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단속’ 곳곳에 구멍 숭숭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4.1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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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민정수석실 허약한 감시 시스템 드러나

‘로열 패밀리’에게는 끊임없이 유혹이 찾아온다. 대통령의 친인척은 ‘갑’이다. 수많은 ‘을’들이 이권을 노리고 청탁하는 대상이다. 우리 정치사에서는 이전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다음 정부가 들어서자 ‘게이트’에 연루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과거 정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취임 초기부터 공개적으로 밝혔다.

노무현 정부는 친가의 8촌, 외가의 6촌, 사돈과 종친회 등을 포함한 9백여 명을 민정비서실에서 관리했다. 민정수석실에는 문재인, 이호철 등 대통령의 최측근을 앉히며 중량감을 높였다. 취임 직후인 2003년 2월28일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호철 민정비서관은 직접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노건평씨에게 불거진 인사 청탁 문제를 조사하고, 노대통령 친인척들에게 각종 청탁에 관한 주의사항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직속 사정팀 안에 친인척 비리를 전담하는 ‘특별감찰반’을 신설하는 등 신경을 썼지만 ‘박연차 게이트’는 당시의 감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요주의 인물이었던 건평씨 외에 이번에는 권양숙 여사까지 연루되었다.

건평씨는 노대통령의 임기 동안 여러 의혹들과 관련되었다.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인사 청탁 파문, 국세청 차장 인사 개입설 등이 튀어나오자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는 “1 대 1 감시를 하고 있다”라고까지 말했다. 그래도 틈새가 있었다.

건평씨는 그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잘 알 정도로 박회장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지난 1월 기자가 만난 건평씨는 “국세청의 세무조사로 박회장의 사업이 힘들어지고 있다” “사진발이 받아서 그렇지 얼굴에 누런 빛이 돌 정도로 건강이 안 좋다”라며 걱정하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사이인 두 사람이 지난 2005년 세종증권이 농협에 매각되는 과정에 깊이 개입했지만 민정수석실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당시 민정수석실의 관계자는 “건평씨의 로비 개입에 대해 보고된 정보가 전혀 없었다”라고 언론에 밝힌 바 있다.

기관들 사이 정보 교류 원활치 않았을 수도

중간 다리 역할을 한 정화삼씨 형제는 감시의 대상인 건평씨의 자택을 드나들었지만 포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리송하다. 게다가 2006년 정씨 형제가 오락실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김해의 사행성 오락실 업자들 사이에 정씨는 ‘대통령과 친한 사람’으로 알려지며 ‘대원군’으로 불렸다. 정씨 형제가 운영하던 오락실은 ‘대원군의 오락실’이라고 불리며 김해 내동 일대에서 독보적인 매출을 올리는 곳으로 유명했지만 별다른 단속 조처는 취해지지 않았다.

민정수석실은 축구 골키퍼와 비슷하다. 열 번의 비리를 잘 막더라도 한 번만 뚫리면 비난을 받는다. 때에 따라서는 국정원, 검찰, 경찰 등 정보 수집 기관과의 네트워크를 이용한다고 하지만 한정된 민정수석실의 인원으로 수백 명의 친인척을 관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가 비주류 정권으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기관들 사이의 정보 교류가 원활하지 않았을 개연성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로열 패밀리에 대한 검증’이라는 부담감을 떨쳐버리지 못한 것이 중요한 원인으로 제기되고 있다. 시스템도 갖췄고 의욕도 넘쳤지만 막상 대통령 식구들의 의혹을 검증할 용기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노 전 대통령측은 “이번에는 정말 아무런 할 이야기가 없다”라고 말했다. 친인척 비리는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힌다. 뿌리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역대 정권 중 그나마 ‘도덕적’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노무현 정부도 지금 그 이전 정권과 같은 길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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