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균주’ 각국에 전했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6.0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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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클레멘스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총장 / “5~6개월 후 백신 개발해 사용할 수 있을 것”

ⓒ시사저널 박은숙

세계보건기구(WHO)는 요즘 인플루엔자 A(H1N1) 균주를 세계 각국에 배포하느라 비상이 걸렸다. 신종플루를 사실상 ‘세계 대유행(팬데믹ㆍpandemic)’ 질환으로 보고 벌이는 다각적인 대응책의 하나이다. WHO는 지난 6월2일 신종플루의 경보 수준을 최고치인 6단계로 곧 격상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존 클레멘스(John Clemens)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총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WHO의 균주 배포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그는 균주가 각 나라에 전해져 앞으로 5~6개월 후에는 백신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까지는 WHO가 백신용 균주를 배양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클레멘스 사무총장은 지금처럼 바이러스가 진화한다면 지구촌에 신종플루뿐만 아니라 다른 전염병도 얼마든지 창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평생 백신 연구에 전념한 세계적인  전문가답게 백신 개발만이 전염병 창궐을 예방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했다. 국제백신연구소(IVI)에는 WHO와 40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신종플루 백신 개발은 어디까지 진척되었는가?

WHO가 역유전학 기법으로 배양한 신종플루 균주를 세계 각국의 백신 생산업체에 배포 중이다. 백신은 5~6개월 후에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신종플루가 팬데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가?

가능성이 매우 크다. WHO는 이미 전염병 경고 수준을 팬데믹의 직전인 5단계로 격상시켰고, 최고 단계인 6단계에 근접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신종플루의 전파 정도와 속도를 감안할 때 이미 6단계, 즉 팬데믹에 도달했다고 보는 전문가도 많다.

과거 팬데믹보다 그 정도가 심각한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바이러스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몰라 현재로서는 누구도 그 심각성을 단정하지 못할 뿐이다.

바이러스는 꾸준한 변화 과정을 거치는데, 특히 크게 변하는 대변이(shift)가 문제로 꼽힌다. 대변이는 예측이 불가능한가?

예측 가능성은 바이러스에 따라 달라 상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조류 독감 바이러스 H5N1이 출현했을 때 사람 간 전염을 예측하고 각국 정부가 백신을 확보하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이번 신종플루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깜짝 놀랄 만한 대변이를 거친 바이러스이다. 

질병이 발생하면 백신이 곧 개발된다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실제 개발되지 않은 경우가 있다. 백신 개발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우리는 백신 황금기(golden age)에 살고 있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백신을 개발해서 사용한다. 백신 개발은 사람의 면역반응에 따라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예컨대 어릴 때 홍역을 앓았던 사람은 다시 걸리지 않는다. 면역반응이 일어나서 항체가 우리 몸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감염 자체가 면역인 셈이다. 이런 경우는 백신 개발이 용이하다. 에이즈는 그렇지 않다. HIV에 감염되면 혈액과 조직에서 엄청난 면역반응이 일어나지만 우리 몸을 보호하는 효과는 없다. 연구자가 참고할 만한 점이 없어 백신 개발이 힘들어진다.

황금기라는 말이 흥미로운데, 백신을 많이 개발할수록 인류에게 이로운가?

심각한 장애나 사망을 초래하는 질병의 백신 개발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심각하지 않은 병의 백신을 개발하는 문제는 의학계에서도 논쟁거리이다. 다만, 감염 질환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대책으로 백신이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좋다는 점은 여러 사례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인 뤽 몽타니에 박사는 에이즈 치료 백신이 4~5년 내에 개발될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에이즈 백신 개발 성과가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프랑수아즈 바레 시누시 박사도 에이즈 백신 개발에는 수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IVI가 개발할 백신을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상황이 심각하지만 관심이 적은 질병의 백신을 개발한다. 예컨대 에이즈 백신은 깊은 관심 속에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흔한 설사병은 어떤가. 세계적으로 매년 2백만명의 어린이가 설사병으로 죽어간다. 에이즈나 말라리아로 사망하는 어린이 숫자보다 많다. 그렇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콜레라도 마찬가지이다.

백신 개발과 접종은 또 다른 문제이다.

중요한 지적이다. 백신을 개발하는 이유는 접종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질병의 중요성은 물론 백신의 실용성도 알려야 한다.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백신은 치료제보다 우수하다. 예컨대 자궁경부암의 원인인 HPV(인유두종 바이러스)의 백신이 개발되어 있다. 주로 선진국에서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실 자궁경부암 사망자의 80%는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한다. 이들 국가는 자궁경부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아 속수무책으로 질병에 당하고 있다. 따라서 조기 발견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예방접종을 동시에 진행하면 자궁경부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이를 위해 38개국의 보건의료 정책 입안자, 백신 전문가, 의료진 등이 지난 6월1일 서울에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HPV 백신 접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IVI가 값싼 콜레라 백신을 개발한 것으로 안다. 세계 각국에 이 백신의 접종을 권고하고 있는가?

기존 콜레라 백신이 15~30달러이지만 IVI가 개발한 백신 ‘샨콜(Shanchol)’은 1달러이다. 주사제가 아니라 먹는 약이므로  편리하다. 그동안 가격이 비싸서 백신을 사용하지 못했던 개도국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실제 인도에서 7만명을 접종한 결과, 안전하고 효과적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를 오는 10월 WHO에 발표할 예정이며, 이후 공식적인 접종 권고안이 나올 것이다.

평소 콜레라 예방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매년 12만명을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심각하기 때문이다. 더 무서운 것은 한 나라의 보건의료 체계를 무너뜨릴 정도로 전염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만일 개도국에서 콜레라가 창궐하면 대혼란(chaos)으로도 이어질 수도 있다. 콜레라는 경제적인 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다. 예방과 치료에도 큰 돈이 필요하지만 관광, 해산물 수출 등 경제 전반에도 큰 피해가 생긴다. 1990대 초 남미에서 창궐한 콜레라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끼쳤다.

콜레라가 세계적으로 창궐할 가능성이 있는가?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세계적인 질병이다.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지의 개도국에서 자주 발생한다. 이들 나라의 위생 수준을 높이는 것이 콜레라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이다. 위생 수준을 하루아침에 올려놓을 수 없는 만큼 그때까지는 백신이 대안이다. 위생이 좋은 선진국에서는 콜레라가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백신이 거의 필요 없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콜레라 백신 시장이 매력적이지 않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 콜레라 백신은 고아 백신(orphan vaccine)이라고도 불린다.

결핵과 장티푸스 백신도 개발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결핵 백신은 아직 연구·시험 단계이다. 장티푸스 백신은 개발되어 있다. 곧 세계 각국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백신이라도 가격이 비싸면 그림의 떡이다.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부자 나라에는 비싼 가격에, 가난한 나라에는 싼 가격에 백신을 공급하는 이른바 지역별 가격 차별화 정책(tiered pricing)을 우선 생각해볼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공공·민간 파트너십(PPP)이다. 국제백신면역연합(GAVI)이나 빌 게이츠 재단의 기금을 받아 백신의 공급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열악한 개도국이 백신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구입 채널이나 방법도 더욱 다양해져야 한다.

북한에서도 백신 접종 활동을 한 것으로 안다. 북한의 백신 개발 수준은 어떤가?

IVI가 지난해 북한 남포와 사리원 어린이 6천명에게 일본 뇌염과 수막염 백신을 접종했다. 북한의 공중보건 수준을 고려할 때 일본 뇌염과 수막염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백신 접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북한은 의료진의 역량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본다. 

앞으로 어떤 백신을 개발할 계획인가?

장티푸스와 증세가 유사한 파라티푸스 등 장 감염 질환에 대한 백신을 개발할 계획이다. 콜레라 백신도 업그레이드시킬 예정이다. 콜레라 백신은 열(heat)에 약한 것이 단점이다. 열에 강한 백신을 개발하면 냉장 시설이 열악한 개도국에서 훨씬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매년 6만명을 사지로 내모는 이질의 백신도 개발할 예정이다.

암도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을까?

세계적으로 암 예방 백신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면역반응도 암을 치료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백신 자체가 암을 치료할 가망성은 작겠지만 다른 치료 방법과 함께 사용될 수는 있을 것으로 본다.
한국의 백신 개발 수준을 평가한다면?

아시아에서 톱 수준이다. 다국적 기업을 제외한 한국 백신 제조 업체 몇몇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백신 정책도 미래지향적이다. 한국 정부가 녹십자로 하여금 독감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전라도에 설립한 것은 현명한 처사이다. 전염병의 확산에 대해 한국은 내부적으로 대비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IVI 본부가 한국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생긴 장단점은 무엇인가?

한국은 생명공학 연구 환경이 우수하다. 백신 개발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관심도 높다. 무엇보다 아시아 개도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IVI의 활동과 사업에 이롭다. 백신 개발에 적극적인 후원을 해주는 단체와 기업이 미국과 유럽에 몰려 있어 제때 효율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단점으로 지적할 만하다.


국제백신연구소는 어떤 곳인가

UNDP(유엔개발계획) 주도로 지난 1997년 비엔나 조약에 의거 설립된 국제 연구 기관이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백신 사용 격차를 줄이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2008년 현재 40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28개국 1백40여 명의 과학자가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설사병, 중추신경계의 세균 감염, 모기로 인한 바이러스 감염 등에 초점을 맞춘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1달러짜리 경구용 콜레라 백신 개발은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앞으로 결핵, 조류 인플루엔자 등 호흡기 바이러스 질환의 백신도 개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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