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의 패배 반면교사로 삼아라
  •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
  • 승인 2009.07.2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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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일본 자민당이 흔들리고 있다. 소위 55년 체제라고 하는 자민당 장기 집권의 막이 내리는 전주곡을 듣는 것 같다.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일본 정치에서 ‘보수본류(保守本流)’로 반세기 이상 일본을 통치해 온 자민당의 명운이 다해가는 것 같다. 물론 아주 짧은 기간 정권을 호소가와에게 내주기도 했고 사회당의 무라야마 총리와 연정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자민당은 언제나 다수당으로서 일본 정치의 주류를 이루어왔다.

개혁의 선봉장이었던 고이즈미 총리가 자민당을 떠난 다음 일본 국민들은 자민당으로부터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바톤을 이어받은 아베, 후쿠다, 아소 총리는 전통적인 자민당의 이미지에서 한 걸음도 더 나가지 못했다.

지난 12일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은 이전보다 20석을 더 얻어 54석이 되었고, 자민당은 10석을 잃어버려 38석만 획득하는 참패를 해서 1965년 이래 최초로 다수당의 자리를 넘겨주게 되었다. 결국, 아소 총리는 21일 중의원을 해산하고 오는 8월30일 총선을 실시하기로 했다.

유권자의 눈 무서운 줄 알아야

자민당은 왜 이렇게 침통하게 패배했는가. 고도 경제 성장 과정을 통해 공룡화된 자민당은 그동안 여러 차례 당내 개혁과 정치 개혁을 시도하다가 현실적 한계에 부딪혀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도 지난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을 하고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것은 기존의 자민당 이미지와는 다르게 이상한 사람이라는 ‘헨진(變人)’ 소리를 들어가던 고이즈미 총리가 자민당의 이해와 상반되는 개혁을 저돌적으로 주도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전후의 양대 정치 세력이었던 자민당과 사회당은 붕괴되기 시작하고 있다. 사회당, 민사당, 공산당은 이미 일본 정치에서 퇴조의 길을 걷고 있고 자민당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일본 국민들은 민주당에 기대를 보낸다. 요미우리신문의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민주당 지지가 30.1%, 자민당 지지가 24.8%이고,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아소 총리에 대한 지지는 20%에 불과하며 68%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대로 가면 8월 총선에서는 자민당의 파벌정치와 수구적 관행을 견디지 못해 뛰쳐나온 오자와, 칸, 하토야마 등의 개혁파가 주도하는 민주당이 집권할 것이라고 점칠 수 있다.

제헌절에도 우리나라 국회는 대치 국면에 있다. 우리 정당은 정책 경쟁보다는 상대 정당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한 반사 이익을 통해 정치를 해 왔다.

우리 유권자들이 총선과 대선, 그리고 지방선거에서 한 번은 여당을 지지하고 다른 한 번은 야당을 선택하는 이유는 이전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의 자만심에 대한 심판과 국정 운영에 대한 실망에서 기인한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유권자의 눈은 매섭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획기적인 당내 개혁과 미래 정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유권자로부터 언제나 열렬한 지지와 매몰찬 배신의 반복에 힘겨워 할 것이다. 정치적 신념이나 정책 기획 능력보다 일렬종대의 일사불란한 친위대 같은 의정 활동을 통해서는 국민들에게 신임을 얻기 어렵다. 유권자들은 타협과 조정, 조화와 포용이 없고 결사적인 행동만 있는 정치인을 능력 있는 정치인이라고 보지 않는다. 답을 정해 놓고 싸우는 정치는, 문제를 한 번도 풀어보지 않고 답만 맞추어보는 수험생과 같다.

이제 국민들의 정치적 의식은 매우 성숙되어 있다. 그리고 그 힘이 결집되면 매우 큰 힘으로 정치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양대 정당으로 발전한 한국 정치에서 이름만 조금씩 바꾸어온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그 지지 기반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유권자들의 연령 구조나 의식 구조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공룡 같은 기존 정당에 등을 돌리고 개혁적인 새로운 정당으로 배를 옮겨 탈지도 모른다. 일본 자민당의 몰락에서 우리 정당과 정치인은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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