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국내 ‘통신 빅3’폭리 담합 구조 깨뜨릴까
  • 이철현 경제전문기자·김지혜 기자 ()
  • 승인 2009.06.1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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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사용자 편의성이 뛰어나 세계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 애플 사의 최신 히트 상품 ‘아이폰3GS’가 곧 국내에서도 출시될 전망이다. 하지만 빅3가 독점하고 있는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 모델의 근본적 ?

ⓒ시사저널 이종현

KT단말기사업본부는 미국 애플 사가 공개한 스마트폰인 아이폰3GS를 국내 출시할 채비를 하고 있다. KT 고위 관계자는 지난 6월12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애플과 세부 조건을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어 조만간 한국 소비자들이 아이폰3GS를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이폰3GS는 개인용 컴퓨터나 노트북처럼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애플 아이튠스 사이트에 접속해 음악과 동영상 파일을 다운로드하고 애플 앱스토어라는 인터넷 장터를 통해 게임, 일정 관리, 지도, 인터넷전화(VoIP) 같은 무선인터넷 응용 프로그램을 사고 팔 수 있다. 지금까지 아이폰은 국내에 들어오지 못했다. 디자인과 사용자 편의성이 우수해 세계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국내 소비자들은 아이폰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애플은 지난 6월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세계개발자회의(WWDC)를 갖고 회의 첫날 아이폰3GS를 발표했다. 아이폰3GS는 사용자 편의성을 크게 개선하고 값은 1백99~2백99달러로 낮게 책정되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출시한 스마트폰 값이 70만~1백20만원으로 고가인 데다 응용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어 아이폰3GS의 국내 출시를 기다리는 국내 소비자가 적지 않다.

애플은 아이폰3GS가 히브리어, 아랍어, 태국어와 함께 한국어를 공식 지원한다고 밝혀 한국 출시를 기정사실화했다. 애플은 6월19일 미국·캐나다·프랑스를 비롯해 8개국을 시작으로 80개 국가에 아이폰3GS를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출시 국가 명단에 한국은 빠져 있었다. 아이폰3GS 출시를 기대하던 소비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KT와 SK텔레콤 같은 국내 이동통신서비스업체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이동통신사업자 중심’이 걸림돌

KT가 도입을 전제로 애플과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는 것이 밝혀지면서 아이폰3GS 논란은 조만간 수그러들 듯하다. 하지만 KT와 애플 사이의 협상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좀처럼 풀기 힘든 과제가 남아 있다. 국내 이동통신사업자가 아이폰3GS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국내 이동통신서비스 사업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디자인과 사용자 편의성이 우수해, 출시와 동시에 시장 점유율 1%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끈 아이폰이 지금까지 국내에 들어오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무선인터넷 기반 기술이 다른 것도 아이폰 도입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있으나 그 차이를 해소할 기술이 국내 이동통신서비스 역량으로 해결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애플은 단말기 제조업체이자 무선 콘텐츠 장터를 운영하는 플랫폼업체이기도 하다. 애플은 아이폰3GS 마케팅 전략으로 ‘레이저브레이드(면도기와 면도날)’ 사업 모델을 채택했다. 레이저브레이드 모델은 면도기는 싸게 공급하되 면도날을 팔아 수입을 챙기는 마케팅 전략에서 유래된 개념이다. 애플은 휴대전화 단말기는 싸게 공급하되 아이튠즈와 앱스토어를 통해 무선 콘텐츠나 응용 프로그램 판매를 늘려 단말기 저가 공급에 따른 수입 감소분을 상쇄하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SK텔레콤이나 KT가 아이폰3GS을 도입하려면 이동통신사업자 중심 사업 모델을 바꿔야 한다.

국내 이동통신서비스 시장은 이동통신사업자가 주도한다.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제조업체는 휴대전화 단말기만 공급한다. 애플처럼 단말기와 플랫폼 사업을 겸하는 업체는 없다. 무선인터넷 접속이나 데이터 서비스는 이동통신사업자가 폐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국내 무선 콘텐츠 업체들은 데이터나 응용 소프트웨어를 이동통신사업자를 거쳐야 서비스할 수 있다. 이동통신사업자는 소비자들에게 정보 이용료나 소프트웨어 사용료를 징수해 60~70%는 챙기고, 30~40%만 콘텐츠업체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게 준다. 이와 달리 애플은 소프트웨어 사용 수입 가운데 30%만 챙기고, 70%는 콘텐츠 업체들에게 할애한다.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한국보다 발달한 일본, 미국, 유럽에서도 이동통신사의 영향력은 크다. 통신 네트워크와 서비스 시설을 소유·지배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다만, 콘텐츠 개발업체가 자체적으로 수익 모델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에서는 네트워크 설비를 보유하지 않는 사업자가 네트워크를 빌려 갖가지 무선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오창렬 책임연구원은 “일본에서는 이동통신업체들이 콘텐츠 공급업체들을 지배하지 않고 상생하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본 이동통신업체들은 콘텐츠 개발업체에게 주어지는 사업 기회를 제약하지 않는다. 무선인터넷 서비스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콘텐츠 산업이 아울러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공식 콘텐츠 공급업체 수가 5천개나 되고 사이트만 1만개가 운영되고 있다. 일반 사이트까지 합치면 10만개 업체가 무선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 무선 콘텐츠 공급업체는 2백50개를 넘지 못하고 있다.

콘텐츠 산업을 위축시키는 것들

▲ 6월8일 세계개발자회의에서 애플의 스콧 포스탈 부사장이 아이폰3GS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New York Times

국내 이동통신업체들은 자사 통신망을 통해서만 이용할 수 있는 폐쇄 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애플 앱스토어 같은 개방 시장이 성장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이동통신사업자가 지배하는 서비스 사업 모델에서 콘텐츠 공급업체가 설 자리가 없다 보니 무선 콘텐츠 산업이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이동통신사업자들은 콘텐츠 개발자들을 제약하기 위해 위피(WIPI) 탑재 의무를 교묘하게 이용했다. 위피는 한국 모바일 인터넷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무선인터넷 플랫폼의 표준 규격을 일컫는다. 위피는 도입 초기 해외 콘텐츠 공급업체로부터 한국 콘텐츠 개발업체들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었다. SK텔레콤이나 KTF(KT로 통합)는 콘텐츠 공급업체들과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우수한 콘텐츠를 개발하더라도 계약을 맺지 못한 업체는 무선 콘텐츠 시장 진입이 어려웠다. 국내 이동통신사업자와 콘텐츠 공급 계약을 체결한 업체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익 분배 구조도 열악했다. 애플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게 사용료 수입 70%를 나누어주는 것과 달리 국내 이동통신업체들은 30~40%만 콘텐츠 제공업체에게 주고 나머지는 자기들이 챙겼다. 이런 폐단이 무선 콘텐츠 시장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일자 정부는 지난 4월 ‘위피 탑재 의무’를 폐지했다.

하지만 위피 탑재 의무가 폐지되었음에도 개발 여건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시장에 나오는 휴대전화는 스마트폰을 제외하고는 모두 위피를 탑재하고 있다. 지금까지 위피에 맞추어 개발한 콘텐츠가 많아 위피를 탑재하지 않을 수 없는 탓이다. 더욱이 이동통신업체마다 자사 특유의 위피를 갖고 있어 콘텐츠 개발업체들은 통신사마다 별도로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콘텐츠를 개발하더라도 SK텔레콤, KT, LG텔레콤을 일일이 찾아가 별도 계약을 맺어야 한다.

무선인터넷 과금 체계도 투명하게 알려야

▲ 애플 사의 아이폰3GS(위)는 현재로서는 국내 이동통신 서비스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 아래는 삼성전자의 T옴니아. ⓒ뉴시스

일본·미국·유럽의 콘텐츠 개발업체들은 자유롭게 콘텐츠를 만들고 팔 수 있다. 콘텐츠 개발업체는 콘텐츠 유통 채널에 대한  선택권을 갖고 있다. 한국처럼 이동통신업체마다 별도로 운영하는 폐쇄 시장(클로우즈드 마켓 플레이스)에 갈 수 있고, 차선책으로 앱스토어와 같은 개방 시장(오픈 마켓 플레이스)에서 팔 수 있다. 한국에도 콘텐츠 개발 업체들이 이동통신사와 개별적으로 계약하지 않고 콘텐츠를 팔 수 있는 개방 시장이 있다. 형식적으로는 이동통신사들이 개별 회사의 무선인터넷 네트워크와 별도로 ‘So1’과 ‘UPLAY’라는 개방 시장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 사이트들은 콘텐츠 개발업체들이 수익을 내기에는 규모가 지나치게 작다. 이동통신업체들은 ‘돈 되는’ 자사 콘텐츠 시장을 홍보 마케팅하는 데 치중하지 개방 시장에는 무관심하다. 그러다 보니 이동통신업체들이 손대지 않는 성인물이나 인기 없는 콘텐츠만이 개방 시장에 돌아다닌다. 이동통신업체들의 망 독점이 콘텐츠 개발업체의 비즈니스 기회를 빼앗고 있다.
국내 무선인터넷 비용은 비싸다는 소비자 인식과 달리 일본, 미국, 유럽보다 싸다. 국내 이동통신업체들은 가격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요금제와 규정들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 보니 얼마나 요금이 부과될지 알기 힘들다. 정보 이용료가 얼마인지 가늠하지 못하는 탓에 예상보다 훨씬 과다하게 청구된 통신료 고지서에 불만을 토로한다. 휴대전화에서 1천원짜리 영상을 다운로드했더니 이동통신요금 고지서에 데이터 이용료 12만원이 청구되었다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동통신업체는 과금 체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무선인터넷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국내 이동통신사업자가 거두는 무선인터넷 매출의 절반 이상을 비정액제 사용자들이 내고 있다. 일본과 미국 통신사는 브라우저에 데이터 용량을 명시하고 휴대전화에 인터넷 접속 시간과 내역을 명확히 보여주어 요금을 예측할 수 있게 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표준연구센터 이승윤 팀장은 “이동통신업체들이 사용자에게 과금 체계를 투명하게 알려 신뢰감을 얻지 않고서는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환경이 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 이동통신 사용자들이 전철 안에서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장조사업체 마케팅인사이트가 최근 14세 이상 남녀 4천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모바일 인터넷을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28.7%가 ‘데이터 통화료가 비싸서’라고 답했다. ‘정보 이용료가 비싸서’라는 답도 25.2%나  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동통신사들의 모바일 콘텐츠 매출은 갈수록 줄어드는 형국이다. 분야별 매출도 2008년 기준으로 벨소리나 통화연결음(컬러링)과 같은 음악서비스가 27.5%를 차지해 아직 초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올해 1분기 가입자당 월평균 이용액에서 데이터 통화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남짓에 불과했다. 이동통신업체들은 지난 4월 데이터 통화료와 정보 이용료를 합친 저렴하고 단순한 정액 요금제를 내놓겠다고 했으나 아직 공개된 것은 없다.

통신 전문가나 네티즌들은 이동통신사업자들을 국내 무선인터넷 서비스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주범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오창렬 KOTRA 책임연구원은 “이동통신사업자 위주의 사업 방식이 국내 무선인터넷 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라고 말했다.

애플의 스마트폰 아이폰3GS 출시로 인해 국내 무선인터넷 서비스 사업 구조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국내 통신산업 혁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국 휴대전화 단말기업체 덕택이라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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