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순한 소주라면 부산이 잔을 들까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8.1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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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주류, 신제품으로 대선주조 아성 공략 나서

ⓒ그림 이우정

소주는 점점 순해지는 중이다. 소주시장의 선두 주자인 진로의 ‘참이슬’은 1998년 25˚인 알코올 도수를 23˚로 낮추었다. 이후 순한 술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2001년 22˚, 2004년에는 21˚도로 꾸준히 낮추더니 지난 2006년에는 20˚ 아래로 진입시켰다. 19.8˚짜리 ‘참이슬 fresh’를 출시하며 저알코올 소주 경쟁을 이끌었다. 시장 2위 업체인 롯데주류(이전 두산주류)도 같은 해 20˚인 ‘처음처럼’을 출시하면서 진로와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순한 소주’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독해지고 있다. 소주 전쟁은 새삼스럽지 않다. 1960년대 소주시장을 주름잡았던 삼학소주에 도전장을 내민 곳이 지금의 진로였다. 왕관처럼 생긴 진로의 병뚜껑을 이용해 고객 경품 행사에다 진로 마시기 운동까지 전개하며 삼학이 자리 잡고 있던 주류시장을 뒤흔들었다. 이렇게 진로와 삼학은 10여 년을 경쟁했고 25˚ 진로 소주가 대히트를 하면서 ‘1차 소주 전쟁’은 진로의 승리로 일단락되었다. 

지금도 독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업계 2위인 두산주류를 인수한 롯데주류가 적극적인 남진 정책을 펼치면서 소주 전쟁을 알리는 포탄을 쏘았다. 가장 치열한 전장은 롯데의 정신적 연고지인 부산이다.

롯데자이언츠 앞세워 대대적인 판촉 행사

부산 소주시장에는 평균 점유율 80% 이상을 자랑하는 대선주조가 버티고 있었다. 이곳에 먼저 발을 디딘 업체는 ‘화이트 소주’로 유명하고 경남에 연고를 둔 무학소주였다. 전국권 소주인 진로나 롯데주류가 수도권에서 남하하는 것과는 별개로 부산의 옆동네 소주가 먼저 움직였다. 무학소주 관계자는 “김해 장유나 양산 등지의 신도시에 부산 인구가 유입되면서 경남에서 대선주조 ‘시원(C1)’의 점유율이 상승했다. 우리도 대응하려면 부산을 공략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지난 1월 두산주류를 인수해 탄생한 롯데주류는 수도권 다음으로 큰 시장인 부산에 뛰어들었다. 롯데주류에게는 롯데자이언츠가 있었다. 사직야구장에서 무학소주의 광고판을 철거해 ‘처음처럼’ 광고로 대체했고, 롯데자이언츠 유니폼에도 ‘처음처럼’을 새겨넣었다. 부산 시민에게 사랑받는 강민호 롯데자이언츠 선수를 ‘처음처럼’의 광고 모델 이효리와 함께 포스터에 등장시켰다.

롯데주류는 지난 3월에 마케팅 전진대회를 본사인 서울을 제쳐두고 부산에서 열었다. 5백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서면 등지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판촉 행사를 벌였다. 이것은 부산에서 펼쳐질 소주 전쟁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각 소주업체, 특히 새로 시장에 진입하려는 업체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주 판촉 행사를 벌였다. 부산 시내에는 삽시간에 공짜 소주가 깔렸다. 갑자기 나타나 테이블에 한 병씩 돌린 뒤 계산까지 하고 사라지는 ‘대납 사나이’가 등장했고, 도우미처럼 유니폼을 입고 술집을 돌면서 공짜로 한 병씩 나눠주는 판촉 행사도 술집마다 열렸다. 대형 마트처럼 1+1 행사가 벌어졌고, 판촉용으로 뿌리는 미니어처 소주를 모아 생일 잔치를 열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롯데주류의 공세가 매서웠다. 한 주류 도매업자는 “롯데에서 엄청난 판촉비를 뿌렸다. 두산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실탄을 장전했다”라고 말했다. 과열 양상이 나타나자 부산국세청이 예의주시하면서 도를 넘어서는 판촉 활동은 수그러들었다. 그렇다고 아예 멈춰 선 것은 아니다. 부산 전포동에 사는 김 아무개씨(28)는 “지금은 좀 덜하다지만 요즘도 공짜 소주 먹었다는 친구들의 얘기를 가끔 듣는다. 손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볼펜 등 판촉물을 나눠주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롯데주류의 공세에도 현재까지는 대선주조가 주도권을 잘 지키고 있다. 지난 7월30일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대선주조의 지난 6월 부산 소주시장 점유율은 74.3%로 전월(73.7%)보다 0.6% 증가했다. 전국권 소주회사인 진로(7.0%→6.8%)는 소폭 감소, 롯데주류(2.0%→2.1%)는 소폭 증가했지만 점유율 자체가 미미하다. 대선주조 홍보실 임호욱 이사는 “대선주조가 부산의 기업이고 시원소주가 부산의 소주임을 부산 시민에게 호소한 것이 설득력을 얻었다”라고 평가했다.

부산 사람들의 지역 소속감은 대단하다. 롯데자이언츠에 보내는 열광적인 성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소주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 양조장 통폐합 정책으로 소주의 ‘1도 1사’ 원칙이 정해진 뒤 부산 지역의 소주는 대선주조가 맡아왔다. 1930년에 생긴 향토 기업이다. 대선주조 임호욱 이사는 “부산 사람들이 시원소주에게 갖는 애정은 각별하다. 대선주조와 같은 향토 기업을 쉽게 저버리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부산에서는 “소주 한 병이요”라고 말하면 종업원은 “무슨 소주요?”라고 되묻지 않고 대선주조의 ‘시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대선주조가 외환위기 직후 부도가 났을 때는 ‘시원소주 마시기 운동’이 벌어졌을 정도이다.

“부산 사람들은 향토 기업 쉽게 저버리지 않아”

롯데주류도 이런 심정적 틈새를 파고들어야 한다는 점을 잘 안다. 대선주조와 부산의 적통을 두고 다투는 이유이다. 그래서 롯데자이언츠를 전면에 내세워 동질감을 유도하고 있다. 판촉 사원들이 롯데의 유니폼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롯데주류에게 부산 시민들의 마음이 쏠릴지는 미지수이다. 소주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한 지역 신문 기자는 “롯데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신준호 푸르밀(이전 롯데우유) 회장이 지난 2004년 대선주조를 인수했다가 2천5백억원의 시세 차익을 남기고 국내 사모펀드에 넘긴 것이 지난해의 일이다. 소주에 있어서는 시민들이 롯데를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 4월 신준호 회장이 대선주조의 매각을 끝내기 전까지 부산에서는 롯데우유 불매운동까지 제기되는 등 지역 여론이 격앙되었다. 올해 4월1일 부산시의회가 공포한 ‘기업인 예우 및 기업 활동 촉진에 관한 개정 조례’에서는 부산시가 지정한 우수 기업 등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물의를 빚으면 부산시장은 해당 기업에 대해 제공하는 예우 및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 이 조례가 만들어진 계기가 신준호 회장의 대선주조 매각 때문이었다.

엄청난 판촉비에도 롯데주류의 부산 지역 점유율이 미미하자 그룹 고위층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마저 들린다. 비장감이 돌고 있는 롯데주류의 새로운 무기는 16.8˚짜리 신제품 ‘처음처럼 마일드’이다. 롯데주류의 관계자는 “기존 제품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초저도주 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부산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롯데주류의 새 제품 출시에 대해 대선주조측은 “부산은 수도권보다 먼저 저도주 소주시장을 이끌어온 곳이다. 수도권 브랜드의 영향도 덜 받는 곳인 만큼 롯데주류가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지켜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대선주조와 무학소주는 수도권에서 내려온 피서객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다. 수도권 공략을 위한 발판을 다지고 전국권 소주의 지방 공략을 차단하기 위해서 역공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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