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사격장 옆 공포에 떠는 ‘오발탄 마을’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5.26 17: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원도 철원군 용화동 마을 피해 현장 취재

▲ 강원도 철원군 용화동 마을 한 민가의 철문이 유탄을 맞고 구멍났다. ⓒ시사저널 임영무

강원도 철원군과 경기도 포천시의 경계에는 해발 9백23m 높이의 명성산이 있다. 일명 ‘울음산’이라고도 불리는 이 산은 전설에 의하면 왕건에게 쫓기던 궁예가 피살된 곳이라고 한다. 궁예가 망국의 슬픔을 통곡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는 설이 있다. 궁예가 죽은 지 1천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명성산의 울음은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

명성산 기슭의 신철원 3리 용화동 마을에는 80여 가구 2백4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한국전쟁이 종식된 후 이 마을 인근에는 군부대의 피탄지(포탄 표적지)가 생겼고, 지금까지 56년간 포성이 멈추지 않고 있다. 더욱이 군 사격장에서 주택가로 끊임없이 포탄과 파편이 날아들어 그동안 죽거나 다친 사람만 해도 수십 명을 헤아린다. 때문에 ‘오발탄 마을’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표적 벗어난 포탄 날아들고 총알·파편 등 수시로 마을 ‘습격’

지난 5월19일 오후 <시사저널> 취재진이 용화동 마을에서 본 참상은 심각했다. 마을 주민 김민구씨(67)는 지난 5월7일 아침을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친다. 김씨는 이날 오전 7시30분쯤 누이동생과 마을 주민 등 셋이서 마을 뒷산 등산로를 따라 산책하던 참이었다. 한 7백m(직선 거리 3백m)쯤 올랐을 때 갑자기 ‘쾅, 쾅, 쾅, 쾅’ 고막을 찢는 듯한 폭음이 연달아 들렸다.

김씨 일행은 순간적으로 땅에 엎드렸는데, 몸이 ‘붕’ 떴다가 아래로 내려앉으면서 흙더미가 온몸을 덮쳤다고 한다. 김씨는 “그때 ‘아, 이젠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폭음이 멈춘 후 ‘효순 엄마!’ 하고 동생을 부르니까 조그만 소리로 ‘여기 있어요’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몸서리를 쳤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린 김씨 일행은 주변을 돌아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김씨는 “포탄이 떨어진 반경 50m 이내가 완전 초토화되어 있었다. 족히 20년은 넘어 보이는 잣나무 수십 그루가 뿌리째 뽑히거나 허리가 두 동강이 나 있었다. 우리는 포탄이 떨어진 지점에서 30m 정도의 언덕 아래에 있어서 괜찮았지, 아니면 처참하게 죽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날 등산로에 떨어진 포탄은 1백55mm 곡사포에서 발사한 것이었다고 한다. 군은 한 발이라고 했으나 주민들은 폭발 흔적 등을 볼 때 최소 네 발은 떨어졌다고 보고 있다. 용화동 피탄지가 마을에서 직선으로 약 1.5km 거리에 있고, 포탄이 떨어진 등산로가 마을에서 직선으로 3백m인 것을 보면 군이 쏜 포탄은 피탄지가 아니라 마을을 겨냥했다고 할 정도로 표적지를 한참 벗어났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취재진을 본 주민들은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몰라, 불안해서 못 살겠다”라며 하나같이 격앙되어 있었다. 그동안 주민들이 겪었던 공포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용화동 마을 뒷산의 피탄지는 인근 ㅇ군단 예하 부대 여러 곳에서 피탄지로 이용하고 있다. 갈말읍 문혜리 사격장, 갈말읍 동막리 포 사격장, 포천 승진 전차 사격장 등지에서 사격 훈련을 할 때 표적지로 삼고 있다. 이경세 이장(67)은 “마을 전체가 이들 사격장에서 날아오는 포탄·총알·파편 등 때문에 안전한 곳이 없다. 10년 전에는 나물을 캐던 할머니 2명이 사망하는 등 그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포성으로 인해 살 수가 없다. 빗나간 포탄 때문에 산불이라도 나면 불을 끄기 위해 동원된 헬기 소리 때문에 전화 통화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다”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 지역에서 ㅇ가든을 운영하고 있는 남택선씨(61)의 경험담은 놀라웠다. 남씨가 취재진을 이끌고 간 곳은 자신의 안방이었다. 그는 천장과 벽에 난 구멍을 보여주며 “지난 2006년 봄 헬기에서 발사된 실탄의 유탄이 지붕으로 날아들어 천장을 뚫고 벽을 관통한 흔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남씨가 운영하는 가든의 천장에도 포탄 파편이 날아들어 어른 주먹만한 구멍이 뚫렸는데, 군인들이 와서 수선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남씨는 취재진에게 포탄의 파편을 내밀며 “지난해에 밭에서 농약을 주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 무언가 떨어져서 봤더니 이 파편이었다”라고 말했다.

▲ 강원도 철원군 용화동 마을에서는 군 사격장에서 발사된 포탄 등으로 식수원이 위협받고 있으며(맨왼쪽), 파편이 집 벽을 뚫거나(오른쪽 위) 야산의 나무들이 훼손되고 있다(오른쪽 아래). ⓒ시사저널 임영무

상수원 오염 등으로 각종 질환도 늘어…피탄지 이전만이 ‘살길’

용화동 마을에서 이런 일은 흔하다고 한다. 이영진씨(69)가 거주하는 컨테이너에는 기관총에서 발사된 오발탄이 출입문을 관통하기도 했다. 이때 이씨는 출입문쪽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하마터면 오발탄의 희생양이 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이씨 부부는 공포에 떨다가 올해 초 컨테이너 집을 팔고 고향을 떠났다고 한다.

용화동 주민들의 고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용화동 주민들 가운데는 유난히 중풍, 뇌졸중, 관절염 등에 걸린 사람이 많다고 한다. 주민들은 마을 상수원 위쪽에 자리 잡은 피탄지가 원인이라고 믿고 있다. 일명 고사리골 계곡에서 흐르는 물은 신철원 1~4리 주민 약 2천7백여 명이 상수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피탄지에서 나오는 고철, 화약 분진 등 각종 중금속이 하천으로 스며들면서 질환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실제 고사리골 계곡에는 포탄 파편으로 보이는 고철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고, 시뻘건 쇳물이 물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마을 주민 허태길씨(53)는 “다른 계곡에는 고기가 있는데 여기에는 고기가 한 마리도 살지 않는다. 하류인 용화저수지에는 꼬리가 구부러지는 기형 물고기가 많다. 군 부대 피탄지 외에는 오염을 야기할 만한 곳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군부대는 피해를 입은 마을과 주민들에게 어떤 보상을 했을까. 전혀 없다고 한다. 이경세 이장은 “군사 정권 시절에는 사람이 죽어도 말 한마디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금도 군부대는 사고가 터지면 증거물을 수집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사건을 무마하려고만 한다. 우리 마을에 사는 임 아무개씨(64)의 경우 열아홉 살 때 피탄지 인근에서 나무를 하다 파편 때문에 한쪽 팔을 잃었지만 10원도 받지 못했다. 군은 등산로 포탄 사고가 발생한 지 8일 후에야 마을 주민들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근본 대책이 없는 한 소용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용화동 주민들은 등산로 포탄 사건을 계기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군 당국에 피탄지 이전을 요구하기로 했다. 주민들이 포성의 공포에서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아직은 기약이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