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야 할 일은 따로 있다
  • 김재태 부국장 (purundal@yahoo.co.kr)
  • 승인 2009.11.2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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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그것도 대도시의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일본인 관광객이 일곱 명이나 불의의 참화로 목숨을 잃은 탓에 사고의 파장은 컸다. 나라의 이미지도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일본 언론들은 한결같이 이 구시대적인 참사에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스프링클러도 설치하지 않은 채 영업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는 그들의 통탄은 너무나 뼈아프다. 사고가 난 뒤에야 전국의 사격장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나선 당국의 태도도 한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사격장 말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위험 지대가 또 얼마나 있을지도 걱정스럽기만 하다.

불안한 마음은 연일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 세종시에도 그대로 쏠린다. 총대를 멘 정운찬 총리의 ‘세종시 세일즈’는 보기에 애처로울 정도로 부산하다. 정치권에서 논쟁이 그치지 않고 국민 여론도 팽팽하게 갈려 있는 상황에서, 큰 기업을 하나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 제공을 공언하며 애쓰는 모습에서는 안타까운 조급함마저 느껴진다. 몇몇 대기업 집단의 총수들과 만난 뒤에는 대기업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며 애드벌룬을 띄우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세종시를 확실하게 선택한 기업은 없다. 이익에 밝은 그들이 정부가 저처럼 몸달아 있는 상태에서 서둘러 의사 결정을 할 리는 만무하다. 아쉬운 쪽은 정부이지 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안감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자칫 세종시 계획 수정을 위한 분위기를 띄우는 데 급급해 정부가 지나치게 특혜를 준다면 그 후폭풍은 두말할 나위 없이 엄청날 것이다. 또 다른 ‘퍼주기’ 논란이 뒤따를 것은 불보듯 뻔하다. 벌써부터 다른 지방 쪽 공기는 심상치 않다. 이미 ‘혁신 도시’ 사업을 추진하면서 기업 유치에 잔뜩 기대를 걸고 공 들이던 지자체들은 세종시에 밀려 역차별 또는 불이익을 받을까 봐 전전긍긍이다. 세종시만 살고 다른 도시들이 죽는다면 그것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구상된 세종시 개발의 취지에 전면적으로 위배되는 일이다.

몇 년 전에 고향에 갔을 때 보기에 거북스런 흉물과 마주친 적이 있다. 농공단지 조성 공사를 한 후 입주 업체가 없어서 버려진 건물들이었다. 일단 저질러놓으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요행주의와 탁상 행정이 만들어낸 처참한 실패의 현장이 거기 있었다. 따지고 보면 이번 부산 사격장 화재 사고를 일으킨 근원적인 불씨도 그같은 요행주의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급하게 먹은 음식은 체하기 마련이다. 적절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종시 수정’을 밀어붙이려 서두르는 정부의 모습을 보는 것이 불편하고 불안한 것도 그 때문이다. 만에 하나 세종시가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그에 따른 국가적 망신은 이번 부산 사격장 사건과는 비교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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