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성상납 의혹 수사 가로막은 세력 있었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4.0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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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수사 책임 맡은 김규헌 서울고검 부장검사 인터뷰

ⓒ시사저널 유장훈

김규헌 부장검사가 7년 만에 <시사저널>에 당시 외압에 대해 입을 열었다.

압력을 넣은 사람은 정부 고위직이었고, 김부장검사의 선배이기도 했다.

그는 수사 도중 충주지청장으로 전보되었고, 그 후 수사팀이 해체되면서 사건도 종결되었다.

월드컵 4강 신화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던 2002년 7월. 세인들의 이목이 서초동 검찰청사로 쏠렸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가 연예계 전반에 만연한 각종 비리 의혹에 대해 칼을 빼들었기 때문이다. 강력부는 연예 기획사와 방송사를 비롯한 연예계에 뿌리 박혀 있는 검은 커넥션을 발본색원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방송 출연 등을 빌미로 금품이 오간 의혹을 파헤치는 것은 기본이었다. 여기에 기획사와 조직폭력배의 유착 관계,  연예인의 성상납 내지 매매춘 의혹에도 메스를 들이댔다. 특히 연예인과 정·관·재계 유력 인사들의 ‘부적절한 관계’가 도마에 올랐다. 그간의 연예계 비리 의혹 수사 가운데 최대였다.

하지만 용두사미였다. 수사가 시작된 지 불과 한 달 보름 만에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수사 책임자였던 김규헌 서울지검 강력부장이 갑작스럽게 충주지청장으로 발령나면서 수사에서 손을 떼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부장이 좌천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는 유력 인사들이 김부장을 지방으로 쫓아냈다는 것이다. 그해 9월 국정감사장에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연예인들로부터 성상납을 받았다”라며 유력 정치인들의 연예인 성상납 의혹을 폭로했다. 홍의원은 “정치권의 압력을 받은 검찰이 서울지검 강력부장을 충주지청으로 좌천시켰다”라고 따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 김규헌 서울고검 검사 2002년 연예인 수사 관련 인터뷰. ⓒTIME

그리고 7년이 흘러, 탤런트 고 장자연씨의 성상납 의혹 사건이 터졌다. 당시 수사팀을 진두지휘했던 김규헌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은 현재 서울고검 부장검사로 재직하고 있다. 장자연 사건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난 3월27일과 3월31일 두 차례 검찰청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김부장은 “그때 제대로 수사해서 연예계 비리를 어느 정도 뿌리 뽑았다면 장자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라며 본의 아니게 수사가 중단되었던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당시 장자연의 전 소속사 대표였던 김성훈씨도 수사 용의선상에 올랐는데, 해외로 도피한 상태였다고 했다. 업계에서 김대표에 대해 평판이 썩 좋지 않았다는 등 당시 기억을 끄집어내기도 했다.

그런데 김부장은 수사 중단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자신의 인사 발령과 관련해서는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으려 했다. 그럼에도 기자의 거듭된 요청에 그는 “수사 당시 정부의 상당한 고위직에 있던 분이 ‘(수사를) 너무 확대하지 말아라. 참 걱정된다. 자네는 내가 좋아하는 후배인데, 너무 전선을 확장하는 것은 피하라’라고 말했다”라고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또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너무 강하다” “웬 만큼 하고 손을 떼면 좋겠다” “너무 넘어가면 다친다”라는 ‘충고’까지 들었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인사 발령에 ‘보이지 않은 손’들이 개입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정황들이다. 현직에 있기 때문인지 김부장은 더 이상의 구체적인 부분들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2002년 연예계 비리 수사에 나섰던 배경을 설명해달라.

2002년 7월부터 8월까지 1개월 반 동안 최고의 수사 진용을 갖춰 전면적으로 수사했다. 연예계의 구조적인 부패 고리를 규명하기 위해서였다.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기 전에 거의 반년 동안 내사를 벌였다. 대형 기획사들이 코스닥에 등록하고 유·무상 증자를 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어떻게 조성했는지, 세금은 제대로 신고했는지 등을 광범위하게 내사했다. 방송사와 PD 등에 대해서도 정보를 많이 모았다. 그래서 7월10일을 기해 전면 수사에 들어갔지만, 8월24일 내가 갑자기 (충주지청장으로) 인사 발령이 나면서 수사가 매끄럽지 않게 되었다. 그때까지 20명 넘게 구속했고, 20명을 수배했고, 상당수를 불구속하는 등 많은 성과를 거뒀다.

수사의 초점은 무엇이었나?

대형 기획사와 방송사 PD 등이 홍보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하거나 향응을 받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대형 기획사 대표들과 문제 있는 PD들이 외국으로 도망가거나 국내에서 잠적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형 기획사가 증자를 통해 올린 시세 차익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도 수사했다. 단순하게 연예 관계자들에게만 접대비로 들어갔다고 보기에는 상당한 거액이었기 때문이다. 허위 장부를 만들어 기획사를 비호하거나 스폰서 역할을 했던 정·관계 인사들에게도 흘러갔는지 수사하려 했다.

특히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기획사로 조폭의 자금이 유입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직·간접적으로 조폭이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어떤 자금이 기획사로 들어갔고, 거꾸로 기획사의 돈이 어떻게 조폭으로 흘러들어갔는지 수사했다. 또, 연예인을 기획 행사 등에 출연시키는 과정에서 조폭들이 출연을 강요하거나 갈취한 혐의는 없는지도 보았다.

마지막 관심은 성상납 의혹이었다. 내사 과정에서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 시중에 나도는 소문이나 증권가 찌라시(정보지)까지 검토했다. 일부 연예인을 조사한 적도 있다. 성적인 만족을 줄 수 있는 향응을 제공했는지도 수사 대상이었다. 수사팀 검사들은 여름 휴가를 반납했고, 8월 초에 나는 장인상을 당했는데 장지에 들렀다가 다시 출근했다. 당시 수사가 진행되면서 많은 시민이 피자나 통닭 등을 보내주면서 격려해주었다.

8월 말 인사 발령이 나면서 수사가 끝난 것인가?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의문점을 풀어가고 있을 때 인사 발령이 났다. 나는 공무원 생활을 30년 가까이 했다. 설사 인사 문제가 있었다 해도 감내해왔다. 하지만 그때 나는 전투에 나간 지휘관이자 장수였다. 수사를 시작한 지 한 달 반 만이었다. 인사 대상이 아닌 줄 알았다. 인사 당일에서야 알았다.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수사팀에서도 의지가 한풀 꺾였다.

우리 수사팀은 특수부 등에 파견된 검사까지 평검사만 9명이었다. 이후에 다들 복귀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흐지부지 끝났다. 사실상 수사가 종결된 것이다. 너무 안타깝다. 당시 사건은 기획수사였고, 대상이 광범위했다. 내사에 공을 들였던 만큼 수사도 상당한 기간이 필요했다. 최소한 석 달 이상은 더 했어야 사법 처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인사를 놓고 좌천성 인사라는 말들이 많았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지휘부는 나에게 다 믿고 맡겼다. 영장 청구 날짜 등 모든 것을 나 이외에 아무도 몰랐다. 검사장도 몰랐다. 개괄적으로만 보고 했지,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다. 나를 믿으라고 했다. 검사장 등이 전적으로 나를 믿었다. 그런데 당시 인사 대상자들 가운데 나만 몰랐다. 갑자기 (충주지청장으로) 가라고 했다. 떠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누군가 당시 인사 과정에 개입했다고 보이는데.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내가 움직이기를(자리를 옮기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짐작 가는 사람이나 세력이 있을 텐데.

짐작이야 한두 군데 분명히 간다. 가지 왜 안 가겠나.

▲ 고 장자연씨의 전 매니저 유장호씨가 피고소인 신분으로 분당경찰서에 출두해“경찰 조사에 충실히 임하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누구인가?

강력부장을 바꾸는 것에 대해 여러 이해관계가 맞았으니까. (검찰의) 인사권자 입장에서 좋게 해석하면, 나를 보호하려 했던 것 같다. 나를 모함하는 투서와 얘기가 워낙 많았다.

당시 짐작 가던 사람들이 현재도 활동하고 있나?

상당수 떠났지만 일부는 아직 활동하고 있다. 다른 직으로 바뀌기도 했다. 가령 관계에서 정계로 갔거나 하는 식이다. 당시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7년이나 지났으니까. (이 대목에서 김부장은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시 방송사 주요 오락 프로그램의 제작이 안 될 정도였으니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수사가) 자꾸 정치권을 들여다보니까 우려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 어느 저녁 모임에 잠시 들른 적이 있다. 그때 고위직에 있던 어느 분을 잠깐 봤는데, 그분은 나를 걱정했는지 ‘너무 확대를 하지 말아라. 참 걱정된다. 자네는 내가 좋아하는 후배인데, 너무 전선을 확장하는 것은 피하라’고 하더라. 검찰에 있는 분은 아니었고, 정부의 상당히 고위직에 있던 분이었다.

누구인가?

그것은 이 정도로만 하자.

그러면 그 인사도 수사와 관련되어 있었나?

그 사람은 수사와 전혀 관련이 없던 사람이다. 단지 수사가 걱정이 되어서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연예계나 방송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다만, 그쪽 사람들을 많이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듣지 않았겠나. 개인적으로 걱정되어서 나를 보호해주려는 측면도 있었을 것이고, 그쪽 입장을 전달하려는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전선을 너무 확장하면 서로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 있으니까 그런 취지로 얘기하지 않았나 싶다.  

여기저기서 수사와 관련해 연락이 많았을 것 같다.

많이 왔다. 전화만이 아니었다. 거절하기 힘든 사람한테서도 유·무형의 로비가 엄청났다. 인간적으로 참 어려운 일이었다. 나를 접촉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에 대해 험담하고 다닌 사람도 많았다. 정치 쪽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고 본다. 평소 알던 한 대기업 임원은 나에 대한 소문이 맞느냐고 묻기도 했다.

다른 외압은 없었나?

소프트(soft)하든지 하드(hard)한 프레스(압력)가 있었다. 큰 사건을 수사하는데 왜 없었겠나. 난 이미 강골로 알려져 있었다. 내가 수사 기준을 세웠는데 어떻게 흔들릴 수 있나. 수뢰 액수가 2천만원 이상이면 신병 처리를 하기로 기준을 세워놓았다. 그런데 (외압이 왔다고) 내가 어떻게 불구속하자고 할 수 있나. 당시 간접적으로 내게 전달된 얘기가 ‘너무 강하다’ ‘웬 만큼하고 손을 떼면 좋겠다’라는 것이었다. 내 선배로부터 ‘너무 넘어가면 다친다고 하더라’라는 말까지 들었다. 

대형 기획사 수사는 어떻게 되었나?

메이저급인 4개 대형 기획사를 모두 압수수색했다. 자금 추적 등을 통해 밝혀진 것도 있다. 군소 기획사에 대해서도 조사를 했다. 기획사가 수백 개에 달했는데, 너무나 많이 사람이 조사를 하지도 않는데 잠적하고 외국으로 도망을 갔다. 이번에 장자연 사건과 관련된 (장자연 전 소속사 사장) 김성훈도 그때 도망갔다.

김성훈씨도 당시 수사 대상이었나?

수사 대상이라면 이상한데, 문제 되는 사람은 다 조사해야 했다. 수사 협조 차원에서 다른 기획사 대표가 김성훈에 대해 ‘기획사 규모가 작은데 저돌적으로 운영한다’라고 말했다. (김성훈은) 불과 30대 초반으로 그 일을 한 지 얼마 안 된 친구였는데 평판이 썩 좋지 않았다. 조만간 (수사팀과) 부닥쳐야 했다. 하지만 조사를 시작해서 도망간 것인지는 모르겠다.

김성훈이 수사 용의선상에 올랐다는 말인가?

용의선상에 올라가 있었다. 조사를 받던 기획사 대표 등이 ‘우리는 정상적으로 활동하는데 몇 사람이 물을 흐려놓는다’라고 얘기했다. 그 몇 사람 가운데 한 명이 김성훈이었다. 소규모 기획사인데 너무 공격적이라고 했다.

‘공격적’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무엇을 (방송사 등에) 갖다 준다는 것이다. 방송계도 10년, 20년 지내다 보면 서로 소주도 한 잔 하면서 호형호제한다. 그런데 그 정도 범주에 속하지도 않는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쟤는 왜 저렇게 튀나’라는 식이었다. 그렇게 소문이 나 있었다.

당시 성상납 의혹 수사는 어떻게 되었나?

지금은 그 재벌이 해체되었지만, 당시 한 재벌 회장의 2세가 연예인 누구하고 동남아에 같이 갔다는 정보가 다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죄가 되느냐는 어려운 문제이다. 실명으로 거론되었지만. 순수하게 놀러가서 그랬는지 비즈니스 목적이었는지 확인하기 전에, 내가 인사 조치를 당했다. 노회한 거물들은 연예인과 함께 외국 나갈 때 같이 가지 않는다. 대체로 날짜를 달리 정해서 따로 나간다. 굉장히 조심한다.

연예인 성상납 혐의를 실제로 포착했나?

정보는 이만큼 갖고 있었다(이 말을 하면서, 김검사는 양손을 10㎝ 정도 벌렸다. A4 용지로 5백쪽 이상은 족히 넘어 보였다). 그 문제는 후다닥 할 문제가 아니다. 신빙성을 다 따져야 하는 사건이다. 심리적인 측면이 강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와 동석했느냐, 누구와 (성관계를) 했느냐 물어볼 단계가 아니었다. 성상납 단계라고 할 수는 없었다. 성상납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는 것이다. 조사하기 힘든 대상이다. 다만, 전체적으로 향응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현금이나 골프채, 항공권 등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 과정에 누가 있었느냐 하는 식으로 병행 조사를 한 것이다. 섹스에 국한해서 조사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성상납 의혹에 연루된 유명 배우가 있었나?

몇 명 거론되기는 했다. 하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경우도 많았다. 누구는 날아다니는 침대라는 등 별별 얘기가 다 있었다. 그렇다 해도 풍설에 끌려다니면 안 된다. 확실한 사실이 아니면 조사하기가 쉽지 않다.

조폭이 운영하던 기획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조폭들은 기획사의 실제 오너이거나 바지 사장을 앉혔다. 전국구인 서방파나 오비파에서 떨어져 나온 세력들이었다. 부두목급이거나 조직책을 맡는 등 상당한 위치에서 브레인 역할을 했던 애들이다. 연예인과 가깝게 지낼 수 있어서 나이트클럽이나 디너파티, 기획 행사 등에 관여했다. 메이저급 기획사들은 아니었다. 일부 신생 기획사 가운데 갑자기 떠오른 기획사가 관찰 대상이었다. 그 가운데 중간급치고는 제법 큰 기획사에 대한 수사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그러나 인사 조치되는 바람에….

기획사를 운영하는 조폭을 비호하던 별도의 세력이 있었나?

확증을 잡지 못했다. 모든 가능성을 보니까 의문은 있었다. 사실 관계가 확증되고 기소할 수 있는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다. 아주 민감한 문제이기는 해도, 그런 소문은 계속 있었다. 강력부에서는 한 유명 스포츠 단체 등 몇 곳을 관심 있게 보고 있었다. 스포츠 행사가 있으면 (조폭이 운영하던) 기획사와 커넥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예계의 고질적 병폐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그때 수사를 더 했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했더니 장자연 사건처럼 계속 이런 일들이 터지는 것이다. 몇 년 지나면 또 일어날 것이다. 무엇보다 방송 제작자들의 자정(自淨)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앞으로 제도와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몫이다. 가령 수상(受賞)과 캐스팅을 하는 과정에서 협의체를 구성하고, 내부 감찰을 강화하는 것도 자정 방법의 하나일 수 있다. 일정 액수 이상이면 외부 인사와도 밥을 먹지 않겠다고 정하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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