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무대’ 위 베토벤의 감동
  • 최은규 (음악 칼럼니스트) ()
  • 승인 2009.05.0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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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개막…덕수궁·예술의전당 등에서 다양한 행사 펼쳐

▲ 지속적인 연주활동을 펼치는 전문화된 실내악 단체들이 늘고 있다. 맨 왼쪽부터 오른쪽방향으로 시네 노미네 콰르텟, 크누아 콰르텟, 주피터 콰르텟.

4월이 교향악의 달이라면 5월은 실내악의 달이다. 음악팬들을 설레게 하는 4월의 교향악 축제가 끝나면 실내악의 즐거움을 전하는 5월의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내악은 오페라처럼 볼거리가 많거나 교향악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작은 공간과 몇 명의 음악가들만으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실내악을 연주하고 향유하는 문화는 낯설었지만 최근 들어 수준 높은 실내악 연주회가 종종 열리고 있어 국내 실내악 관객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실내악 활성화의 중심에는 올해로 4년째를 맞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있다. 매년 5월에 열리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는 연주자와 더욱 가까운 거리에서 음악으로 교감할 수 있는 실내악의 매력을 전하면서 이제는 음악계의 연례 행사로 자리 잡았다. 5월만 되면 서울의 여러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실내악 연주회를 손꼽아 기다리는 음악 애호가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곡을 중심 주제로 택해

‘축제’라는 성격에 걸맞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는 매년 다양한 종류의 실내악 작품들이 소개되어왔지만 올해 프로그램은 특정 작곡가에 집중하고 있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에벤 4중주단과 시네 노미네 4중주단을 비롯한 세계적인 현악 4중주단들이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전곡 연주에 도전하는 등 학구적인 면모도 보여주고, 올해 탄생 2백주년과 서거 2백주년을 맞이한 멘델스존과 하이든의 실내악 작품에도 비중을 둔 것이 눈길을 끈다. 프로그램 구성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매년 개최하는 축제의 경우 해를 거듭할수록 프로그램과 출연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해외의 유명 음악 축제들은 매년 축제의 주제를 바꾸어가며 관객들에게 참신한 인상을 심어주기도 하는데, 올해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는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예술성이 뛰어난 베토벤의 현악 4중주곡을 중심 주제로 택해 그 고민을 해결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매년 충실한 내용을 갖춘 축제로 성장하기까지 음악감독 강동석과 그를 중심으로 한 음악인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세계적인 바이올린 독주자에서 연세대 교수로 그리고 이제는 한국 실내악 운동의 중심 인물로 활약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생겨난 지난 2006년부터 매년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고, 김영호, 양성원, 김상진 등 주로 연세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음악가들과 이경선, 백주영, 최은식, 박상민, 송영훈, 채재일 등 현재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실력파 연주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40여 년 전만 해도 ‘실내악 부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내 음악계에서 실내악 연주회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했다.

그러나 안정적인 기반 없이 각자의 상황에 맞게 명맥을 유지해온 몇몇 실내악 단체 덕분에 국내 실내악 연주와 실내악 애호 문화는 조금씩 성장해왔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더 전문화되고 지속적인 연주 활동을 보여주면서 초창기 실내악 운동과는 구별되는 ‘2세대’를 형성하고 있다.

수준 높아진 국내 실내악 연주 감상할 기회

실내악 2세대의 연주 활동은 기업의 후원과 극장의 기획력, 대형 연주 단체의 실내악 프로그램 개발에 힘입어 좀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한결 전문성을 띠게 되었다. 피아니스트 김대진을 중심으로 오보이스트 이윤정과 플루티스트 윤혜리 등 뛰어난 음악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금호아트홀의 챔버뮤직소사이어티와 서울시향의 수석급 단원들을 중심으로 매년 주제별로 진행되는 서울시향의 실내악 시리즈 등은 그 좋은 예가 된다. 실내악 시리즈는 연주 수준도 높지만 한 작곡가의 여러 실내악 작품들을 집중 조명하는 아카데믹한 면이 강해 주로 음악 마니아층의 호응을 얻고 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경우 전문성도 뛰어나지만 대중들에게 친근한 프로그램을 가미해 실내악의 대중화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올해 축제에서도 베토벤의 현악 4중주곡뿐 아니라 관객들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다양한 무대가 마련되어 흥미롭다.

개막에 앞서 5월5일 어린이날에 덕수궁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프리뷰 음악회는 야외음악회의 특성에 맞게 글린카의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과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 등 귀에 익은 관현악곡들이 전석 무료 공연으로 이루어지고, 9일 저녁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가족음악회에는 익살스러운 현악 4중주 작품과 비틀즈 메들리까지 소개되어 일반 관객들도 즐길 수 있는 음악회로 진행된다.

10일과 12일에 영산아트홀과 구로아트밸리에서 열리는 ‘이구스데만 & 주’의 특별한 무대도 클래식 음악에 익숙지 않은 일반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구스데만 & 주’는 러시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알렉세이 이구스데만과 한국계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주형기가 함께하는 특별한 퍼포먼스 그룹으로, 그들이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벌이는 코믹 퍼포먼스는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편, 이번 축제에서는 음악 마니아들의 관심을 끄는 특별한 공연도 준비해 프로그램의 균형을 맞춘 것도 눈에 띈다. 먼저 6일 성공회성당에서 열리는 하이든 서거 2백주년 기념 음악회에는 실연으로 들을 기회가 적은 하이든의 명곡 <십자가상의 7언>이 현악 4중주 연주로 소개되어 관심을 끌고, 13일에는 구로아트밸리에서 바이올린의 거장 슐로모 민츠가 어마어마한 난곡으로 알려져 있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전 24곡을 연주하는 특별한 무대도 마련되어 음악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09년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는 5월5일부터 18일까지 서울의 여러 공연장과 덕수궁에서 이루어진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솔리스트와 해외에서 지명도 있는 현악 4중주단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현악 4중주곡을 집중적으로 들어볼 수 있는 기회이다.

코믹 퍼포먼스가 곁들여지는 음악회는 가족 단위 프로그램으로 훌륭하고 무엇보다 입장료도 합리적이다. ‘실내악’이라는 틀 안에서 고정관념을 깨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매년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실내악의 즐거움을 더 많은 이에게 전해주는 매개체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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