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더워지는 지구 ‘전염병 지도’가 바뀐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6.0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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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가 계속되면서 환경이 바뀐 만큼 건강도 위협받고 있다. 이상 기온 앞에 놓인 한국의 실태를 들여다보았다.

ⓒ연합뉴스

열대병(tropical disease)이 한반도에 창궐한다면 언제쯤이 될까. 감염 질환 전문가들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미 등 열대·아열대 지역에서 유행하는 열대성 전염병이 우리나라에서 대규모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지금같은 추세로 기후 변화에 따라 기온이 올라가면 머지않아 환경은 물론 한국인들의 건강 체계에 대혼란이 올 것이 분명하다는 얘기이다.

지난 5월6일 광주의 낮 기온이 30℃를 넘어선 이후 6월 초인 현재까지 전국의 최고 기온이 연일 30℃를 넘나들고 있다. 여름철이 이렇듯 빨라지면 전염병 발생도 그만큼 빨리 증가한다.

지난 37년(1971~2007년) 동안 우리나라 평균 기온은 12.35℃에서 13.79℃로 1.44℃ 상승했다.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전염병 발생률은 평균 4.27%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신호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연구실 박사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기온, 강수량, 유병률, 활동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5가지 전염병 발생을 분석한 결과 100건 발생하던 전염병이,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4건 이상이 더 늘어났다. 쯔쯔가무시병(scrub typhus)이 5.98%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고, 렙토스피라가 4.07%, 말라리아 3.4%, 장염 3.29%, 세균성 이질 1.81% 증가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전염병 환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05년 1만3천4백80건이었던 법정전염병 보고 건수는 매년 증가해서 2008년 3만5천9백80건으로 늘었다. 그것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에서 발생한 전염병 건수는 2천7백47건으로 전년보다 75%나 증가했다.

올라간 기온은 병원균을 옮기는 매개체의 수를 늘리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 전염병 매개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모기, 진드기, 이, 벼룩, 파리 등 곤충은 물론이고 쥐와 다람쥐 같은 설치류도 있다. 돼지나 사슴 같은 포유류와 비둘기, 까마귀 같은 조류도 전염병을 옮긴다.


법정전염병 보고 건수도 해마다 크게 늘어

장재연 아주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연평균 기온이 12℃일 때 모기의 알이 번데기로 변하는 기간이 22.8일이었다. 그러나 29℃일 때는 7.7일로 급격히 줄어든다. 온도가 오를수록 모기의 발육 기간이 단축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개체 수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고 알의 수가 늘며 성충의 생존율도 올라간다. 또, 기온이 1.6℃ 상승하면 진드기 개체 수는 4배로 껑충 뛴다. 하루에 3백여 마리 번식하던 것이 최고 1천4백마리까지 늘어난다. 사람이 전염병에 노출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4월 채준석 서울대 수의과대학 수의학과 교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아열대 조류인 녹색비둘기와 검은바람까마귀가 제주도에서 발견되었다. 봄철이 평소보다 훨씬 따뜻해지면서 홍도를 찾는 여름철새도 과거에 비해 평균 19일 빨리 나타났다. 이들 조류에는 전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세균, 리케차, 곰팡이, 기생충 등이 붙어 있다. 노랑턱멧새에서 개피참진드기, 흰눈썹지빠귀에서 일본참진드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진드기는 사람에게 옮아가면서 갖가지 전염병을 일으킨다.

따뜻한 남쪽에서 발생하던 전염병이 북상해서 수평적 이동만 하는 것이 아니다. 높은 고도까지 수직적으로도 이동한다. 2006년 발표된 하버드 의대 자료에 따르면 기온이 1℃ 상승하면 전염병 위험 지역이 북반구의 경우 위도상으로 2백km, 고도상으로 1백70m 올라간다. 기온이 2~3도 올라가면 제주도의 전염병이 서울에서도 발생하게 되는 셈이다.

앞으로 어떤 열대성 전염병이 우리 곁에 찾아올 것인가? 전문가들의 전망을 종합해보면 말라리아, 뎅기열(dengue fever), 웨스트나일열(west nile fever), 쯔쯔가무시병, 일본 뇌염 등을 꼽을 수 있다.

말라리아는 사실 우리나라에 존재했던 전염병인데 1960~70년대 박멸사업을 추진한 결과 1984~92년 사이에 환자 발생 보고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1993년 경기도 파주에서 근무하는 군인에게 다시 발병한 이후 2007년 한 해 동안만 환자 2천2백27명이 발생할 정도로 급증했다. 왜 말라리아 환자가 다시 증가하느냐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그러나 기온이 높아지면서 모기의 서식처가 확산되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발생하지 않던 뎅기열이 최근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모기를 통해 뎅기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되어 생기는 병이며 일반적으로 고열을 동반한다. 모기는 아시아, 남태평양 지역, 아프리카, 미주 대륙 등지의 열대·아열대 지방에 분포한다. 이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감염 환자가 매년 30여 명씩 보고되고 있다. 보통의 뎅기열은 1주일 정도 지나면 호전된다. 뎅기열이 심해지면 뎅기 출혈열이나 뎅기 쇼크 증후군으로 이어진다. 방치하거나 치료 결과가 좋지 않으면 10명 중 4~5명이 사망한다.

▲ 모기로 감염되는 뎅기열병 감염 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맨위), EPA(아래)

일본 뇌염은 이미 국내 풍토병인 셈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하지 않은 웨스트나일열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웨스트나일열은 1937년 아프리카 우간다 나일강 서쪽 지역에서 발열 증상을 보인 여성에게서 처음 발견되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99년 미국 동부에서 유행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웨스트나일열에 걸리면 3백명 가운데 약 1명꼴로 중추신경계에 이상이 생기며 치사율도 낮지는 않다. 2007년 미국에서는 한 해 동안 3천5백10명의 환자가 발생해 1백9명이 사망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는 같은 해에 웨스트나일열을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했다.

진드기가 옮기는 쯔쯔가무시병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진드기는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서식하는데, 지난 2005년부터 경기도 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광주에서 쯔쯔가무시 환자가 발생했다.

일본 뇌염은 아예 국내 풍토병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의 풍토병인 일본 뇌염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고온다습한 여름에만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기온 상승으로 병원균을 옮기는 모기의 서식 기간이 길어지면서 일본 뇌염이 거의 1년 내내 발생하게 되었다. 

이밖에 눈여겨볼 전염병은 수도 없이 많다. 강승원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세균과 박사는 “인수공통전염병인 리슈만편모충증도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다. 2007년 개의 항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병원균인 리슈만편모충이 발견된 만큼 우리나라에서 어떤 식으로 확산될지 아무도 모른다. 리슈만편모충은 과거 1970~80년대 중동 지역을 다녀온 건설노무자들에게서 발견된 바 있다. 그러나 그때에는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았다. 모기처럼 생긴 모래파리(sandfly)라는 매개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흡혈 파리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바는 없지만 기온이 계속 높아질 경우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꾸준히 감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염병은 위생 수준을 높이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 예전에 식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냉장고를 보급한 사례가 있다. 현재 냉장고가 없는 가정은 찾아볼 수 없지만 식중독은 매년 우리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과거에는 식중독이 7~8월에 기승을 부렸지만 현재는 5월부터 조심해야 할 정도로 더 심각해졌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급격한 도시화로 인구 밀도가 높고 운송 수단이 발달해서 전염병이 삽시간에 퍼질 수 있다. 

기모란 을지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기후 변화와 더불어 전염병이 확산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동시에 병원균은 영리하게 진화하고 있다. 앞으로 병원균은 과거보다 약해질 전망이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숙주를 죽이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분석해서 대안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열대·아열대 지역의 풍토병(endemic)이 우리나라에서 전염병(epidemic)이 되고, 더 나아가 세계적 대유행(pandemic)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며 이른바 ‘3-데믹(demic) 시나리오’에 대한 경계를 주문했다. 

한편, WHO는 지난해 4월 온난화로 인한 전염병 확산을 경고한 바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한 대책으로 이산화탄소 감축에만 신경을 쓰던 국제 사회가 전염병 확산에도 눈을 돌린 셈이다. 산업화와 환경 파괴로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가 전염병이라는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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