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막장’에서 ‘화사’로 돌다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09.07.2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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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상반기 드라마 결산 / <아내의 유혹>에 곤욕 치르다 <찬란한 유산>에 박수

▲ 시청자들의 눈길이 따뜻하고 화사한 드라마로 옮아가고 있다. 맨 왼쪽부터 . ⓒ(왼쪽부터) SBS 제공, MBC제공, MBC제공

2009년 한국 드라마는 MBC의 2008년 연기 대상에 대한 성토로 문을 열었다. 송승헌과 김명민에게 공동 대상을 안겨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네티즌들은 밤을 새워가며 시상 결과를 성토했다. 연기로 보나 작품성으로 보나 공동 대상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에덴의 동쪽>에 출연 중이던 송승헌은 결국, 대상을 거머쥐고야 말았다. 이것은 ‘막장의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에덴의 동쪽>은 극단적인 설정과 폭력성이 어우러지는 준(準)막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드라마의 승승장구와 함께 2009년은 문을 열었다. ‘발연기’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킨 막장 드라마 <너는 내 운명> 역시 2009년 벽두를 장식했다. 이때 많은 사람이 막장 드라마의 범람을 한탄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 몰랐다. 더욱 강한 것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내의 유혹>은 2008년 말에 시작되었으나, 2009년 초에 <너는 내 운명>이 끝나고 난 후 비로소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리고는 막장 토네이도가 되어 한국 드라마계를 강습했다. 사람들은 방영 시간에는 이 드라마를 보고, 방영 시간이 아닐 때에는 이 드라마에 대해 개탄했다. 말도 안 되는 설정 속에서 극단적인 정서가 표출되는 작품이었다. 바로 그때 젊은 층을 위한 막장 드라마가 막장 시대의 정점을 찍는다. <꽃보다 남자>의 등장이다. <아내의 유혹>과 <꽃보다 남자>는 쌍끌이로 막장의 전성기를 이끌며 한국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극단적인 부자, 폭력, 증오, 강렬한 복수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설정의 조합은 불황기에 불안한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뜻있는 사람들은 외쳤다. “이것은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무겁거나 칙칙하면 모두 외면당해

봄이 되자 새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내조의 여왕>이 강림한 것이다. 막장 드라마의 지나친 독기는 사람들을 질리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제 복수극보다 밝고 경쾌한 것을 원했다. 어차피 현실이 충분히 ‘칙칙’한데, 드라마에서까지 칙칙한 느낌을 반복할 필요는 없었다. <내조의 여왕>은 CF퀸 김남주를 비롯해 화사한 느낌의 배우들을 배치한 ‘비막장 민생 코믹극’으로 2009년 봄 드라마계의 원톱이 되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는 기간에는 잠시 혼란기가 이어졌다. 어느 한 작품도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한 백가쟁명의 시기였다. 이들은 웃기거나, 착한 드라마들이었다. 이 중에서 코믹 연기의 양대 거물인 김선아, 차승원을 내세운 <시티홀>이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시티홀>은 지존이 되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사람들은 경쾌하고 화사한 것을 원했다. 같은 시기에 화제가 되었던 <그저 바라보다가>는 지나치게 착한 내용이어서 막장의 시대를 끝냈다는 찬사는 받았지만, 인기는 체면치레를 한 수준에 그쳤다. <신데렐라맨>은 권상우 악플의 수렁에 빠졌다. 

상반기에 독하고 경쾌한 막장 드라마가 아니면서, 무겁거나 칙칙한 느낌을 준 작품들은 재난을 당했다. <남자 이야기> <자명고> <2009 외인구단> 그리고 <친구, 우리들의 전설> 같은 드라마들이다. 전통적인 느낌을 주는 사극들도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두 개의 작품이 상황을 완전히 정리해버렸다. 바로 <선덕여왕>과 <찬란한 유산>이다. <선덕여왕>은 무거운 전통 사극이 아니라 화사하고 트렌디하며 경쾌한 속도감이 있었다. 거기에 ‘아름다운 악인’ 고현정의 매력이 힘을 보탰다. <찬란한 유산>은 2009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장 드라마의 시대를 완전히 끝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 드라마도 경쾌하고 화사한 분위기이다. 착한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막장 드라마 뺨치는 악인이 등장하며, 신데렐라 인생 역전극이라는 점에서는 <꽃보다 남자>와 그 구도가 같다. 마냥 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악행과 복수 등 자극적인 요소가 배치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화사함으로 포장한 것이 <찬란한 유산>의 차별성이었다.

결정적으로 <찬란한 유산>은 ‘따뜻한 느낌’을 주는 드라마이다. 날로 황폐해져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따뜻함’이야말로 요즘 대중이 가장 원하는 가치였다. 암울함이나 무거움이 아닌 화사함과 따뜻함을 갖춘 <찬란한 유산>은 ‘찬란한’ 시청률을 이룩하며 2009년 상반기를 환호 속에 마감했다. 종합하면 올 상반기 한국인은 극단적 구도의 자극, 복수의 쾌감, 경쾌함의 즐거움, 화사함의 현실 미화, 따뜻함의 감동 등에 차례차례 위안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언제나 안정된 시청률을 유지하는 주부 대상 주말 드라마들은 올해도 그 흐름을 이어갔다. <내 사랑 금지옥엽> <유리의 성> <가문의 영광> <솔약국집 아들들> 등이 그 주인공이다. 아침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간헐적으로 막장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상반기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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