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과 영광 모두 맛본 세 남자‘금융권 태풍’ 주역 되어 각축 벌인다
  • 정희윤 | 뉴스핌 기자 ()
  • 승인 2009.11.0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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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 강정원, 우리 이팔성, 하나 김승유 ‘삼국지 열전’…모두 현장 경험 많아 치열한 승부 예상

지난 10월28일 열린 금융 동향 세미나에서 금융연구원은 2010년 금융 산업에 합병·매수(M&A) 태풍이 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날발표자였던 이병윤 연구위원은 “이번 풍운이 일고 나면 대형 은행과 소형 은행으로 양분되는 결과로 치달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금융권에 태풍을 몰고 올 주역으로는 강정원 KB금융지주 회장 대행 겸 국민은행장,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 등이 부각되고 있다.

2000년 서울은행장을 끝으로 금융가에서 사라졌던 강정원 행장은 2004년 국민은행장으로 선임되면서 금융계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당시 국민은행 구원투수로 투입된 강행장은 자산 규모로만 40조원이나 깎아내는 대규모 수술을 집도해 국민은행을 초우량 금융사로 되살려냈을 뿐 아니라 지난해에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을 추진해 KB금융지주를 정점으로 한 금융 그룹 체제를 갖추었다. 영업 현장을 우대하고 고객만족도를 중시하는 그는 초기부터 파격 행보를 거듭해 많은 변화와 혁신 사례를 남겼다.

‘시련 뒤에 영광 온다.’ 금융인 강정원의 운세를 논하자면 그런 유형이 아닐까.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돈만 내면 끝나는 상황까지 갔으나 사법 당국의 론스타 인수 과정에 대한 처리가 늦춰지면서, 이를테면 ‘우승 직전에 경기가 무효로 끝난’ 아쉬운 기억을 갖고 있다.

또한, KB금융 초대 회장직에 도전했다가 황영기 전 회장에게 패배했던 이력도 있다. 이번에는 대행이라는 꼬리를 떼고 CEO로 올라서기 위한 재도전에 나섰다. 그간의 경영실적과 이미 한 번 탈락했던 경험을 딛고 일어선 터여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KB금융의 막강한 자본력은 인수전 1순위로 꼽히는 외환은행은 물론 소수 지분 매각이 진행 중인 우리금융지주나 민영화 구도 속에 잠재적 매물로 간주되는 국책 금융회사 어디든 인수할 수 있을 만큼 여력이 충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성장 과정에서 외국에서 보낸 기간이 길다. 씨티은행 뉴욕 본사에서 금융 이력을 시작해 외국계 금융사 국내 대표를 지낸 경력도 사실은 그와 KB금융 그룹의 꿈을 완성하는 맥락으로 자연스럽게 흘렀던 것은 아닐까.

우리금융그룹 이팔성 회장은 지난 10월16일 오랜 침묵을 깨고 시장에 메시지를 던졌다. 분할 매각론 등 흉흉한 루머가 돌자 매우 간명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회장은 “향후 금융 산업이 어떠한 방식으로 재편되더라도 우리금융그룹이 그 중심적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회장을 잘 아는 금융계 한 고위 인사는 “상황이 가장 나쁠 때 등장해 가장 빛이 날 때까지 이끄는 경영자이다”라고 그를 추켜세웠다.

우리증권 사장 시절 실적 개선을 이루어내고 나중에 LG투자증권과 합병해 증권업계 선두권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닦았던 이후 잠시 금융인 생활을 접고 서울시향 경영을 맡아서는 만성 적자에서 사상 최대 수입을 창출한 이력도 있다. 서울시향 사장 자리는 그를 MB 인맥 본류로 이끌었다.

▲ 은행권 판도 변화를 불러올 세 주역. 왼쪽부터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강정원 KB국민은행장. ⓒ(왼쪽부터)시사저널 임영무, 연합뉴스, 시사저널 박은숙

김승유 회장, 3개 은행 합병·매수 진행한 경력 주목

취임 직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쳐 뜻을 펼 기회가 사라지는 시련을 겪었고 전임 우리은행장들의 과도한 외형 키우기의 후유증으로 수익 기반이 약화된 상태였지만, 이것은 오히려 그의 진가를 나타낼 무대가 되었다. 대형 은행의 한 인사는 이회장에 대해 “은행과 자본 시장 두 분야를 섭렵한 데다 영업 현장에서 야전을 치를 때 수위권 실적을 거두곤 했으니 금융계 CEO로는 제격이다”라고 평했다.

여기다 강만수 전 장관과 윤증현 현 장관을 비롯한 정·관계 거물과의 교분, 고려대 인맥 등의 후광까지 더하면 그는 현 정권의 성골 인사로 꼽히고 있다. 다른 경쟁자들이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위상을 지닌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정부가 갖고 있는 우리금융지주 소수 지분 23% 매각 이후에 대한 명쾌한 대안 역시 연구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금융지주 김승유 회장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3개 은행 합병·매수를 진행한 뱅커로 이름 높다. 충청은행과 보람은행 그리고 서울은행까지 하나은행에 합병된 것은 모두 김회장의 작품이다. 그는 지난 2000년 알리안츠그룹과 손잡는 결단으로 성장 엔진의 폭발력을 크게 높였다. 이후 합병을 통한 규모의 성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신념으로 한미은행과 제일은행 인수전 등에 끊임없이 나섰다. M&A 선구자답게 서울은행을 인수하기가 무섭게 합병 프로그램을 신속하게 가동해 일사천리로 통합이 이루어졌다고 은행 관계자는 전했다. 김회장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한일은행 생활 3년과 미국 유학 생활을 거친 직후 하나은행 전신인 한국투자금융 창립 멤버로 뛰어들어 30년 금융 인생을 줄곧 하나맨으로 뛰었다. LG카드 인수전과 외환은행 인수전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신 실패 사례도 결코 흠결로 보이지 않는다.

항간에는 대통령과 막역지우라는 점이 역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최근에도 반상회 영업을 직접 뛰는 등 타고난 비즈니스맨의 기질로 어떠한 좌절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평을 듣는다.

국내 은행 빅 4 중 하나금융지주는 다른 3개사에 비해 자산 규모가 떨어진다. 때문에 김승유 회장은 원심력을 행사하든 구심력을 행사하든 하나금융을 선두권에 올려놓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김회장이 승부수를 던져야 할 시점인 것이다. 하나금융지주의 유상증자설에 시장이 발칵 뒤집히며 은행 간 합병·매수 레포트가 줄줄이 쏟아져나온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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