거졌고, 이는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한 전 청장이 출국한 지 1주일 만에 관련 혐의로 검찰에 체포되었다. 여기에 이대통령의 대학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의 이름까지 거론되어 현 정권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이 시점에 관련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을 법한 한 전 청장은 국내에 없었다.

여권의 핵심부와 협의 후 미국으로 떠났을 것이라는 이른바 ‘기획 출국’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 (왼쪽)지난해 11월18일 박연차 전 회장이 운영하던 김해시 소재 ㈜태광실업에서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오른쪽)지난해 5월16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세무서장 초청 만찬에서 당시 한상률 국세청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왼쪽), 연합뉴스(오른쪽)

04 안 들어오나, 못 들어오나

한 전 청장은 각종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당장 귀국해 조사에 응할 뜻은 없어 보인다. 그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들어갈 것이지만 여론에 등 떠밀려 귀국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현재 귀국할 계획은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한 전 청장에게 귀국해서 조사받을 것을 종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이 얼마만 한 의지를 가졌는지도 의문이지만, 한 전 청장이 이에 응할 가능성은 아직까지 작아 보인다.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미국에 체류 중인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비자가 만료될 일도 없다.

한 전 청장은 뉴욕 주에 머무르면서 골프도 즐기는 한편, 마라톤에도 취미를 붙였다고 한다. 하프마라톤 코스를 완주했다고 주변에 털어놓기도 했다. 그렇지만 타국 생활이 편할 리는 없어 보인다.

일각에서는 그가 ‘안 들어오는 게 아니라 못 들어오는 것이 아니냐’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전 청장 본인이 귀국하고 싶어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가 만약 ‘기획 출국’을 했다면 같은 이유로 인해 돌아올 때도 ‘기획 귀국’을 해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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