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 폭염도 ‘새끼 사랑’ 비켜간다
  • 김연수 (생태사진가) ()
  • 승인 2009.08.0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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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홀리기’로 부르다가 요즘에는 새호리기로 표기하며, 북한에서는 ‘검은조롱이’라고 한다. 매과 조류 중 가장 날렵한 새호리기는 날아다니는 제비도 낚아챌 정도로 빠르다. 우리나라에는 5월 하순에 찾아와 8월까지 번식한다. 까치가 사용한 둥지에 주로 번식하지만, 자체적으로 둥지를 짓기도 한다. 번식 둥지는 나무 꼭대기나 건물의 옥상 철탑을 주로 사용한다.

 의정부로 향하는 동부간선로 차량 흐름 감지용 카메라탑에 새호리기가 둥지를 텄다. 나뭇가지를 듬성듬성 쌓은 어설픈 둥지지만, 밑에는 철판이 놓여 비교적 안전한 곳이다. 하지만 나무 그늘 하나 없이 직사광선이 그대로 온종일 내리비치는 곳이다. 주변은 아파트 단지뿐이었고, 오로지 중랑천의 작은 습지가 그들의 사냥터였다.

 둥지에는 부화된 지 1주일이 채 못 되는 하얀 솜털을 가진 새끼들이 다섯 마리나 있었다. 녀석들은 고개를 처박고 서로 엉켜 있다가,  어미가 먹이를 물고 날아오면 가냘픈 머리를 들고 부리를 벌렸다. 부리는 맹금류의 뾰족하고 안쪽으로 굽은 형태가 아니라, 눈으로 보아도 물렁물렁할 것 같이 연약해 보였고 부리 끝도 무뎌보였다. 새호리기 부부는 대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잠자리 사냥에 모든 힘을 쏟았다. 1시간 동안에 무려 15마리의 잠자리를 잡아왔다. 이따금씩 매미도 잡아왔지만, 어린 녀석들은 잠자리처럼 한입에 먹지는 못했다.

 1주일 후 이곳을 다시 찾았다. 녀석들은 7일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다. 부모들이 먹이 사냥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몸집이 어미의 반 만한 크기로 불어났다. 깃털도 하얀색에서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11시가 넘자 아침부터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주던 어미의 몸놀림이 점차 무뎌졌다. 7월 하순의 한낮 폭염은 모든 생물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피할 곳 없이 내리쬐는 땡볕에 촬영을 포기하고 오찬과 휴식을 취했다. 복사열에 더위를 먹었는지 모든 일이 귀찮고  몸은 한없이 처져버렸다.

 2시간이 지났을까? 장비를 챙기면서 망원 렌즈를 들여다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순간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 둥지에서 어미는 날개를 펴서 새끼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정작 자신은 혀를 내밀고 헉헉거렸다. 그래도 부족한지 하천으로 날아가 깃털에 물을 적셔와 새끼들에게 뿌려주었다. 한낮 기온이 30℃가 넘는 폭염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새호리기의 생존 전략이다.

  새벽부터 땅거미가 질 때까지 연신 먹이를 잡아다 주는  부모의 보살핌 속에 3주째가 되면 몸통이 어미와 거의 비슷해진다. 부화 때부터 있던 흰 깃털이 하나 둘씩 빠지면서 어미와 비슷한 색깔로 변하며 기지개를 켜고 날갯짓을 배운다. 4주째가 되면 둥지를 훌훌 떠나 어미를 따라다니며 사냥술을 배운다.

  오염의 대명사로 여겼던 중랑천 주변의 자연 환경도 이제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맹금류가 번성하면 그 지역 생태계는 건강하다는 신호이다. 생태계의 최후 포식자인 맹금류들이 살아가려면 그 밑에 풍부한 먹이사슬의 뒷받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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