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예방하는 지도, 곧 나온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7.2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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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1971년 암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암 연구에 수백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그럼에도, 21세기에 들어선 지금까지 암의 발생 원인조차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불치병’이라는 암을 인

돌잔치에서 아이가 실을 잡으면 부모와 하객은 그 아이가 장수할 것이라며 축하한다. 매년 토정비결을 보며 한 해 운을 점쳐보기도 하고, 나쁜 일을 액땜으로 치부하며 다가올 행운을 기대한다.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심리는 인간 본능에 가깝다. 이 본능은 다가올 질병을 미리 알아내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결국, 암을 예측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암을 예측하면 예방이 가능하다. 이 말대로라면 암 치료 개념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 암은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하는 질병이 된다. 예방주사 한 대로 암을 예방할 수 있는 시대를 기대할 수 있다. 꿈같지만 이런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불치병’이라는 암을 인간이 정복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시사저널>은 5대 대형 병원 암센터 원장을 만나 미래의 암 치료 방향을 물었다.

이런 상상이 가능하다. 20세인 홍길동씨는 40대에 대장암, 50대에 폐암에 걸릴 가능성이 다른 사람에 비해 크다는 진단을 받는다. 의사는 대장에 부담을 주는 음식을 피하고 흡연을 하지 말라는 등 ‘대장암 예방법’을 알려준다. 물론 꾸준하게 검진받는 것도 필수적이다. 홍씨는 대장암과 폐암에 걸리지 않고 장수한다. 꿈같은 이야기이다. 현대 의학 수준으로는 어떤 암이 언제 생길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제 달라지고 있다. 서정선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 소장은 “암을 예측하고 예방하는 것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2년쯤 되면 누구나 자신의 유전자를 해독하게 된다. 암을 예측할 수 있게 되는 시대가 코앞에 있다. 물론 예방법도 동시에 연구되어야 한다”라며 암 예측 시대가 멀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암을 정복하기 위한 노력은 80년 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1930년대 미국에서 최초로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수술을 할 때만 해도 암 완치율은 25%대에 지나지 않았다. 암 환자 10명 중 7명 정도는 사망했다는 이야기이다. 암을 불치병이니 난치병이니 했던 이유이다. 1930~60년대에 방사선과 항암제가 나오면서 암 완치율이 40%대로 올라갔다. 2000년대에는 정상세포를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만 정밀하게 공격하는 표적치료법이 개발되면서 암 환자 10명 중 7명을 살릴 수 있게 되었다. 1세기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암으로 죽을 목숨을 상당수 건질 수 있게 된 셈이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1971년 암과의 전쟁까지 선포했다. 암 연구에 수백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그럼에도, 21세기에 들어선 지금까지 암의 발생 원인조차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인간이 암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암은 천의 얼굴을 가졌다. 같은 폐암이라도 인종마다 다른 형질을 보인다. 같은 동양인이라도 한국인과 일본인이 다르고, 같은 한국인이라도 남성과 여성에게서 다르게 나타난다. 심지어 한 사람에게서 생긴 폐암이라도 발병 시기와 위치에 따라 그 특성이 다르다. 치료하면 할수록 고약한 암으로 탈바꿈한다. 암이 영리하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 (맨 왼쪽부터) 노동영 서울대병원 암센터 원장, 심영목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원장, 이규형 아산서울병원 암센터 소장, 이진수 국립암센터 원장, 정현철 연세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원장. ⓒ시사저널 박은숙

암, 치료보다 예방으로 가야

영리한 암을 뿌리 뽑지 못한 인간은 결국, 암을 만성질환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당뇨와 고혈압처럼 평생 치료하는 질환으로 보자는 말이다. 완치할 수는 없지만 생명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암을 조절하는 이른바 ‘유지요법’이 현재 치료법이다. 심영목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원장은 “암을 없앨 요량으로 강한 약을 사용하면 환자가 견디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다. 최근에는 약한 약을 사용해서 꾸준히 치료하면 암으로 사망하는 일은 없다”라고 유지요법을 설명했다.

현재 암은 불치병도 아니고 완치할 수 있는 병도 아니다. 즉, 대부분의 암을 완벽하게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다. 현재까지 인간은 이미 생긴 암을 제거하려고만 노력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암이 생기기 전에 예측하고 예방하는 데에 소홀했던 셈이다. 이에 따라 암이 생긴 이후에 치료하던 것에서 암이 생기기 전에 예방하는 방법으로 치료 방향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이른바 후암(post-cancer) 단계에서 전암(pre-cancer) 단계로 눈을 돌려 새로운 암 치료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정현철 연세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원장은 “어떤 약을 쓰더라도 폐암을 완치할 가능성은 10%이다. 금연하면 30%가량 폐암을 예방할 수 있다. 치료보다 예방으로 가야 하는 이유이다”라며 암 예방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게놈 지도 분석하면 암 확인 가능해

암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암을 예측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들은 유전자에서 찾고 있다. 정현철 원장은 “1980년대 미국의 연구 결과를 보면, 치료받은 유방암 환자 10명 중 3명이 재발했다. 3명의 재발을 예방하기 위해 10명에게 모두 항암제 치료를 했다. 7명은 불필요한 치료를 받는 셈이다. 결국, 어떤 환자가 재발할 것인지 알아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유전자 검사로 알아낼 수 있었다. 특정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환자는 수술 2년 후 재발 확률이 80%로 높게 나타났다”라며 유전자 연구의 유효성을 강조했다.

대부분의 세포에는 핵(核)이 있다. 핵 속에 부모에게서 각각 23개씩 물려받은 염색체 46개가 있다. 염색체는 단백질과 DNA(디옥시리보핵산)로 구성되어 있다. DNA가 이중 나선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1953년에 밝혀진 바 있다. 이중 나선구조에서 사다리 기둥에 해당하는 부분은 당과 인산으로 만들어져 있다. 발판에 해당하는 부분이 유전 정보를 저장하는 아데닌(A)과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등 4가지 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 4가지 염기가 배열되어 있는 순서를 염기서열이라고 한다. A·G·C·T 염기에 담겨 있는 유전 정보를 게놈(genome)이라고 하고, 이를 해독한 것이 흔히 말하는 게놈 지도(genome map)이다. 슈퍼마켓에서 구입하는 농산물에는 바코드가 찍혀 있다. 이를 통해 특정 농산물의 가격뿐만 아니라 생산자, 생산 시기, 농약 유무, 원산지, 품종 등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다. 게놈 지도가 사람의 바코드인 셈이다.

이 염기서열에 이상이 생기면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AGCT 순이 정상이라면, GTCA로 변이되어 있을 때 병이 생긴다. 또, 특정 염기가 뭉텅이로 파괴되기도 한다. 게놈 지도를 분석하면 이런 이상 유무를 파악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특정 암을 일으키거나 억제하는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눈·코·입이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은 염기서열이 99.9%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피부색, 눈 색깔, 생김새, 성격이 다른 이유는 0.1%의 차이에 있다. 개인마다 다른 염기를 SNP라고 한다. 마치 지문처럼 개인의 차이를 명확하게 해 준다. 같은 암이라도 개인마다 특성이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노동영 서울대병원 암센터 원장은 “담배를 피운다고 모두 폐암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 SNP에 이상이 있고 담배를 피우면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사람이 있다. 이를 밝혀내기 위해 유전자를 이용한 암 예측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태어난 아기의 게놈 지도를 해독했다면 몇 년 후에 어떤 암이 생길지 예측할 수 있다. 이를 알면 암 예방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50세에 폐암에 걸릴 가능성이 70%라면 의사는 담배를 절대로 피우지 말라는 처방을 내릴 수 있다. 이런 꿈같은 일이 이미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 여배우 크리스티나 애플게이트(38)는 최근 한쪽 유방에서 작은 암세포를 발견했다. 간단한 치료로 암을 제거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유방을 절제하고 재건하는 수술을 받았다. 유전자 검사에서 BRAC1이라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또, 그녀의 모친이 유방암과 자궁암에 걸린 가족력도 있었다. 앞으로 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므로 아예 유방을 제거해버린 것이다. 물론 이 여성에게는 유방암이 더 이상 생기지 않게 되었고, 새로운 암의 발생·재발, 전이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났다.

유전자 정보 알면 ‘맞춤형 치료’

최근에 개인 맞춤형 치료 시대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그러나 환자는 피부로 느낄 수 없다. 종합감기약은 이런저런 감기 증상을 완화하는 성분을 모두 넣은 약이다. 항암제도 마찬가지이다. ‘개인 암’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약이다. A라는 환자는 항암제로 완치되었지만, B라는 환자는 치료되지 않고 결국 사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암 치료에도 운이 따르는 셈이다. 같은 병에 같은 약을, 같은 시각에 같은 양을 투여해도 병이 나은 사람, 별 차도가 없는 사람, 심지어 증세가 악화하는 사람이 생긴다. 

게놈 지도에서 암과 관련된 유전자 정보를 알아내면 말 그대로 개인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진다. 그냥 항암제가 아니라 ‘홍길동의 항암제’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서정선 서울대병원 유전체의학연구소 소장과 김성진 가천의대 이길여 암·당뇨연구원 원장이 최근 개인 게놈 지도를 해독했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기술이다. 그러나 현재 게놈 분석에는 수개월에 수억 원대의 비용이 필요하다. 향후 5년 내 이 금액은 100만원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전체 염기서열 30억 쌍을 해독하지 않고 특정 암과 관련된 염기서열만 분석하면 10만원 정도만으로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 전망대로라면 사람마다 자신의 게놈 지도를 USB카드에 넣고 다닐 수 있게 된다. 

암 예측 시대에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행되어야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암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면 어떻게 예방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이진수 국립암센터 원장은 “유전자 변이를 발견했다 해도 현재로서는 고칠 방법이 없다. 대장암처럼 용종(암의 전 단계)을 제거하면 암을 예방하는 방법이 마련되어야 한다”라며 예방법 마련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암 유전자를 찾아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규형 서울아산병원 암센터 소장은 “유전자를 이용한 암 예측과 예방은 긍정적인 암 치료 방향이다. 그러나 암 관련 유전자가 말처럼 단기간에 밝혀지지는 않을 것 같다”라며 암 유전자 해독의 난해함을 강조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게놈 지도를 환자에게 공개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환자가 자신에게 닥칠 암을 알면 삶이 불안해질 것이라는 우려이다. 암에 잘 걸릴 것으로 확인되면 보험 가입이 거절될 수도 있다. 결혼이나 취업에도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유전자 차별금지법까지 마련했다.
서울대병원 암센터의 노원장은 “암을 예방한다는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역기능도 있다. 몰라도 될 것을 알아서 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할 수 있다. 삶이 전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유전자는 핵과 같다. 잘 쓰면 유용하지만 잘못 쓰면 폭탄이 된다”라며 우려했다. 암을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는 시대가 쏜살같이 다가오고 있다. 암 치료 방향에 큰 획을 그을 만한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인간이 암이라는 거대한 공포에서 해방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오히려 사회적 혼란까지 초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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