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호조선 모시기 해도 너무 한다”
  • 사천·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09.04.14 11: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천시와 지역 업체·주민들 ‘조선소 유치’ 싸고 갈등“고용 효과 1천5백명” 대 “농공단지 지정은 잘못”

ⓒ시사저널 유장훈

“사천시가 삼호조선을 밀어주려고 작심했다. 조선소 하나를 유치하기 위해 농공단지를 지정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지난 4월8일 경남 사천에서 만난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울분을 털어놓았다. 사천시는 지난 2007년 10월 사등동 한국조선소 및 동진조선소 등이 있는 부지를 향촌농공단지로 지정했다. 하지만 말이 농공단지이지 이곳에는 삼호조선의 선박 블럭 제조 공장 한 곳이 들어올 뿐이다. 사천시 일대는 이 때문에 요즘 삼호조선 특혜설이 나돌며 시끄럽다.

특히 농공단지 부지는 보전용지인 자연녹지이다. 현행법상 도시 기본 계획을 변경하지 않으면 단지 지정이 불가능한 곳이다. 사천시는 농공단지를 지정한 지 10개월 후인 지난 2008년 8월에야 용도를 시가화(공단) 예정 용지로 변경했다. 이로 인해 “사천시가 삼호조선에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라며 반발하는 조선소나 주민들의 소송 및 탄원이 잇따르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지역 기업들을 희생시켜가며 땅 한 평 소유하고 있지 않은 삼호조선에 특혜를 주는 것은 부당하다. 농공단지 바로 옆에는 남일대 해수욕장이 있어 오염 우려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삼수 시의원도 “사천시가 기업 유치 실적에만 급급해 수많은 민원을 야기하고 있다. 사천시 발전을 위한 전략을 장기적 관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자연녹지를 공단 예정 용지로 변경해

사천시나 사업 시행자인 삼호조선측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천시청 공단조성과 관계자는 “삼호조선이 들어오게 되면 1천5백명 상당의 고용 효과가 예상된다.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라도 삼호조선을 유치해야 한다. 법적 다툼으로 지연된 공단 조성을 촉구하는 민원도 적지 않게 들어오고 있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역 민심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특히 농공단지에 터를 잡고 있는 소형 조선소가 시 당국에 보이는 불신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박흥갑 한국조선 대표는 “삼호조선 한 곳을 위해 농공단지를 지정한다는 발상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70여 명에 달하는 직원과 협력업체 100여 곳의 직원들은 죽으라는 말이냐”라고 따졌다.

그가 이렇게 언성을 높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박대표는 현재 2대째 이곳에서 조선소를 운영하고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유람선이나 크루즈선, 방위사업청 및 소방방재청에서 발주하는 관급 선박을 수주해 제조하는 탄탄한 업체이다. 그러나 최근 그의 공장 부지가 농공단지로 지정되면서 가업을 접어야 할 위기를 맞았다.

박대표는 “전임 마산지방해양청장 중재로 사천시청, 삼호조선 등과 3자 대면을 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삼호물산은 인근 남해군 내의 대체 부지를 제시했다. 그러나 조선소가 들어설 수 없는 곳이었다. 남해군도 땅을 내줄 의사가 없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답답하다”라고 하소연했다.

최근에는 수십 년간 사용해온 공유수면 점유 및 사용권마저 취소될 위기에 처했다. 그는 “삼호조선이 마산지방해양청으로부터 조선소 앞 바다의 매립 면허를 신청해놓았다. 항만청이 매립 면허를 승인한다면 더 이상 배를 건조할 수 없게 된다”라고 말했다.

▲ 사천 시청(위)은 삼호조선에 특혜를 주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아래 왼쪽은 박흥갑 한국조선 대표, 아래 오른쪽은 이동주 남일대리조트 대표. ⓒ시사저널 유장훈

농공단지 부지의 남일대리조트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사천시는 지난 1990년대부터 남일대 해수욕장 주변을 유원지로 개발할 계획이었으나 민자 유치가 번번이 깨지면서 10년 넘게 방치해왔다. 그러다 지난 2002년 공모를 통해 현재의 남일대리조트가 개발업체로 선정되었다. 이 회사는 그동안 3백50억원을 들여 호텔과 워터파크 및 부대시설을 건립했다. 콘도 조성을 위한 조경 공사나 주차장 등도 현재 마무리된 상태이다. 하지만 불과 2백50m 떨어진 곳에 대형 조선소가 들어서게 되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동주 남일대리조트 대표는 “삼호조선이 들어서면 철판 절단으로 인한 분진이나 소음, 페인트 도색 등으로 해수욕장뿐 아니라 리조트 전역에 피해가 예상된다. 사천시만 믿고 거액을 투자했는데 배신을 당한 느낌이다”라고 토로했다.

향촌농공단지 인근에는 지역민들이 이용하는 시설이 즐비하다. 불과 100m도 안 되는 거리에 축구장이나 유원지 및 야영장 등이 있다. 남일대리조트와 사천시가 협의한 요트 선착장 역시 농공단지로 묶이게 되면서 조성이 어렵게 된다고 이대표는 설명한다.

박흥업 한국조선 대표와 이동주 남일대리조트 대표 등은 사천시를 상대로 농공단지 지정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박대표는 “농공단지는 농어민 소득 향상을 위한 것이다. 지역 내 농어민을 유휴 인력으로 만드는 단지 조성은 관련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이대표는 “산업단지의 난립에 따른 폐해를 막기 위해 동일 생활권 내에 여러 산업단지를 세울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현재 인근에 송포농공단지가 있는 만큼 향촌단지의 지정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사천시는 “관련 법안에 조선소가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없다. 송포농공단지는 수심이 얕아 조선소 부지로는 적당하지 않다. 지자체장의 재량에 따라 얼마든지 농공단지를 지정할 수 있다”라고 반박했다.

“3백50억짜리 리조트 코앞에 조선소가 웬 말”

자연녹지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 농공단지로 지정된 부분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이대표는 “도시기본계획법상 보전용지이자 자연녹지인 곳에 도시 기본 계획의 변경 없이 농공단지를 지정할 수 없다. 사천시는 농공단지로 지정하고 10개월 후에야 시가화 예정 용지로 용도를 변경했다. 법을 어겨가며 특정 업체를 봐주려 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사천시 관계자는 “자연녹지 지역에도 얼마든지 농공단지를 지정할 수 있다. 현재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합당한 자료는 공개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노무현 정권에서 수도권 기업들의 지방 이전을 적극 권장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몇몇 기업들이 이전 작업을 벌이고 있다. 자립 기반이 부실한 지방 도시에서 기업 유치는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밀어붙이기식 유치를 강행함에 따라 지역민들의 반발을 사는 등 부작용 또한 적지 않다. 사천시 일대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삼호조선 특혜설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천시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