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 ‘노출’ 했다고 누가 무대를 가리랴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
  • 승인 2009.07.2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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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관련된 오해와 논란

▲ ‘파격’ ‘노골적’이라는 수식어까지 그대로 수입해 큰 관심을 모았던 한국판 공연. ⓒ헤븐 제공

국내 뮤지컬 애호가들이 올해 하반기 가장 기다려온 화제작으로 꼽혀온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지난 7월4일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막을 올렸다. 이 작품은 개막 전부터 많은 논란과 화제를 낳았다. ‘적나라한 성애 묘사와 노출 수위가 높은’ 작품이라는 수식이 따라다녔다. 국내 최대의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이 제목을 입력하면 연관 검색어로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노출 뮤지컬’이다.

무대 위에서 배우의 노출은 아무리 자연스러운 작품의 일부로 설정되었다고 해도 관객의 입장에서는 눈앞에서 타인의 은밀한 속살을 본다는 사실에 초연해지기 힘든 것이다. 비록 그 노출이 작품 속에서 충분한 개연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단지 눈요깃거리일 뿐이라는 의혹을 받게 될 경우 매일 같은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는 관객들의 묘한 시선을 견뎌야 하는 부담을 가지게 된다. 창작진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노출 연기가 있는 작품 속에서 관객들을 관음적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차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신체 노출에 비교적 관대한 모던 댄스 이외에도 오페라, 연극, 뮤지컬 무대 위에서 배우가 관객에게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내보이는 것은, 연출가가 잘 알려진 고전을 새롭게 해석할 때와 충격요법을 써 현대성과 진보성을 드러내는 경우에 많다. 두 가지가 맞아떨어지는 경우 흥행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연극 무대에서 성기 노출이 용인될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행위가 공공의 미풍양속을 해치는 이른바 공연음란죄에 해당되기에는 성적인 흥분을 목적으로 연출된 것이 아니고 그 정도나 분량 역시 지극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국내 공연물의 관람 가능 연령은 제작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데 이는 서구 공연계도 마찬가지이다. 공연은 영화와 달리 수정 작업이 가능하고 같은 무대라도 좌석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따라서 공연은 영화와 같은 관람 등급 심사에서 자유롭다. 영화는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에서 등급 심사를 받아야 되지만, 공연의 경우 1999년에 사전각본심의제도가 폐지되었다.

최근 이러한 이슈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작품인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성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청소년들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 기성세대의 폭압적인 귄위에 눌려 종국에는 파멸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주로 밝고 해피엔딩에 익숙한 뮤지컬에서는 보기 힘든 낯설고 도발적인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 독일 표현주의 극작가인 프랑크 베데킨트의 1891년 희곡 <봄의 깨어남>을 원작으로 한 이 뮤지컬 속에는 십대 소녀의 임신과 낙태수술 중 죽음, 여자 배우의 상반신과 남자 배우가 엉덩이를 노출하며 벌이는 섹스신, 권총 자살, 집단 수음, 동성애 등 상상을 뛰어넘는 장면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노랫말에는 홍대 앞 인디밴드의 공연에서나 들을 수 있는 거친 욕설이 들어 있고 기성세대(부모, 교사)에 대한 증오심이 곳곳에 나타난다. 고등학생 이상 관람가로 중학생은 부모님을 동반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공연(왼쪽)과 한국판 공연을 준비하는 워크숍 현장. ⓒ헤븐 제공

록 콘서트 같은 표현 방식에 매료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 2007년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무려 8개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개막하기도 전에 작품의 일부인 노골적인 성애 묘사 부분만 집중적으로 회자되면서 정작 본질적인 작품성이 그 안에 매몰될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한편, 공연 개막을 목전에 두고 제작사는 극장 입구에 이른바 ‘몰카’를 예방하겠다는 명분으로 공항에서나 볼 수 있는 검색대를 설치했다. 브로드웨이 공연을 객석에서 몰래 캠코더로 촬영한 동영상이 P2P 공유사이트에서 오가는 것과 같은 상황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매스컴에서는 이 사실을 경쟁적으로 소개하면서 일부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서는 마치 성인 콘텐츠로 오해될 만큼의 선정적인 제목을 달고 소개되었다. 결과는 양면적이다.

같은 공연을 이미 선보인 미국·영국·일본에서는 선별적인 소지품 검사에 그친 데 비해, 검색대까지 동원한 국내 공연계의 강도 높은 조치는 관객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설정한 것이라는 비판 여론도 있다. 반면에 많은 사람의 뇌리에 문제작으로 각인되며 작품이 알려지는 이른바 ‘노이즈 마케팅’ 효과도 있다.

어쨌거나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대표적인 수식어는 파격, 논란, 노출이 되었다. 하지만 작품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2006년 봄, 오프브로드웨이의 소극장에서 첫선을 보일 당시 포스터 이미지는 19세기 복장을 한 소녀가 스탠딩 마이크와 함께 있는 것이었다. 뉴욕타임즈는 이 작품에 대해 “브로드웨이는 이제 더 이상 그전과 같을 수 없다”라고 했다. 19세기의 원작을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노래를 부르는 순간은 21세기의 얼터너티브록 콘서트처럼 행동한다는 도발적인 표현 방식으로 원작의 진지하고도 비극적인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단일 세트와 무대 위 7인조 라이브 밴드, 특별한 조명 효과가 부각되는 뛰어난 연출도 이 작품이 그저 노출로 인한 오해와 논란에 빠져 있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수작이다.

<렌트>나 <헤드윅>처럼 현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록 음악이 등장하는 것은, 비록 전체 뮤지컬 중에서 록 음악을 사용한 것이 소수라 할지라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는 한 세기 전에 독일의 청교도 학교에서 억압받는 청소년들이 눌린 분노를 내면에서 폭발시키는 장면에서, 젊은 배우들이 품속에서 마이크를 꺼내들고 알이엠·유투·너바나·라디오헤드 스타일의 음악을 독특한 몸짓으로 부른다. 1980 ~90년대에 전세계를 풍미했던 얼터너티브록 음악의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의 눈과 귀가 어찌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있을까? 불필요한 논란에서 벗어나 새로운 차원에서 오감 체험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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