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애로 채운 강판에서 ‘따뜻한 회사’ 펼쳐냈다
  • 창원·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12.0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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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비앤지스틸, 평균 근속 연수 22.5년으로 1위…부도 등 곡절 겪으며 ‘화합’ 더 단단해져

 

▲ 평균 근속 연수 1위를 차지한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비앤지스틸의 직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같은 신촌이라는 이름을 쓰지만 서울의 신촌과는 달랐다. 스테인리스 비앤지스틸 공장이 위치한 경남 창원시 신촌동은 그 흔한 편의점조차 하나 없는 황량한 공단에 자리 잡고 있다. 거대한 공장들 사이에 스테인리스의 은색 골격을 뽐내는 건물이 비앤지스틸 본사였다. 자체 생산한 제품으로 뼈대를 올렸다. 1층 로비부터 비상구 출입문까지, 내부도 은색의 스테인리스 일색이다. 이미 인근에서는 소문이 나 이 건물로 출근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한 직원은 “창원만 가더라도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다. 여기 다니는 사람을 부러워한다”라고 말했다.

비앤지스틸 직원의 근속 연수는 평균 22.5년이다. 매출액 5백대 기업 중에서 단연 1위이다. 이곳에는 거대한 제철기업 단지에서 볼 수 있는 잔디밭 깔린 축구장도 없고 넓은 녹지대도 없다. 직원들을 위해 잘 닦아놓은 복지시설을 그리며 이곳을 찾으면 곤란하다. 오용국 인력운영팀장은 “사실 성장해가는 산업처럼 빠르게 신진대사가 이루어지는 분야가 아니다. 그래서 근속 연수가 높은 측면이 있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임금도 업계 평균 수준이며 사내 복지에서도 그렇게 특출한 점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일단 철강 산업 자체가 생산 인력의 근속 연수가 긴 편에 속한다. 동종 업계인 포스코 직원들은 평균 19.07년, 현대제철 직원들은 평균 13.08년 동안 회사를 다닌다.

중공업 위주로 산업 구조가 변하면서 처우가 눈에 띄게 좋아진 것도 장기 근속이 늘어난 이유 중 하나였다. 비앤지스틸의 직원들은 왜 회사를 오래 다니는지 다른 이유를 찾아보았다. 굳이 나간다면 나갈 수 있을 텐데 비앤지스틸 직원들, 특히 현장 인력은 정년이 되기 전에 회사를 그만두는 이들이 거의 없다. 회사측의 설명에 따르면 비앤지스틸 현장 인력의 이직률은 제로에 가깝다. 오팀장은 장점과 단점이 있음을 솔직히 이야기했다. “현장에서 신입사원 채용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근속 연수가 길어지면서 인건비가 상승하는 것도 회사에는 부담이 된다. 반면, 품질적인 측면에서는 오래된 분들이 많기 때문에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것은 큰 자산이다.”

직원들은 무형의 만족감을 우선 꼽는다. 올해 29년째 재직 중인 박완석 PM(Part Manager)은 자신이 회사에 오랫동안 남을 수 있었던 이유로 분위기를 꼽았다. 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박씨는 “삼미특수강이 부도 난 이후 오히려 직원들 간에 뭉치는 효과가 생겼다. 지금은 직원들 사이에 경조사 등이 생기면 서로가 일을 거드는 게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로 친밀도가 높다”라고 말한다.

비앤지스틸은 굴곡이 심한 세월을 보냈다. 삼미특수강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삼미특수강은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났다. 이후 제강과 압연 부분을 포스코가, 스테인리스 부분을 현대자동차그룹이 인수하면서 둘로 쪼개졌다. 비앤지스틸은 삼미특수강의 스테인리스 부분이 현대차그룹으로 흡수되면서 재탄생했다. 노조는 분할을 거세게 반대했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공유한 경험은 이후 큰 자산이 되었다. 박씨는 “삼미특수강 시절만 하더라도 관리직과 현장의 기능직 사이가 껄끄러웠고 부담스러웠다. 이야기 한마디도 건네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가족처럼 지낸다”라고 말했다.

 직원들 자존감 높여주려 애쓴 경영진 배려 한몫

 

▲ 1. 근속 연수 1위를 차지한 비앤지스틸의 나이 지긋한 직원이 공장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다.2. 비앤지스틸은 스테인리스 강판 제조회사이다. 공장 한쪽에 쌓인 두루마리 형태의 스테인리스 강판 모습. ⓒ시사저널 임영무    

 

공장에서도 이런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다. 공장 안에서는 작은 승강이가 벌어졌다. “니 내가 이거 하면 모델료 주는 기가?” “형님, 제가 술 한잔 거하게 살게요. 좀 웃으세요.” 이광수 EP(Expert)가 사진 촬영을 극구 사양하자 기자를 안내하던 경영지원팀의 김재석 과장은 형님, 형님 하며 술 한잔을 약속했다. 김과장은 “예전에는 관리직과 생산직의 안전모 색깔도 달랐지만, 지금은 흰색으로 모두 통일했다. 차이를 없애기 위한 노력을 회사에서도 계속했고, 그런 점이 통했다”라고 말했다. 새로 주인이 된 경영진들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다. 일단 처우 면에서는 업계 평균 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2008년 사업보고서를 기준으로 비앤지스틸의 평균 급여는 5천8백10만원이다. 현장 인력의 경우 6천6백여 만원에 이른다. 근속 연수가 높은 점을 감안해도 적지 않은 액수이다. 최근에는 곧 재개발에 들어갈 사택 2백10세대 중 100세대를 직원들에게 분양했다. 감정평가보다 싼값에 분양해, 구입한 직원들도 금전적인 이득을 보았다.

외환위기 이후 새로 들어선 경영진은 직원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제철 공장이지만 자동화 설비로 가득 차 있고, 스테인리스 제품이 깔끔하게 출하되기 때문에 제철 공장 같지 않다. 직원들은 공통적으로 “우리 회사는 작업 환경이 좋다”라고 말한다. 거친 작업들이 반복되는 곳이지만, 바닥에 그 흔한 페인트 하나 묻어 있지 않다. 박영일 EP는 “반도체 공장과 비슷한 분위기이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깔끔해서 회사가 마음에 든다는 직원도 있었다.

전통적으로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은 노조와의 대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인적 문제가 발생할 경우 바로 품질에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노사 문화가 안정되어 있다는 점은 경영진이나 노조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이다. 여기에는 경영진의 열린 자세가 한몫했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열린 경영회의’는 4백45명의 직원 중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대표이사 등 임원진이 강당에 앉아 경영 상황을 알리고 평가하는 자리이다. 보통 70~80명의 직원들이 회의에 참가한다. 한 직원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책임자들이 깨지는 경우도 있다. 책임과 의무 이런 것들이 느껴지는 자리이다”라고 말했다.

직원 간의 친밀함, 경영 정보의 공개,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는 믿음 등은 회사를 각별하게 만든다. 김재석 과장은 “현장에서 자기 일처럼 일을 하려면 서로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만약 서로 믿지 않으면 제품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내 회사라는 믿음은 대를 이어 전수된다. 박완석 PM은 “직원의 자식들이 대를 이어 이 회사에 다니는 경우도 있다. 우리 애들도 이 회사로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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