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기다린 보수, 목소리 높이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6.16 18: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거 정국의 이대통령 책임론 등에 반기…안보 등 의제 삼아 발언 늘려

▲ 강연하고 있는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 ⓒ연합뉴스

조문 정국에서 숨죽이고 있던 보수 인사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로 강경 보수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는 6월9일 국민행동본부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도전하다가 반격을 당하자 스스로 투신을 선택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도 가세했다. 주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자신만의 도피일 뿐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냉혹하고 무모한 승부수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보수 진영 내부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는 인식이 한결같을 수는 없다.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기준이다. 극우 인사들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서거’가 아니라 죽음이고 자살이다. 반면, 뉴라이트 진영은 ‘그래도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까지 지낸 분이다. 애도를 표한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양측은 같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서거 원인에 대해서 정부를 탓하고 “독재 정권 물러나라”라는 식의 구호가 나오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일단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데 양측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최근 목소리를 높이는 보수 인사들이 진보 진영을 체계적으로 공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계획적이지도 못하다. 말하지 못하는 현실을 참다 참다가 결국, 견디지 못하고 한마디씩 던지는 분위기이다. 보수 단체의 한 간사는 “진보 진영의 상대는 우리가 아니라 정부이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서 우리가 본심을 말해봐야 손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보수 논객인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보수 인사들의 지금 발언이 어떤 로드맵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보수들은 침묵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주제는 보수 진영에 회피의 대상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이미 사회 분위기가 원인을 규명해보자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조건이 되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며 이용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라고 말한다. 대신 다른 의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안보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북핵 위기와 북한의 정권 세습은 모처럼 맞은 호기이다.

‘6·10 범국민대회’가 예정된 하루 전인 6월9일, 뉴라이트 전국연합을 비롯해 자유총연맹, 재향군인회 등 50개 단체는 ‘안보·경제 위기 극복과 국민 통합을 강조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보수 언론의 프레임도 보수 진영의 의제 설정을 돕고 있다.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지난 5월25일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다음 날인 26일자 신문의 1면을 모두 핵실험과 관련한 내용으로 채웠다. 한겨레·경향신문 등과 비교했을 때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한 기사는 대폭 감소했다. 게다가 보수 단체나 정치인들의 최근 발언은 국민과 직접 소통하기보다 보수 언론을 통해 주장하고 확산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앞선 보수 단체의 시국선언도 거리가 아닌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 6월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주최로 ‘시국선언 교수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밀린다는 인상 안 주려는 의도도 있는 듯”

일각에서는 북한의 김정운 3대 세습과 관련해서 쏟아지는 정보를 두고 ‘서거 정국을 북풍 정국으로 바꾸려고 한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원이 ‘김정운 후계설’ 등을 배포하는 것을 놓고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정부·여당이 서거 정국을 대북 정국으로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최근 보수 진영의 공격적인 발언들을 ‘정당 방위’ 차원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나 보수 진영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서 “최소한의 할 말만 한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진보 진영이 추모 분위기를 이용해서 너무 지나치게 공격했다는 이야기였다. ‘시대정신재단’의 허현준 사무국장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으니까 공은 공대로 평가하고 과는 과대로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한데 무조건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서 죽었다고 몰아가니까 우리의 입장을 제대로 알려야 하는 측면도 있다”라고 말했다.

본심의 표출이든 정당 방위든 보수 진영이 시나브로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정치적인 의도도 엿보인다. ‘막말’이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로 사회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발언을 하고, 안보 위기를 극구 강조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잠자고 있는 광범위한 보수층에게 자극을 주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장 때는 슬퍼했어도 이후 펼쳐진 진보-보수의 극한 대립에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최소한 밀린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라고 해석했다.


그들은 왜 ‘우파 신당’을 꿈꾸나

지난 6월9일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초청 강연회가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배신자, 겁쟁이, 장사꾼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을 깨부수어야 대한민국이 산다. 주검의 세력과 싸울 줄 아는 대안 세력, 대안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얼핏 들으면 진보 인사의 발언 같지만 대표적인 극우 인사인 ‘조갑제 닷컴’ 조갑제 대표가 힘주어 한 말이다.

‘대안 정당’ 얘기가 나온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 조대표를 비롯한 강경 보수 인사들의 ‘선명 우파 창당’ 발언은 한나라당의 행보가 불만스러울 때마다 되풀이되었다. 정치컨설팅 회사인 e윈컴의 김능구 대표는 “이번 발언도 이대통령이 보수의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이들의 생각이 밖으로 표출된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최근 이대통령이 중앙아시아를 순방할 때 황석영씨를 동행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 한나라당이 추모 분위기에 동참하는 것을 본 강경 보수 진영의 배신감은 적지 않았다.

특히 대북 문제의 선명성은 이들에게 중요하다. 그들이 보기에 이명박 정부는 ‘개성공단에 억류 중인 유씨 문제, 개성공단 자체의 존폐 문제’ 등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고 실망만 커졌다. 이런 과정에서 강경 보수 인사들의 ‘신당 창당’ 발언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한나라당에 보내는 일종의 압박이다. 황인상 P&C 정책개발원 대표는 “보수 세력의 우파 정당 창당 발언은 불만의 표현이다. 자신들의 영향력이 관철되는 정권이 나올 때까지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반면, ‘립서비스’가 아니라 실제로 창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보수 진영 내부에서는 현 정부와 한나라당에 실망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폭넓게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규합하면 실제 창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능구 대표는 “앞으로 지방선거와 총선 등 여러 선거가 남아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을 압박하는 외곽 정당으로 자리 잡으려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