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면 죽는다” 전주·진주 혈전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5.1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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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토공 ‘통합공사’ 끌어오기 한판 승부…국토부 ‘솔로몬의 지혜’ 나올까

ⓒ시사저널 박은숙(왼쪽)/ 시사저널 임영무(오른쪽)

지난 1993년부터 16년 동안 논란이 거듭된 대한주택공사(주공)와 한국토지공사(토공) 통합 문제가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지난 4월30일 주공과 토공 통합 법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자산 규모가 1백5조원에 달하는 ‘메머드급 공기업’이 오는 10월1일 출범하게 된 것이다. 정부는 양 기관의 중복 투자가 없어지고, 택지 개발과 주택 건설이 일원화되어 3% 정도 분양가가 인하되는 효과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주공과 토공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통합 법안이 제정되도록 국회의원을 상대로 치열한 로비전을 펼쳤다. 사정 기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한 공기업(주공 혹은 토공)에서 외부 기관에 용역을 맡겨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안을 만들었다. 그 법안을 야권의 한 중진 의원에게 전달하면서 의원 발의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대신 해당 의원측에 정치 후원금을 제공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중진 의원이 발의하려고 했던 법안은 발의에 필요한 국회의원 서명(20명)을 다 채우지 못해 해당 상임위(국토해양위원회)에 상정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동안 주공 노조는 통합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던 반면, 토공 노조는 흡수 통합될 것을 우려해 반대 입장을 밝혀 양측 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법안이 마련되기는 했지만, 통합공사가 출범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험난해 보인다. 당장 양 기관의 경영 부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통합될 공사의 본사가 어디에 자리 잡을 것이냐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여기에 양 기관에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먼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극심한 조직 갈등도 우려된다.

이같이 산적한 과제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른 쟁점이 바로 통합공사의 본사가 어디로 정해질 것이냐이다. 이를 놓고 전주시와 경남 진주시 사이에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수립된 혁신도시 건설 계획에 따르면, 오는 2011년까지 주공은 진주 혁신도시로, 토공은 전주 혁신도시로 이전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두 기관이 통합됨으로써 이전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전체 유치하면 지방세 수입 연 2백50억원 늘어나

▲ 민주당이 통합공사 본사 위치를 통합법안 국회 통과를 볼모로 빅딜하려 한다는 사실에 정영석 진주시장이 지난 4월15일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국토해양부는 권도엽 1차관을 위원장으로, 민간 전문가와 주공·토공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통합공사 설립위원회’를 설치해서 이전 지역 문제 등을 논의키로 했다. 국토해양부의 한 관계자는 “전주와 진주 가운데 한 곳에만 통합공사가 들어설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서 탈락한 지역의 반발이 상당히 거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지역이 윈-윈 할 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크게 두 개의 사업본부로 나뉘어 두 지역에 분산 배치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양 지역이 통합공사를 유치하기 위해 ‘목을 매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통합공사를 유치할 경우, 지방세 수입이 크게 늘어난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 지역에서 통합공사 전체를 유치할 경우 지방세 수입이 연간 2백50억원 정도 늘어난다. 게다가 지역 개발이 유리해질 뿐 아니라, 지역의 경제 성장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지역 주민들의 일자리 창출에도 보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지역에는 통합공사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통합공사는 자산 규모만 1백5조원(주공 64조1천5백20억원, 토공 41조1천71억원)에 달한다. 이는 자산 규모 72조5천2백억원인 삼성전자보다 큰 것이다. 단일 기업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셈이다. 여기에 양 공사의 임직원을 합치면 7천3백여 명(주공 4천3백86명, 토공 2천9백82명)이다.

이런 까닭에 두 지역에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전주시청의 한 관계자는 “전북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 균형 발전 측면에서 통합공사의 본사는 반드시 전주로 결정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전주시가 ‘공식적으로는’ 이같은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 속내는 이렇다. 통합공사 전체를 전주시로 유치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다. 통합공사 사장 등 경영진이 포함된 본사는 전주시로, 사업본부는 진주시로 결정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 대신 인력 배분 문제에서 대폭 양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사를 전주시에 유치할 경우, 통합공사 전체 인력의 20~30% 정도만 배정받아도 된다는 것이다. 사장을 데려오는 대신 직원 수는 진주시에  대폭 양보할 수 있다는 전략이다.

‘폐기된’ 혁신도시 계획에 따르면, 주공은 진주 혁신도시로 옮길 예정이었다. 그런데 주공이 토공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산 규모가 크고, 임직원 숫자도 많다. 부채 비율은 주공이 4백20%인데 비해, 토공은 4백70%로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근거로 진주 지역에서는 전주로 옮길 예정이었던 토공을 규모가 더 큰 주공이 흡수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통합공사 유치에 더 자신 있어 하는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진주시에서는 통합공사 유치 문제와 관련해서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진주시청 핵심도시지원단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앞으로 정부와 협의해서 통합공사 위치를 결정하면 된다. 일부 언론이 진주시와 전주시의 갈등을 부추기면서 싸움만 붙이고 있다. 그래서 통합공사 유치 문제와 관련해서는 (언론 인터뷰를) 안 하려고 한다”라고 언급을 회피했다.

진주시청 “언론이 전주와 갈등 부추긴다”

진주시 역시 한편으로는 전주시와 마찬가지로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합공사 문제에 정통한 한 인사는 “진주시에서 통합공사의 100%를 유치하려는 것은 아니다. 전주시와 마찬가지로 사장 등 경영진이 진주시에 상주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직원 비율은 5 대 5로 분할해야 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두 지역은 자기 지역에 통합공사 사장이 상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사장 유치’가 곧 ‘통합공사 유치’의 성패를 가르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상징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런데 두 지역 시청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 5월7일 현재 통합공사 유치 문제로 두 지역 실무자가 한 차례도 접촉한 사실이 없다.

통합공사 유치 문제는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사안이다. 이제 통합공사 위치 선정 문제는 정부로 넘어갔다. 국토해양부의 통합공사 설립위원회가 전주-진주 두 지역이 윈-윈 할 ‘솔로몬의 지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명분’과 ‘실리’의 접점을 잘 찾아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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