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좀더 진보 쪽으로 가야”
  • 소종섭·김회권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5.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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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민주당 대표 인터뷰 / “호남에서의 흔들림 심각하게 생각…‘정동영 복당’은 순리대로”

ⓒ시사저널 유장훈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요즘 3차 방정식을 풀고 있다. 정치적인 위상과 관련해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 십수 년의 정치 인생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힘든 기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그동안 보람을 느끼면서 정치를 해왔는데 최근에는 내가 왜 정치를 하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계단만 올라가서는 안 되고 역할도 해야 하는데 뜻대로 안 되어 답답한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안팎에서 밀려드는 숱한 고난도 문제들을 풀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정대표는 예정 시간보다 10분 일찍 국회 대표실에 들어섰다. 자연스런 분위기에서 덕담을 주고받으며 차 한 잔을 비웠다. 잔이 바닥을 보이자 정대표가 손바닥으로 무릎을 쳤다. “자, 합시다.” 정대표와의 인터뷰는 5월20일 오후 1시50분부터 3시까지 이루어졌다. 그는 “민주당은 좀더 진보 쪽으로 가야 한다”라고 보았다. 정동영 의원의 복당과 관련해서는 시기를 못박지 않았으나 “때가 되면 순리대로 될 것이다”라며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민주당 플랜’을 발표했다.

지난해 전당대회 때 하겠다고 약속했다. 5·31 지방선거 완패, 17대 대선 참패, 18대 총선 패배, 그것도 대패였다. 변화하고 쇄신하지 않으면 우리가 다시 선택받지 못한다는 절박함에서 시작했다. 2012년에 다시 국민에게 선택받으려면 변화하고 쇄신해야 하는데 그것을 한마디로 뉴민주당 플랜이라고 이름지었다. 선언은 일부이고 정책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민주당이 과거의 부족함에 대해서 반성하고 변화하려고 몸부림친다는 신호를 국민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다.

당내에서 이런저런 논란이 일고 있다. ‘쇄신’ ‘변화’의 의미가 반감되는 것 아닌가?

내부 논란이 없으면 전달이 안 된다. 나는 이런저런 논란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치열하게 논의를 해서 정세균이나 지도부의 것이 아닌 민주당원의 ‘플랜’으로 만들겠다. 반성은 아무리 해도 부족하다. 옛날에 뼈를 깎는 반성과 환골탈태를 많이 했는데 그것만 해서는 안 되더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비전을 만들어내고 당원들의 공감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비전을 보여주면서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당원이나 국민은 저만치 가 있는데 옛날 식으로 해서는 희망이 없다. 소득이나 의식 수준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정당을 만들지 않으면 선택받기 어렵다.

민주당의 노선에 대해서도 백가쟁명식 논의가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뉴민주당 플랜에서 내놓은 ‘현대화’라는 용어가 민주당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한다고 비판한다.

현대화라는 단어는 나도 좋아하지 않지만, 마땅한 용어가 없어서 그렇게 붙인 측면이 있다. 현대화라는 것이 네이밍은 아니지 않나. 그런 것도 논의해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지 명패를 어떻게 붙이느냐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현대화에 대한 지적이 있기 때문에 마지막에 확정할 때 네이밍을 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좀더 진보 쪽으로 가는 것이 좋다. 당의 역사성,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봐서 중도보다는 좀더 진보적인 색채를 띠는, 우측보다는 좌측으로 가는 것이 낫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주로 하고 남북 문제나 경제 문제 등에서 확실하게 한나라당과 차별화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

민주당의 지향점과 관련해 이른바 ‘호남 우선론’과 ‘수도권 중심론’을 둘러싼 시각차도 여전하다.

나는 호남 사람이다. 내가 호남을 배척한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 때 수도권에서 단 한 명의 기초자치단체장만 당선되었다. 광역의원도 비례대표만 되고 지역구는 전멸했다. 텃밭은 잘 지키면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신뢰를 얻을 곳을 찾는다면 수도권이다. 세상에 자기 텃밭을 내놓으려고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나. 그런 바보는 없다.

‘텃밭’이라는 호남에서 민주당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애정의 회초리라고 본다. 이제 피가 나도록 맞았으니까 정신 바짝 차리면 되는 것이다. 외부 용역까지 줬다. 원인을 규명하고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심각하게 본다. 지난해에 기초의원 하나 떨어졌을 때는 관리 소홀이나 공천 잘못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국지적으로 볼 일이 아닐 수 있다. 심층적으로 원인도 규명하고 병세도 체크를 하고 처방도 내놓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수도권 공략이 중요하다고 본다면 그 핵심은 무엇인가?

인재이다. 뉴민주당 플랜을 통해서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혁신 기구를 띄우려고 하는데 형태나 문화 모두를 바꾸려고 한다. 그러려면 좋은 얼굴을 내놓아야 한다. 당의 쇄신과 인재 영입, 이것이 양대 축이다.
민주당 지지도가 10%대에 머무르고 있는데 좋은 인재가 들어올지에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런 걱정을 많이 했다. 지난해 전당대회 이후 인재위원회를 띄웠는데 잘 안 되었다. 민주당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부평과 시흥에서 승리하면서 민주당의 공천을 받으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말이 필요 없고 보여줘야 한다. 많은 인재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강래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면서 대표의 리더십이 상처를 입었다, 지도 체제가 약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당만 잘 되면 내 힘이 좀 약해져도 상관없다. 이번 경선에서 나는 관여를 안 하지 않았나. 원내대표 선거는 계파 싸움이 아니다. 그런 분석은 언론이 쓴 것이다. 이강래 대표와는 아주 가깝다. 지역구도 바로 옆이고 나이도 비슷하다. 우리는 눈빛만 보아도 통한다.

이강래 대표는 “국회 운영은 원내대표에게 맡겨야 한다”라고 했는데….

당연한 이야기이다. 당대표를 하면서 누가 원내 문제에 매몰되고 싶겠나. 선거도 준비해야 하고 지역 현장도 가야 한다. 원내 문제에서 풀려나면 얼마나 좋은가.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당 문제와 관련해 모든 책임은 대표인 내가 지게 되어 있다.

정동영 의원의 민주당 복당 여부가 주목된다. 대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지금 할 일이 많다. 때가 되면 순리대로 될 것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리고 거기에 당이 휩쓸릴 일도 없다.

‘순리’는 정의원의 복당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뜻인가?

영원히 당에 못 들어오도록 할 일은 없지 않나. 당헌 정신도 그런 것이고.

복당 시기와 관련해 10월 재·보선 전, 내년 지방선거 전 등 여러 이야기가 있다.

거기까지는 생각해본 적 없다. 언론 악법부터 시작해서 그것보다 고민해야 할 일이 더 많은데, 그 문제로 내가 머리 싸매겠나.

정의원이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민주성과 투명성 등이 한참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공천을 안 주니까 기분 나빴던 모양인가 보다.

미디어법과 관련해 홍준표 대표가 물러나면서 정대표가 ‘6월 처리’를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왜 그런가?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나한테 시간을 충분히 줄 테니까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한다는 보장을 해달라고 했지만 못한다고 해서 결렬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것과 국회법 절차를 따르기로 한 것 아니냐. 어느 한쪽만 충족되면 곤란하다. 국민의 여론을 잘 수렴해야 하고 그것을 반영한 안을 순리대로 처리해야 한다. 그냥 하면 안 된다. 한나라당이 발의한 악법을 그대로 할 것이면 그때 이미 했다.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를 장식품처럼 꾸릴 것이면 왜 만들었나. 거기서 여론을 수렴하라고 만든 것 아닌가.

국민은 6월에 국회의원들이 또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것을 보아야 하나? 

아직 시간이 있다. 국민이 두려우면 처리를 못할 수도 있다. 국민이 집권 세력에게 국정을 쇄신하라는 신호를 보내지 않았나. 그중에는 MB 악법도 포함되어 있다. 그것을 밀어붙이니까 한나라당 지지도도 이대통령 지지도도 떨어지는 것이다. 지지도를 봐서도, 재·보선 결과를 봐서도 감히 엄두를 못내는 것이 정상이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무능하다. 경제를 살린다고 해놓고 못 살렸다. 남북 문제도 저 지경이다. 거기다 노사 문제, 외교 문제 등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다. 아주 무책임한 정부이다. 편 가르기만 열중하고 국정 책임이 무겁다는 것을 안 느끼는 것인지, 못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다.

정책 기조를 바꾸어야 한다. 지금 정부는 1987년 민주항쟁 이후 만들어놓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다 부수려고 한다.

지금 대통령을 만난다면 무슨 말을 꼭 하고 싶은가?

남북 문제이다. 한 번 뒤틀어놓으면 원상 회복하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옛날에는 북한이 말만 해도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사재기가 일어났다. 그런데 요즘은 핵실험을 해도 사재기가 일어나지 않는다. 지난번에 청와대에 들어가서 “이런 것이 햇볕정책의 결과이다”라고 했더니 한 여권 사람이 “그런 안보 불감증이 오히려 큰일이다”라고 하더라. 내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남북 문제가 이렇게 될수록 외국인 투자도 안 되고 외화 차입의 금리도 올라가는 등 보이지 않는 손해가 커진다. 개성 하나도 감당하지 못하는 무능을 빨리 벗어나라는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기조를 바꿔서 일단 6·15 공동선언을 존중하는 자세부터 보여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를 우습게 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 것 같다. 정당 정치가 뭔지 모른다. 아예 국회의 권능을 인정 안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보면 공개적으로 한나라당에 명령을 내린다. 3권 분립의 정신이나 의회를 존중하는 부분에서 완전 아마추어이다.

박연차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어떻게 보나?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고 성역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현 정권은 계속 성역을 만드는 것 같다. 이번에도 대선 자금과 같은 부분에는 손도 못 대게 했다는 것 아니냐. 성역을 계속 만드는데 국민이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안다. 어리석은 짓이 다. 전 정권에 들이댄 잣대를 현 정권에도 그대로 들이대야 한다. 이중 잣대를 들이대면 순간은 모면해도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전직 대통령이나 영부인, 자녀들은 직접 조사하고,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e메일 조사를 한다면 어느 누가 이것이 형평에 맞고 공정하다고 생각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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