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인생에는 반전이 없다
  • 김진령·반도헌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09.09.2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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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외수

ⓒ시사저널 임준선


소설가 이외수는 우리 시대의 가장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지난해 산문집 <하악하악>이 50만부 넘게 팔렸고, 올해는 <청춘불패>가 다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와 있다. 또, 주중에는 공중파 라디오를 통해 매일 밤 25분간 이외수 특유의 촌철살인이 넘치는 문장이 그의 목소리를 타고 전국에 울려 퍼지고 있다. 벌써 1년이 넘었다. “신문 연재는 모두 중도에서 끝냈다”라고 할 만큼 정해진 시간표와는 상관없는 자유분방한 삶을 산 그였지만 라디오 방송은 ‘재택 녹음’이라는 방식으로 중단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 모든 활동을 그는 강원도 화천의 ‘감성마을’에서 진행한다. 스튜디오와 서재, 집필실은 감성마을 끝자락에 자리 잡은 아담한 살림집 한 채에 다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서 이외수를 만났다.

방송 내용은 어떻게 정하나?

작가와 PD가 상의한다. 작가가 원고를 보내오면 내 입장에서 불편한 것은 수정하고 논리적 모순도 고치고, 가끔씩은 촌철살인이 필요하니까 그런 것도 곁들여서 내용을 마무리한다.

라디오 방송 초창기에는 비판적인 시각이 강한 내용도 많았는데 최근에는 좀 약해졌다는 평도 있다.

초창기에는 내가 직접 라디오 대본을 쓴 적도 있다. 그때 많은 사람이 대리 희열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최근에는 그래도 다섯 번 중에 한 번 정도는 강도가 있지 않나?

그럼에도 1년 넘게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

날마다 동원 훈련을 받는 기분이다. 내가 섭외가 어려워서 그렇지, 하겠다고 작정하면 하늘이 두 쪽 나도 하니까.(웃음) 휴가도 한 번도 안 가. (녹음 작업 돕는) 둘째아들만 죽을 맛이지.

감성마을로 직접 찾아오는 젊은 친구들도 많은가?

많다. 오는 친구들 중 대부분은 내 책을 읽고 온다. 여기까지 찾아올 정도면 다 쓸만한 구석이 있는 친구들이다.

문학 공부를 위해 찾아오나?

아니다. 대개 나를 멘토로 생각해서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데 어떻게 설계하고 결정해야 할지 조언을 얻고 결정하겠다는 생각에서 온다. 그런 친구들은 상당히 건전하다.

<청춘불패>는 젊은 친구에게 주는 조언인데 요즘 젊은이의 결핍은 무어라고 보는가?

의지력, 견디는 힘이다. 오늘 아침에 올린 글 중에 ‘젊은이여, 그대들이 내 나이가 되어서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젊은이 여러분 나이에는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자고 싶은 것 못자는 것을 기꺼이 감내하기를 빈다’라고 썼다. 그랬더니 한 친구가 거기에 어느 한쪽을 거쳐야 하는 것이라면 지금 먹고 싶은 것 먹고, 자고 싶은 것 자는 것으로 끝내고 싶다고 썼더라. 그게 우리 세대와 다른 것이다. 우리 세대는 고통스럽더라도 나중에 좋은 일이 올 것이라고 고통을 참았는데, 요즘 젊은이는 고통을 피해 다닌다.

▲ “책이 재미가 없으면 재수 없다. 재미없는 것 끝까지 읽는 것은 문자 고문이다.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책은 자기 지식, 소양 전달하는 데 급급해서 현학적이고 읽는 맛이 안 난다.” ⓒ시사저널 임준선

몸이 아프면 약을 먹을 수 있고, 몸짱이 되려면 운동을 하면 되지만 의지력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데.

자기를 가르쳐야 한다. 어리석은 인생에는 반전이 있어도 게으른 인생에는 반전이 있을 수 없다. 젊은이의 가장 큰 병폐는 불로 소득, 무통 분만을 꿈꾼다는 것이다. 이런 의식을 빨리 버려야 한다.

운동도 하나?

운동 삼아 산책을 자주 하는데 요즘은 (게임기 닌텐도의) 위를 하기도 한다. (거실 한편의 위를 가리키며) 저것도 몸살 나게 만들더라. 볼링 게임을 주로 하는데 프로 경지까지 갔다. 60이 넘어서 하려니까 감각이 부친다. 쉰 네살까지는 위닝일레븐이나 스트리트파이터 같은 게임을 하면 대학생들이 나에게 졌다.

지난여름에 디시인사이드의 이외수 갤러리를 폐쇄했는데.

디시갤러리에서는 어쨌든 막장 가고 해야 하니까.(웃음) 요즘은 트위터를 통해 글을 많이 쓴다. 트위터에서는 악플러가 거의 없으니까. 내 트위터가 글로벌 랭킹 1위, 아트 분야 랭킹 1위, 세계 소설가 트위터 2위, 싹 쓸고 있다. 

인터넷 게시판은 난타전 하는 것이 보이지만 트위터는 일방적 의견 전달 아닌가?

트위터도 시비 걸면 블로킹 해버리면 된다. 기자들이 나보고 트위터 내용은 대인배인데 태클에 대한 대처는 소인배라고 하더라.(웃음)

악플러와의 송사는 잘 끝났나?

사과하는 e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해서 용서를 구하는 경우에는 다 용서했다. 거의 다 어리다. 많아야 대학 2학년생. 중학생도 있더라.

책을 고르는 혜안은 무엇인가?

목적이나 종류에 따라 다르다. 문학 서적은 정독이 옳다. 정보가 필요해서 볼 때는 다독으로 충분하다. 좋은 책을 선별하는 방법에는 왕도가 없다. 많이 읽어서 감을 찾아야 한다. 이성은 따져서 추론해서 결론 얻어내는 데 반해 감성은 딱 보고 집어낸다. 제목만 보고 저것 뭐 있다 알아낸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다. 그러려면 많이, 자주 접해야 한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

많다. 최근에는 주제 사라마구, 베르베르, 쥐스킨트가 좋고 국내작가로는 박민규, 김훈, 성석제 다 좋아한다. 책이 재미가 없으면 재수 없다. 재미없는 것 끝까지 읽는 것은 문자 고문이다.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책은 자기 지식, 소양 전달하는 데 급급해서 현학적이고 읽는 맛이 안 난다.

최근에 하루키의 신간이 화제이다.

하루키는 처음에는 좀 읽었는데, 하루키 정도의 감수성은 한수산 작가도 갖고 있다. 내가 볼 때는 국내 작가가 억울한 것이 좀 있다. 하루키가 과대 평가된 면이 있다. 외국 것이 지적 허영을 충족시켜 주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국내 작가 작품도 외국에 번역만 제대로 되면 어떤 경우에도 뒤지지 않는 그런 작품이 숱하게 많다.

기이하게도 어떤 출판사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주면서 출판했는데, 나는 이런 것을 좋게 안 본다. 나는 출판사가 인세를 올려준다고 해도 다른 작가를 차별하는 것이라면 시장 풍토를 망가뜨리는 일이라고 거절한다. 기존 관례를 지켜달라고만 한다.

그렇게 하면 같이 죽자는 것이다. 기업형 출판사가 대형 서점의 매장을 사는 데 몇 개월에 몇백 만 원씩 주고. 그러면 영세한 출판사는 죽는다. 무명 작가는 독자와 만날 기회를 잃는다. 이것은 망하자는 이야기이다. 결국, 피해는 독자들에게 돌아간다.

독자에게 책을 권한다면?

사라마구의 <죽음의 중지>, 추석이니까 달이 사라지는 <장외 인간>. 내 소설이라 쑥스럽지만.(웃음)

추석인데.

추석은 내 생일이기도 하다.(웃음) 추석 하면 달 아닌가. 한국 사람이 상고 시대에는 태양신을 숭배했지만 지금은 권력 지향에서 벗어나 보다 의식이 유연해지고 태양보다는 달을, 은은하고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달의 정서에 가까워져 있다. 달이 태양과 다른 것은 차기도 하고 기울기도 하는 등 변화하고 똑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집안일도 거드나?

마누라 생일이나 식구들 생일 한 번도 안 잊었다. 특히 마누라 생일 전날에는 내가 밤새도록 미역국을 끓인다. 내가 굉장히 가사적인 남편으로 알려져 있다.(웃음)

최근에는 일이나 그런 면에서 남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듯하다.

예전에는 근력을 쓰는 일은 남자들이 하고 가벼운 일은 여자들이 하고, 일 자체의 힘겨움에 따라 간단하게 구분했는데 요즘은 그 힘겨움을 기계가 대신하면서 그런 구분이 사라졌다. 봐라, 집안에 여자가 쓰는 것만 발달한다. 가전제품이란 가전제품은 모두 여자가 쓰는 것이다. 남자가 쓰는 것은 화장실 가면 전기면도기 하나뿐이다. 그런 이야기를 올렸더니 거개의 남자와 거개의 여자들이 모두, 그런 제품은 모두 남자가 다룬다고 반응하더라. 여자가 쓰는 기계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하더라. 전기면도기도 여자가 쓴다고.(웃음)

감성마을이나 <감성사전> 등 감성이라는 표현을 좋아하는 것 같다.

객골 분교에서 소사를 하던 어느 겨울, 4학년짜리가 매일 아침에 찾아와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다. 이 녀석이 여기라고 찍으면 여지없이 개구리가 나왔다. 어찌 그리 정확히 아느냐고 진지하게 물었더니 그 꼬마 친구는 “딱 보면 알아요”라고 하더라.

내가 그때 한 소식했다. 그 꼬마는 논리가 없으니까 딱 보면 아는 것이다. 대상과 내가 합일하는 경지에 있어야 딱 보면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감성이다. 대상과 합일된, 감성의 궁극이다.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치료해주는 것은 감성이고, 흥부가 부자가 된 것을 보고 멀쩡한 제비 다리를 분질러 치료해주며 요행을 바라는 것은 이성이다. 놀부는 이성의 극치이고 흥부는 감성의 극치이다. 내가 감성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인터뷰 뒤 서재를 소개하면서 “서재에 들어가면 슬프다”라고 말했다. “저기에 꽂혀서 자랑스러운 대표작이 하나 있어야 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부담감이 있다”라는 것이다. 그는 대개의 작가들처럼 “나도 대표작은 내 다음 작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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