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 키즈’의 선두 주자 “집중력이 나를 키웠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09.07.21 17: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US 오픈 여자골프대회 우승한 지은희 선수 / “소렌스탐 닮고 싶어”

ⓒ시사저널 임영무

세계 최고 권위의 US 오픈 여자골프대회는 유독 한국 여자선수와 인연이 깊다. 박세리(1998년) 선수가 물꼬를 텄고, 김주연(2005년)과 박인비(2008년)가 뒤를 이었다. 올해는 지은희 선수(23)가 지난 7월13일 새벽에 역전승을 하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번 우승으로 지은희 선수는 ‘세리 키즈’의 선두 주자임을 증명하며 우승 상금과 우승 보너스를 포함해 10억여 원을 벌어들였다. 지난 7월17일 지은희 선수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며 인터뷰했다. 바쁘고 피곤할 텐데 늘 웃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기록을 보니 유독 여름에 강하다. 지난해 웨그먼스 우승도 6월이다.

5월생이라 그런지 여름에 강하다. 추위는 많이 타지만 더위는 안 탄다. 봄에는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한다. 약도 먹고. 요즘은 도핑 검사 때문에 약도 가려 먹는다. 이번 US 오픈 때는 알레르기가 심하지 않았다. 시합 직전까지는 심했는데.

마지막 남은 브리티시 오픈은 변덕스런 날씨로 유명하다.

브리티시 오픈은 바람도 심하고 비도 많고 추운데, 또 이상하게 두 번 출전했는데 두 번 다 톱 5 안에 들었다.

 브리티시도 기대해도 좋은가.

두 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은 나도 바라는 바이다.

프로에 입문한 뒤에도 꾸준히 성적을 올리고 슬럼프가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 잘하다가 LPGA 입문 첫해는 초반에 안 좋아 마음고생이 있었는데 지난해 갑자기 웨그먼스 우승을 하게 되면서 전환이 되었다.

게임이 안 풀릴 때는 어떻게 극복하나.

잘되다가 갑자기 안 되기 시작하면 스트레스를 받지만 억지로 어떻게 하겠다고 그러면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골프라는 것이 계속 잘할 수 없는 스포츠이다. ‘이럴 수도 있지’ ‘하다 보면 나아지겠지’라는 식으로 생각한다. 안 풀릴 때는 공격적으로 가는 것보다는 조금 더 편안하게 돌아가는 편이다. 그래야 긴장도 덜 된다.

성격이 어떤 편인가.

집중력이라고 할까, 그런 게 있다. 한 가지를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놓치지 않는다. TV를 보거나 그럴 때 등 어떤 무엇에 빠져 있으면 누가 옆에서 뭐라고 해도 못 알아듣는다.

급한 편인가.

그럴 때도 있고 안 그럴 때도 있고. 다들 나를 O형으로 보는데 나는 전형적인 A형이다.(웃음)

뒤끝이 있는 성격인가 보다.

좀 마음속으로 담아둔다.(웃음) 내가 좀 말이 없다. 아빠랑 같이 투어를 돌 때는 주로 아빠만 이야기하고 나는 입 다물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은근히 웃기는 구석이 있다.

완벽주의자라고 하던데.

정확하지 않은 것은 하기 싫다. 이를테면 영어도 대화에는 지장이 없지만 공식 인터뷰는 내가 좀더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기 전에는 아직 부담스럽다. 대충대충이 싫다.

두 번의 LPGA 우승을 역전승으로 일구어내는 등 뒷심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 요즘 불독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원래 별명은 웃는 모습이 닮았다고 해서 미키마우스이다.

긴장될 때는 어떻게 하나.

호흡을 많이 한다. 편안하게 두 번 정도 호흡하고 한 템포 늦추고.

좋은 면이든 나쁜 면이든 가장 기억에 남는 시합은.

지난해 2월 하와이에서 열린 LPGA 투어 필즈 오픈에서 예선 탈락한 적이 있다. 기록을 맡은 일본 선수가 오기를 하는 바람에. 내가 확인을 좀더 잘했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크다. 잘해서 기억에 남는 시합은 마지막 날 9 언더를 몰아친 올해 스테이트팜 클래식 대회이다. 잘 되지 않아서 밑에 있다가 나중에 순위가 쭉 올라갔다. 아빠도 엄청 기뻐하셨다.

골프 선수로서 역할 모델은 누구인가.

누구나 다 그 선수라고 말하지만, 나 역시 소렌스탐이다. 정말 대단한 선수이다. 본받고 싶다.

자신의 약점과 강점은.

약점은 숏게임이 약하고, 강한 것은 드라이버 샷과 아이언 샷이다.

주요 대회 우승은 다 역전승을 했는데 숏게임이 약한데도 역전승을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약간의 운도 따르고.

징크스도 있나.

선수는 다 징크스가 있다. 나는 공을 홀수 번호만 친다.

아버지가 수상스키 국가대표팀 감독이셨는데.

ⓒ시사저널 임영무

어렸을 때는 수상스키를 많이 탔다. 거의 물에서 놀았다. 그렇지만 수상스키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나나 아빠나, 운동으로 즐긴 것이다.

골프는 누구의 선택이었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가 추천했다. 그때가 박세리 선수의 전성기였다. 박선수의 활약을 보고 나도 따라하고 싶었다. 새로 시작한 것이라 그런지 수상스키보다 골프가 더 재미있었다. 다른 느낌이었고.

아버지가 골프를 가르치셨지만 이제는 아버지보다 더 잘 치겠다.

당연하다.(웃음) 고등학교 때부터 아빠보다 잘 치기 시작했다. 그때 직업으로 골프를 선택했다. 그전에는 아빠가 훨씬 잘 치셨다. 언더도 치시고. 지금은 안 치신지 오래되셔서, 또 나를 따라다니시다 보니까 못 치게 되었고. 아빠는 한국에 와서 친구 분과 가끔 치시는 것 같다.

좋아서 시작했다 해도 직업으로 하다 보면 짜증날 때도 있을 텐데.

슬럼프나 볼이 잘 안 맞을 때 짜증이 많이 난다. 하지만 또 잘 맞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연습에 대한 보람을 느낀다.

투어 다니기가 힘들지 않나.

아무래도 볼 치는 것보다 호텔에서 호텔로, 시합장에서 다른 시합장으로 이동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 매주 짐 싸고 푸는 게 힘들다.

버팀목인 아버지가 안 계실 때도 주요 대회에서 우승했다. 독립심도 강한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때는 많이 의지하고 그랬는데, 하다 보니 이게 내일이니까…. 내가 하는 것이 더 편하고. 혼자하고 싶고. 맏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투어 생활이 외로울 것 같은데.

부모님과 함께 다녀도 외로운 부분이 있다.

외로움을 무엇으로 달래나.

휴대전화와 컴퓨터. 이것 없으면 안 된다.(웃음)

좋아하는 드라마나 스타도 있나.

미국에서도 <선덕여왕>이나 <찬란한 유산>을 재미있게 보았다. <패밀리가 떴다>도 챙겨보고. 꼭 집어서 말하기는 그렇지만 내 나이 또래가 좋아하는 스타는 다 좋다. 2PM, 빅뱅, 손담비 등.

춤도 잘추나.

못 춘다. 몸치이다. 

운동선수라 또래 친구들보다 손해 보는 것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친구랑 어울리거나 학교생활에 대한 추억이 없다. 친구들이 해외에서 경기하는 것을 부러워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그런다. “그럼 뭐해, 매일 골프장인데….”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친구를 만나는 것이다. 투어 중에는 전화나 메신저로 연락한다. 프로 친구는 아니고 학교 친구들과 자주 연락한다.

쉴 때는 무엇을 하나.

미국에서는 못 쉬고 한국에 들어와야 쉰다. 취미는 음악 듣기와 쇼핑이다. 막 사지는 않는다. 마음에 드는 것만 산다. 투어 중 쉴 때는 1주일 밖에 안 되니까, 휴가는 시합이 제일 없는 겨울이 진짜 휴가이다. 이제 외국도 한 번 가보려고 한다. 놀러 가는 것 하고 시합하러 외국 가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홍대 앞 카페나 클럽, 이태원 맛집도 자주 간다. 

어지간한 나라는 시합하러 다 가보지 않았나.

골프장이나 호텔만 간 것이다. 진짜 모른다. 어디 가봤냐고 누가 물어보면 가 본 나라인데도 아는 것이 없다. 미국에 골프장 빼고는 뉴욕시티에 가본 것이 전부이다.

돈은 누가 관리하나.

부모님이 관리한다. 용돈을 타서 쓴다.

골프를 안 했으면 무엇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공부했을 것 같다. 공부는 사실 초등학교 때까지 밖에 못한 셈이다. 그런데 그때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다.

몇 살까지 현역 선수로 뛰고 싶나.

서른 전에 은퇴하고 싶다(지선수의 부친인 지영기씨도 딸이 서른 전에 이루고 싶은 것 다 이루고 은퇴해 결혼도 하고 공부도 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 다음에는?

아직 모르겠다.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다. 대학(중앙대 사회체육학과)은 졸업했다. 교수도 하고 싶다.

부친 지영기씨는 딸이 겸손하고 늘 배우고 도전하는 선수가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부친이 보는 지선수의 장점은 꾸준하다는 점이다. 2005년 프로리그에 데뷔한 그녀는 이른바 대박이 없었지만 꾸준히 스코어보드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선수는 ‘한 해에 준우승만 일곱 번을 하며’ 부친의 속을 태웠다. 부친인 지영기씨는 “그것도 실력이다”라고 말했다. 지씨는 “꾸준히 배우고자 하는 자세로 계속 도전하면 뜻을 이룰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 무대에 데뷔한 그녀는 지난해 6월 1년 여 만에 LPGA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한 달 뒤 신지애가 브리티시 오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세리 키즈의 라이벌격인 두 선수가 장군과 멍군을 번갈아 둔 셈이다. 그리고 올해 US 오픈에서 지선수가 메이저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올해 남은 메이저 대회는 7월 말의 브리티시 오픈이다. 지은희 선수는 지난 19일 출국해 에비앙 마스터스와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 오픈에 연속 출전한다. 유난히 여름 시즌에 강한 지은희 선수의 활약이 기대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