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중독’에 빠져 전국을 달린다
  • 김지혜 (karam1117@sisapress.com)
  • 승인 2009.08.0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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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간 빠짐없이 휠체어 기증하는 황기순씨

ⓒ시사저널 임영무

한때 인기 개그맨이었던 황기순씨(47)를 일산 호수공원에서 만났다. 자전거를 타고 부리나케 달려오는 그의 표정이 밝았다. 해외 원정 도박, 유명 가수와 전 부인 사이의 시끌벅적한 스캔들, 악플러 고소 등 파란만장한 사연을 가진 사람답지 않게 평온하고 느긋했다. 이유를 물으니 “요즘에는 마음도 편하다. 열심히 살다 보니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의 아내는 임신 7개월이고, 그는 <6시 내 고향>이라는 인기 TV 프로그램의 고정 게스트를 맡았다. 아직 수익은 없지만 진행하고 있는 사업도 있다고 한다.

황기순씨의 표정이 밝은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인 ‘사랑의 열매’와 함께 8월13일부터 11일간 ‘사랑 더하기 사이클 대행진’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9년째 꼬박 하고 있는 일이다. 황기순씨와 동료 20여 명이 전국을 돌며 길거리 공연을 하고, 수익금 전액은 휠체어를 사서 장애인 단체에 기부한다. 돈이 되는 방송이나 행사를 희생하면서 하는 일이다. 그는 “기부는 일종의 중독이다. 한 번 시작하면 보람 때문에 그만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성과도 크다. 2008년 한 해 모금액만도 4천4백여 만원, 9년간 기증한 휠체어 수는 1천대가 넘는다.

황기순씨가 처음부터 장애인 돕기나 기부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2000년에 처음 시작할 때는 솔직히 순수한 마음이 적었다. 원정 도박 파문으로 실추된 이미지를 바꾸겠다는 생각도 내심 들었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두려웠다고 했다. “자기 인생도 제대로 못 살면서 무슨 남을 돕느냐”라는 비아냥거림이 들리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는 이 행사에서 용기를 얻었다. 쭈뼛거리며 마이크를 잡으면,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모금함에 100원, 1천원, 1만원을 넣었다. 그 이후 중독되어 지금까지 계속해 왔다.

사랑의 열매측은 오랫동안 같이 공동 모금을 해 온 황기순씨를 믿고 다음 해부터는 직접 그의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하기로 했다. “내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면, 직접 뛰어 기업의 후원도 받을 것이다. 액수도 늘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연은 계속할 예정이다. “기업들이 내는 1억~2억원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한두 푼씩 내는 돈의 가치가 훨씬 더 크다. 누가 볼까 봐 꼬깃꼬깃 접은 100만원짜리 수표, 금반지, 헌혈증서, 달러 등을 보면서 여러 번 감동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황기순씨는 “성실하면 안 되는 일이 없더라. 열심히 방송하면서 빚도 갚아왔다. 이제 길이 보이고 살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몇 달 후면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빠가 된다. 그래서 이번 모금 행사에 참가하는 각오도 남다르다. 그는 “새로 태어날 아이만큼은, 나를 좋은 일을 많이 했던 괜찮은 아빠로 기억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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