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하려다 너무 뜸을 들였나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4.0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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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장 공석 4개월째, 내부냐 외부냐 놓고 고심 중…“재정부가 국세청 접수하려 한다”

▲ 국세청장 자리가 넉 달째 비워지자 국세청은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왼쪽은 출근하는 국세청 직원들. ⓒ시사저널 임영무

국세청장이 4개월째 공석이다. 지난 1월16일 한상률 국세청장이 사퇴한 이후 후임자가 4월3일 현재까지 임명되지 않고 있다. 국세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기관장의 공백 상태가 이렇게 길어지는 것은 다른 부처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다. 도대체 국세청장은 왜 임명되지 않는 것일까.

청와대가 그동안 공식적으로 밝힌 이유는 “적합한 분을 찾을 때까지 당분간 허병익 차장 직무대행 체제로 간다”(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라는 것이다. 지난 1월 <시사저널>이 ‘경주 골프 사건’을 보도하면서 한상률 전 청장이 급작스럽게 낙마했기 때문에 후임자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관가에서는 “너무 시간이 걸린다. 사람이 그렇게도 없는가. 무언가 다른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3월12일 YTN이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말을 빌려 “허병익 차장이 국세청장에 내정되었다”라고 보도했다가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면서 이런 의문이 더 커졌다.

국세청 “청와대에서 막판 검증 작업 중”

현재 추세로 보면 청와대는 4월 중순쯤에는 국세청장을 임명할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내부와 외부 인물을 대상으로 복수의 후보에 대한 막판 검증 작업을 벌이고 있다”라고 전했다. 청와대와 국세청 안팎의 흐름을 종합하면 국세청 내부 인사로는 허병익 차장이, 외부 인사로는 충남 출신인 윤영선 기획재정부 세제실장과 서울 출신인 허용석 관세청장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실장은 물론 허청장 또한 윤실장에 앞서 세제실장을 지낸 기획재정부 사람이다. 국세청 출신으로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조용근 세무사회 회장의 이름도 나온다. 한때 강원도 강릉 출신인 허병익 차장이 승진하는 것이 당연시되었으나 기류가 바뀌면서 혼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 인사는 “허차장을 마뜩찮아 하는 쪽에서 그가 지난 정권의 실세와 관련이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라고 전했다.

여권 주변에서는 한동안 “대구·경북 세력이 국세청장을 차지하기 위해 허차장을 흔들고 있다”라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이러한 지역적인 고려보다는 ‘내부 인사냐, 외부 인사냐’가 국세청장 임명이 지연되는 이유의 핵심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현재 청와대는 인물에 대한 검증 작업과 함께 국세청 조직을 안정시키고 경제난 속에서 안정적으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내부 인사가 적합하고, 국세청을 개혁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외부 인사가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쪽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인선 구도가 확 달라질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주목되는 것이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에서 마련 중인 국세청 개혁 방안이다. 청와대는 지난해 말부터 이와 관련해 국세청과 기획재정부 등의 관계자들을 모아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국세청의 현황과 조직에 대한 문제점 등을 면밀히 분석했다. 컨설팅 기관인 BAH코리아가 지난해 5월부터 국세청에 대한 조직 진단을 한 결과물인 4백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만드는 마무리 단계에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지방 국세청 폐지, 감시위원회 설치, 조사청 신설 등 ‘미국식’ 방안을 많이 차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대로 현실화할 경우 그야말로 국세청이 한바탕 회오리에 휘말릴 정도로 변화 폭이 큰 방안이다. BAH는 미국 국세청(IRS)의 조직 진단을 맡은 기관이다.

▲ 국세청장 후임에 오르고 있는 (맨왼쪽부터 순서대로) 허병익 국세청 차장, 윤영선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허용석 관세청장. ⓒ(왼쪽부터 순서대로)뉴시스, 연합뉴스, 연합뉴스

‘바람’ 불면 내부 반발 일 듯

여권의 한 인사는 “청와대에서 마련 중인 국세청 개혁 방안을 내부 인사가 받아들여 실행하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그렇게 갈 것이고 아니라면 외부 인사가 국세청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어떻게든 ‘국세청 개혁’을 밀어붙이겠다는 청와대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은 여러 군데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 때문에 조만간 국세청은 거센 개혁 회오리에 휘말려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세청 개혁이 본격화할 경우 국세청 내부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직원들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내부 공감대도 형성이 안 되어 있고, 이와 관련해 공청회 한 번 갖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개혁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주목되는 것은 국세청장을 놓고 국세청과 기획재정부 간 미묘한 갈등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세청 관계자들은 이주성·전군표·한상률 등 전직 국세청장 세 명이 잇따라 불명예 낙마한 틈을 타 기획재정부가 국세청을 ‘접수’하려 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청와대가 주도하는 ‘개혁 방안’ 또한 기획재정부의 입김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들은 기획재정부 출신인 이용섭 전 국세청장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곤 한다. “내부를 잘 모르는 청장이 오면 후유증이 오래 간다. 이용섭 전 청장 이후 세 명의 청장이 잇따라 낙마한 것이 단적인 사례이다.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기획재정부 출신 청장이 오면 또다시 파벌이 생기고 투서가 난무하면서 조직이 정치화할 것이다. 한 번 흔들리면 회복하기 어렵다. 피해는 일반 국민이 본다”라는 것이다. 국세청은 일반 기관장과 달리 업무를 알아야 청장직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외부 인사가 오더라도 국세청 출신이 와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국세청 개혁’은 일반인들에게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뇌물 수수와 정치권 줄대기, 부적절한 행태 등으로 상징되는 전임 청장들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뱉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만도 몇 가지 사례가 드러났다. 지방의 한 세무서장은 집에 출처 불명의 현금 3천만원을 갖고 있다가 총리실 공직윤리팀에 적발되었다. 공직윤리팀은 지난 2월 한 지방국세청장의 사무실을 급습했으나 이 지방청장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수색을 거부하며 끝까지 버티는 바람에 결국, 물러서야 했다. 지방의 한 감사관이 세무서장들을 상대로 ‘공직윤리팀이 급습하면 영장 제시를 요구하라’라는 등 ‘부적절한 교육’을 한 사실도 있다.

이 때문에 ‘국세청 개혁’ 자체에 이의를 달기는 어렵다. 문제는 개혁의 내용과 주체이다. 국세청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전직 인사는 “국세청이 그동안 정치화한 측면이 있다. 사정 기능보다는 징세·서비스 기능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것이 국세청의 본래 기능이다. 정치적인 세무조사를 하고 대통령에게 그 내용을 직보하는 식의 행태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국세청은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지금 상태대로라면 올해 10조원 이상 세수가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수장이 없다 보니 책임질 만한 일은 하지 않고 있다. 한 해의 업무 방향을 공유하는 ‘전국세무관서장회의’도 아직 열지 못하고 있다. 인사 또한 한상률 전 청장이 임명한 사람, 한상률 전 청장-허병익 차장-이현동 서울청장이 합동으로 임명한 사람, 그 이후 임명한 사람 등이 혼재되어 있다. 조직을 안정시키면서도 개혁할 수 있는 적임자를 빨리 임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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