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부정까지 산업화?
  •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
  • 승인 2009.07.01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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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도 시험 불법 행위 기승…‘간첩 장비’수준의 첨단 기기 판매 조직도 활개

▲ 중국 동부 산둥 성의 성도 지난(濟南)에서 6천명이 넘는 수험생들이 산둥예술디자인아카데미 입학 시험을 치르고 있다. ⓒ뉴시스

▲ 중국 동부 산둥 성의 성도 지난(濟南)에서 6천명이 넘는 수험생들이 산둥예술디자인아카데미 입학 시험을 치르고 있다. ⓒ뉴시스

가을에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중국에서는 ‘가오카오(高考)’라고 불리는 대학입시가 6월 초에 치러진다. 그런데 올해 입시에서는 믿기 어려운 시험 부정 행위들이 적발되어 중국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조직화되고 첨단화된 ‘산업화형’ 부정 행위가 발생한 곳은 지린(吉林) 성 숭위안(松原) 시이다. 마치 시계처럼 만들어져 화면으로 답안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된 기기, 외부에 보이지 않도록 설계된 아주 작은 이어폰으로 귀에 끼고 답안을 들을 수 있는 기기가 공공연히 판매되어 고사장에서 사용되었다. 지금까지 발각된 이러한 기기는 모두 6백83건으로서 관련자 34명이 체포되었다.

무선통신·컴퓨터에 능통한 박사 출신도 가담

체포된 사람 명단 중에는 뜻밖에도 현재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를 포함해 두 명의 여성 교사도 들어 있다. 이 두 명의 교사는 모두 27명의 수험생들에게 총 40만 위안(약 8천만원)에 이르는 기기를 판매했다. 그중 한 명인 리우옌화(劉艶華)라는 영어 교사는 공부를 못해 대학을 들어가기 어려운 자기 아들을 위해 범죄에 가담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몇 명의 수험생을 끌어들여야 비로소 기기를 구입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다른 수험생까지 끌어들였다.

하지만 이 교사는 단지 하부 조직일 뿐, 이 ‘부정 시험 장비’ 판매 조직은 치밀한 생산과 판매, 운송 체계를 갖춘 조직으로서 그중에는 무선통신 설비와 컴퓨터에 정통한 박사 출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부정 시험 장비’는 지우개나 자 등으로 위장되고 그 위에 합성수지가 입혀져서 금속탐지기도 적발할 수 없는 정밀함을 자랑하는 일종의 ‘간첩 장비’ 수준이었다. 이들은 우선 고사장 현장에서 수험생으로 위장한 조직원이 시험지를 촬영해 전송한다. 그리고 특별한 대우를 받고 고용된 ‘시험의 달인’으로 하여금 답안을 작성하게 한 뒤 장비를 통해 답안을 음성이나 화면으로 수험생에게 전송하는 방식을 취했다. 

숭위안 시에서 벌어진 대담한 부정 시험 양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숭위안 시의 각 고등학교 담벼락 주변 곳곳에는 이런 ‘입시 부정 장비’를 판매한다는 쪽지 광고가 붙었다. 현지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수험생들과 부모들은 공공연히 “어떻게 하면 부정 시험을 치를 수 있는가?”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즉, 어떻게 장비를 구입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가를 둘러싸고 ‘진지한’ 토론이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부정시험장비’는 전 도시에 걸쳐 공공연한 비밀로 되어 있었던 셈이다. 

뿐만 아니라 고사장 현장에서 집단적으로 공공연한 커닝이 행해졌고, 이를 적발한 한 감독관은 시험이 끝난 뒤 고사장을 나가다가 적발된 학생의 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해 입원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어떤 고사장에서는 한 수험생이 옆 학생의 답안지를 강탈하려다 답안지가 찢어지고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또 다른 고사장에서는 수험생이 감독관에게 커닝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돈을 주기도 했다. 숭위안 시는 ‘정상적인’ 학생만 바보가 되는 도시로 변해 버렸다.

부정 행위가 숭위안 시에서만 벌어진 것은 아니다. 허베이(河北省) 성에 위치한 바오딩(保定) 시에서 대학입시가 치러지고 있던 지난 6월8일 오전 10시35분, 바오딩 시 제7고사장의 감측소에서 부정 시험의 징후로 보이는 무선신호 주파수가 포착되었다. 감측 담당자는 이 무선신호 주파수를 추적하던 중 한 여자가 고사장의 한 학생에게 시험 답안을 불러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즉시 무선관리국 감측 관계자와 경찰이 제7 고사장과 가까운 곳으로 출동했다. 방향 측정을 거쳐 마침내 신호 발사 지점이 바오딩 시 제7 중학교 부근 건물의 한 사무실인 것을 알아냈다. 경찰이 신속히 출동해 방문을 열었을 때 한 여자가 스피커로 답안을 불러주고 있었다. 방 안에는 컴퓨터가 켜져 있었고 메신저를 통해 닉네임 ‘최후의 승리’로부터 전송된 시험 답안이 화면에 떠 있었다.

“부정 행위 엄벌할 법률 제정 시급” 

후베이(湖北) 성 교육고시원은 2009년 후베이 성 대입 시험에서 모두 1백42건의 불법 부정 행위가 적발되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이러한 부정 행위는 대리 시험을 치거나 쪽지를 휴대하거나 커닝,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 행위 등등이었다. 이 중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 행위가 가장 많았다.

중국에는 “한 번의 시험이 평생을 결정한다(一考定終身)”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대학 졸업장이 급여뿐 아니라 사회적 신분을 높일 수 있는 ‘결정적인’ 수단으로 간주되곤 한다. 이 때문에 입시 경쟁이 치열하며, 입시를 둘러싼 부정 행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도 이러한 대입 시험 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가 커져가고 있다. 이에 대한 개선책으로 장수(江蘇) 성에서는 학생들의 종합평가 점수를 합산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일부 대학에서는 새로운 신입생 선발 방식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상하이(上海)의 푸단(復旦) 대학이나 자퉁(交通) 대학에서는 한 번 치러지는 입시 점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면접만으로 신입생의 일부를 선발하는 이른바 ‘자주(自主) 선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 제도는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한편, 중국에서는 범람하고 있는 입시 부정 행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를 엄격히 처벌하는 법률을 시급히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입시 부정 행위는 단지 부정 시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사회 문제로 확대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조속히 ‘시험 부정 행위죄’를 신설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대리 시험은 곧바로 범죄 구성 요건으로 규정되어 있고, 미국에서도 부정 시험 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이 별도로 규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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