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무당파’만 늘고 있다
  • 김회권 기자 ()
  • 승인 2009.05.19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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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올해 네 차례 정당 지지도 조사 결과로 본 정치 민심의 현주소

▲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민심은 정치 현상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위는 서울 명동 거리. ⓒ시사저널 임준선

민주당 유선호 의원은 지난 5월2일 광주·전남 지역구 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유의원은 선거 현장에서 느낀 점을 토대로 “호남의 민주당 지지 철회 조짐이 가시화되었다”라고 썼다. 민주당 내에서는 전북 덕진과 완산 갑의 국회의원 선거 패배보다 전남 장흥과 광주 서구의 광역의원 선거 패배를 더욱 아파하는 기류가 있다. 두 곳 모두 민주노동당이 이겼다. 유의원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수도권의 ‘관성적인’ 한나라당 지지 주춤

민주당의 철옹성인 호남에서 일어난 작은 반란은 민심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민심의 실체를 보여주는 지표는 여론조사이다. 지금 민심은 요동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4·29 재·보궐 선거 이후 떨어졌다. 충청·호남·부산·경남 등의 정치 흐름도 예사롭지 않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물밑 변화는 내년 지방선거를 정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인다. 올 들어 진행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네 차례 전국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국의 정치 민심을 따라가 보았다.

수도권은 한국 사회의 중추이다.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시사적인 이슈에 민감한 지역이다. 한나라당은 수도권에서 줄곧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아왔다. 하지만 편차가 있다. 지난 1월30일 조사에서 한나라당의 서울 지지도는 22.5%까지 떨어졌다. 한 달 전인 2008년 12월 지지도는 33.1%였다. 야당과 입법 전쟁을 벌이면서 포용력 부족을 드러내자 이슈에 민감한 수도권의 특성이 바로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결과이다. 같은 조사에서 경기도도 29.1%만이 지지해 전달 33.9%보다 4% 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이후 서서히 회복한 지지율은 재·보선을 앞둔 지난 4월18일 조사에서 소폭 하락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정치·사회 조사팀장은 “한나라당은 수도권에서 안정된 지지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언론의 비판적인 보도가 나오면서 사람들의 관성적인 지지가 주춤해졌다”라고 말했다. 정치 현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도권의 특성이 드러난 결과라는 설명이었다. 최근 재·보선 이후에 드러나는 한나라당 지지도의 추락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재·보선은 부평 을 한 지역이었지만 ‘정부 여당에 대한 중간 평가였다’라는 해석이 부각되면서 지지자들의 이탈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의 지지도에는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호감이 포함되어 있다.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외부 악재에도 불구하고 지탱되는 것은 박 전 대표에 대한 호감 때문이다. 윤팀장은 수도권의 한나라당 지지율에 미치는 주요 변수로 친이-친박 갈등을 꼽았다. 그는 “갈등이 계속될 경우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떠받치던 기둥이 무너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더라도 민주당 지지율은 오르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최저치를 기록한 지난 1월의 경우 서울에서는 민주당의 지지율도 함께 떨어지는(14.6%→11.2%) 일이 벌어졌다. 경기도의 경우는 그 전달에 비해 소폭(12.4%→14.4%) 올랐을 뿐이다. 오히려 이 시기에 늘어난 쪽은 무당파였다. 민주당은 이번 부평 을 선거에서 이겼지만 수도권 지지율은 계속 떨어져 4월 조사에서는 서울 9.9%, 경기도 11.7%를 기록했다. 무당파는 서울 49.0%, 경기 48.2% 등 과반수에 육박했다. 황인상 P&C 정책개발원 대표는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지지도가 오르려면 수도권 지지자들이 무엇을 바라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수권 야당으로서 믿음 못 주는 것이 문제

황대표는 민주당의 문제로 세 가지를 지적했다. 그는 “박 전 대표와 같은 인물이 없고, 당의 지향점이 뚜렷하지 못하며, 현 시기가 여당과 이슈파이팅이 안 되는 시기라는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1년여 동안 벌어진 촛불 정국 등에서 여당과 대립한 세력은 국민이었다. 반면, 민주당 등 야당이 등장한 것은 최근의 법 개정 때였다. 수권 야당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들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수도권에서 무당파로 분류할 수 있는 비율은 전국 평균보다 높다. 이를 두고 미디어리서치의 김지연 이사는 “해석할 때 ‘모름/무응답’을 일괄적으로 무당파로 해석하는 것도 따져보아야 할 문제이다. 실제로 증가했는지도 논의해볼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어쨌든 부동층이나 다름없는 이들의 움직임에 모든 정당은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다. 보통 여론조사에서 무응답층은 대략 30~35% 선이지만 수도권은 과반수에 육박한다. 무응답층은 특정 이슈가 생겨 한쪽을 선택할 때가 오면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수도권의 높은 무응답층 중 상당수는 ‘유보의 자세’를 띠고 있다고 본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빠진 지지율이 상대방의 상승을 이끌지 않기 때문이다. 황대표는 “이들 유보층이 가장 냉정하고 객관적인 지지자이다. 변화하면 지지하고 아니면 철회하겠다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다”라고 설명했다.

자유선진당의 아성이 강한 것으로 평가되는 충청권에서도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가장 높다. 20% 중반 이상의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은 2등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이다. 반면, 최형규 교수(배재대 자치여론연구소장)가 지역에서 느끼는 체감 온도는 조금 다르다. 그는 “정당 지지도가 그렇게 나오지만 충청권은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전·충남·충북을 충청권으로 묶을 경우 잘못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대전·충남의 경우는 자유선진당이 강하고, 충북의 경우는 남부 3군(보은, 옥천, 영동)은 자유선진당을, 북쪽으로 올라가면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흐름이 있다. 이런 지역적 차이들이 섞이면서 정당 지지도와 현실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

충남은 지난 총선에서도 증명되었듯 자유선진당이 웃은 곳이다. 여전히 강세가 예상된다. 반면, 한나라당은 지난 2004년 지방선거에서 피습을 당한 박 전 대표의 “대전은요?”라는 한마디에 대전의 모든 지방선거에서 압승했다. 한나라당의 박성효 대전시장은 염홍철 전 시장을 이겼고, 시의원 19명 중 16명이 한나라당 소속으로 채워졌다. 현재 이들 한나라당 시의원은 주류와 비주류의 대립으로 열 달째 파행되고 있는 대전시의회의 구성원이다. 최교수는 “선거 때 한나라당에 몰아줬더니 대전을 망치고 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이미 머리에 각인되었기 때문에 여론은 갈수록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이런 처신은 충청권의 대안으로 버티고 있는 자유선진당에게 호기이다. 그는 “대전의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는 내년에 다 물갈이시켜야 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라고 전했다.

‘호남=민주당, 대구·경북=한나라당’ 공식도 ‘흔들’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민심의 뚜렷한 변화는 호남에서 나타났다. 황인상 대표는 광주 서구와 전남 장흥의 광역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것을 두고 “텃밭에서 내부적 정체성이 흐트러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반면, 윤희웅 팀장은 “지역 단위 선거라 민주노동당의 생활 밀착형 선거운동이 유효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여전히 호남에서 50%에 가까운 지지도를 얻고 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호남 지역의 맹목적인 민주당 지지 경향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호남의 경우 전남과 전북의 체감 온도가 또 다르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를 보면 재·보궐 선거 이전인 4월16일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는 전남·광주 23.1%, 전북 59.2%로 나왔지만, 선거 이후인 4월30일 조사에서는 전남·광주의 경우 37.8%로 상승한 반면, 전북의 경우 38.6%로 이전 조사에 비해 하락했다. 특히 전북의 경우는 정동영 전 장관이 무소속으로 당선되면서 민주당에 대한 민심 이반 이야기가 나왔던 터였다. 황대표는 “정치 공학적으로 봤을 때 호남의 민심을 바로잡는 가시화된 조치가 내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년 지방선거도 어려워진다”라고 말했다.

TK(대구·경북)는 어떨까. 이곳은 전통적인 한나라당의 텃밭이다. 한나라당이냐, 아니냐로 구분되는 곳이다. KSOI의 3월 조사에서는 한나라당 지지도가 56.5%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 지지구조는 수도권만큼이나 취약하다. 박 전 대표에 대한 호감도가 정당 지지도를 상당 부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경주 재·보궐 선거가 그 반증이다. 박 전 대표가 지원 유세에 한 번도 나서지 않았지만 친박 계열 정수성 의원이 한나라당 정종복 후보를 눌렀다. 이번 경주 선거를 두고 언론들은 ‘여론조사 기관들의 무덤’이라고 불렀다. 윤희웅 팀장은 “TK는 한나라당 강세 지역이고 대통령의 출신 지역이라 다른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출하기 꺼려한다. 만약 잠재된 이런 지지층이 박 전 대표의 행보 때 함께 움직인다면 한나라당의 지지율도 요동칠 수밖에 없다”라고 진단했다. 지난 2004년 지방선거에서 경북 지역은 한나라당이 결집력이 강한 야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초의원 1백77명 중 53명이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반면, PK(부산·경남)는 TK와 또 다른 양상이다. 지난 4월18일 KSOI가 실시한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도’ 조사에서 TK는 긍정(44.5%)과 부정(48.8%)이 엇비슷한 데 반해, PK는 긍정(35.0%)보다 부정(60.9%)이 훨씬 우세했다. 부정적 평가는 수도권보다도 높았다. 그럼에도 이 지역 사람들은 한나라당 지지자이거나 무당파, 둘 중 하나이다.

부산·경남에서도 무당파층 비율 늘어나

PK는 독특하다. 동의대 선거정치연구소가 부산MBC와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지난 4월 처음으로 20%대를 기록했다. 이전까지는 10%대에 불과했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불공정 수사하고 있다’라는 지적이 과반수가 넘었다. 전용주 교수(동의대 선거정치연구소장)는 “부산의 화두가 경제 문제라는 것을 고려할 때 태광실업이 부산 향토 기업이라는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반감이 심하다는 지적이다.

PK의 한나라당 독점 체제는 완화되어가고 있다. PK의 한나라당 지지율은 30~40% 초반으로 전국 평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한나라당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보는 이들이 다수이다. 그래서 무당파층은 늘어간다. PK의 무당파층 비율은 TK보다 높다. 전교수는 “지역에서 첨예한 문제는 ‘수도권 대 지방’ 문제인데, 민주당의 경우도 수도권 표가 중요하니까 쟁점화하지 못한다. 쟁점들을 활용하지 못하니까 젊은 층, 고학력층, 화이트칼라 위주로 무당파층으로 가는 비율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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