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소녀 낙태 부추기는 뻔뻔한 산부인과들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9.11.0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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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취재한 전국 20곳 산부인과 중 18곳이 “얼마든지 가능”

ⓒ시사저널 박은숙

10대 청소년들의 불법 낙태(인공 임신중절) 수술이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다. 지난 10월21일 <시사저널> 취재진은 전국에 있는 산부인과 20곳에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고등학생인데 낙태 수술이 가능한가’라며 상담을 요청해보았다. 놀랍게도 20곳 중에 18개 산부인과에서 ‘가능하다’라고 응답했다. 그중‘부모님 동의가 없어도 가능하다’라고 말한곳도 10곳에 달했다. ‘낙태 수술을 하지 않는다’라고 답한 산부인과는 두 곳에 불과했다. 누구든지 돈만 내면 쉽게 ‘낙태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현재 서울 지역 산부인과의 낙태 수술 비용은 임신 7주인 경우, 30만~50만원이다. 이에 반해 지방은 10만원쯤 싼 편이다. <시사저널> 취재진이 10대를 가장해 상담한 지방의 산부인과는 “빨리 와야 한다”라며 오히려 낙태 수술을 부추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부산 수안동에 위치한 ㅅ산부인과에서는 “혼자 와도 된다. 카드 사용은 안 되니까 현금으로 20만~25만원 정도 준비해서 와라”라고 말한 뒤, 기자가 알았다며 끊으려고 하자 “언제 올 수 있냐”라며 다급하게 물었다. 대구 ㅅ산부인과에서는 예약한 시간에 오지 않자 “언제 올 것이냐”라며 다시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서울에 위치한 산부인과는 단속을 염두에 둔 듯, 전화 상담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방식으로 취재나 조사를 하는 경우가 있어서 전화 상담은 어렵다”라고 대놓고 말하는 곳도 다섯 군데나 되었다. 미혼여성 전문 간판을 내건 ㅇ산부인과는 처음에는 “안 된다”라고 말하다가 기자가 어눌하게 되묻자 안심이 되었는지 “조사를 하거나 녹음을 하는 경우도 있어서 안 된다고 말했다. 늦어도 4시까지 오면 수술도 가능하다. 영양제 주사까지 합치면 48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꼭 와라”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서울 구의동에 위치한 ㅇ산부인과는 “이번달에 무조건 빨리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학생이기 때문에 가격을 깎아준다고 말하는 병원도 있었다. 서울 신당동에 위치한ㅅ산부인과는 “수술비와 영양제 주사를 합치면 38만원이다. 초음파 검사비와 자궁을 열리도록 하는 약값은 수술비만 완납하면 받지 않겠다. 학생이니까 이렇게 해준다”라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현행 모자 보건법 제14조(인공 임신중절 수술의 허용 한계) ①항에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 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 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낙태 수술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보호자의 동의가 있다고 해도 무조건 낙태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자가 상담을 받은 20곳의 산부인과 중모자 보건법상의 조항에 해당하는지 물어본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어떤 산부인과에서는 변칙적인 방법을 제안하는 곳도 있었다. 서울 금호동에 위치한 ㄱ산부인과에서는 “부모와 상의해서 사유를 만들어오면 해주겠다. 법적으로 다섯 가지 사유가 있는데 거기에 맞춰서 하나를 만들어 와라. 요즘 시대에는 아무 이유 없이 낙태를 할 수는 없다. 그 이유가 사실과 다르더라도 상관없다”라며 합법을 가장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생명 경시하는 풍조는 결국 출산율 저하로”

이처럼 시내 산부인과에서 불법 낙태 수술에 나서는 것은 돈 때문이다. 산부인과 진료 가운데 낙태 수술처럼 의사들을 유혹하는 것도 없다. 일단 30분 정도 수술하면 30만원에서 50만원을 벌 수 있다. 임신부가 분만을 할 경우 100만원까지 벌 수 있지만 이럴 경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신경 써야 할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에 비하면 낙태 수술은 30분 정도면 수술이 끝날 정도로 간단하다. 상담 시간도 길어야 10분을 넘지 않는다.

산부인과 의사들에 따르면 낙태 수술이 너무 쉽게 이루어지는 탓에 미성년자들도 낙태에 무감각하다고 한다. 아이온 산부인과 심상덕 원장은 “과거 임신중절 수술을 할 때 미성년자와 상담을 해보면 청소년들이 쌍꺼풀 수술보다도 임신중절 수술을 쉽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쌍꺼풀 수술은 하기 전에 최소한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낳을까 따져보기라도 하는데, 임신중절 수술은 그렇지 않다. 그냥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낙태 수술이 암암리에 성행하자 산부인과 의사들이 양심선언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1월1일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소속 산부인과 의사 6백여 명은 대한의사협회 동아홀에서 ‘불법 낙태 근절 운동 선포식’을 개최했다. 이들은 전국 산부인과에 ‘낙태근절 운동’에 참여할지 의사를 묻는 서한을 보내고, 12월 중순쯤에는 참여한 병원 명단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렇게 하면 ‘낙태 근절운동’에 불참한 산부인과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번 선포식을 주도하고 있는 아이온 산부인과 심상덕 원장은 “2~3년 전부터 ‘미혼여성 전문’ 타이틀을 달고 낙태를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이 등장할 정도로 문제가 곪아 있었다. 저출산으로 인한 병원의 손해를 엉뚱한 방법으로 메우려는 현실을 더는 눈 뜨고 볼 수 없었다”라며 낙태 근절 운동을 시작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처럼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가 불법 낙태 문제를 전면에 들고 나온 것도 낙태 수술이 생명 경시를 부추기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들이 의사 면허 취소까지 감수하면서 양심선언을 한 이유도 이런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였다.

심원장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는 결국 출산율 저하로 이어진다.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한편으로 낙태 문제는 외면해왔다. 예민한 문제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생각인 것 같은데 너무 무책임하다. 앞으로 정부가 적극 개입해서 낙태 수술을 근절해야 한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관할 행정 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는 ‘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조직 간의 내부 문제’라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 가족건강과 관계자가 “임신 중절 수술 예방 캠페인을 비롯해 미혼모 지원 방안, 생명포럼 등을 각 부서에서 진행하면서 대안을 모색 중이다”라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임신중절 수술 현황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는 실정이다. 다만, 지난 2005년 고려대 산학협력단에서 실시한 ‘인공 임신중절 실태 조사’에 따르면 1년동안 임신중절을 받은 건수가 34만건으로 추정되며, 이 가운데 미혼 여성이 42%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인구 1천명당 미혼 여성 30명이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경험을 갖고 있다는 계산이 된다. 의료계는 연간 1백50만~2백만건의 임신중절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돈벌이에 급급한 산부인과, 원하지 않은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쉽게 낙태 수술에 나서는 10대 청소년들.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의 양심선언이, 암암리에 전개되고 있는 불법 낙태 수술을 막는 데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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