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무대에 ‘줄’ 서기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9.03.2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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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 뮤지컬 100년사에서 드러나는 뮤지컬의 속성과 변신 과정

공연예술이 배고프다는 것을 익히 들어온 뮤지컬 문외한은 공연장 근처 포장마차에서 소주나 훌쩍거리며 공연장의 긴 줄을 향해 독설을 쏘아붙이기 일쑤이다. 도대체 뮤지컬이 뭐기에, 불황도 잘 모르는 것처럼 인구에 회자되며 인기를 누리는 것일까. 여기는 브로드웨이도 아니고, 판소리의 고향 한국이 아닌가. 게다가 먹고살기 힘든 시기에도 뮤지컬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위화감을 느낄 일이다 싶다.

인간의 영혼을 울리는 음악과 노래, 인간의 육체를 통해 구현되는 아름다운 춤 그리고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 볼거리 많은 무대와 감동적인 드라마로 이끄는 뮤지컬에 매혹될 수밖에 없다고? 아무리 음악과 춤을 좋아한다는 문화 민족이라 해도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대중들이 문화에 지출하는 데 그렇게 아낌없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유례가 없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의 작품들이 라이선스 공연 혹은 투어 공연으로 쏟아져 들어와 한국에서도 뮤지컬은 대중에게 친숙한 장르가 되었다. 그러자 떼돈 벌겠다고 섣불리 뮤지컬 공연에 투자했다가 목돈을 날린 사업가들의 푸념을 들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뮤지컬 풍년이던 한때 ‘바보 관객’과 ‘바보 제작자’가 공연장에서 조우하는 광경은 생각만 해도 우습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을 위해 ‘뮤지컬광’이었기에 공연계에서 필력을 날렸던 이수진·조용신 씨가 <뮤지컬 이야기>를 정리했다. 두 저자가 펼쳐놓는 뮤지컬 100년 역사 이야기는 한국의 무대와 관객의 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준다.

▲ 미국 뉴욕시의 타임스퀘어를 가득 메운 뮤지컬 광고판들. ⓒ숲 제공
우선 저자는 “그곳에 가면 눈부신 조명 아래 무수한 코러스들이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아름다운 춤을 출 것이고, 멋진 주인공들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사랑의 노래를 불러줄 것이다. 때로는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거대한 무대가 눈 깜짝할 사이에 펼쳐지는가 하면 드라마에는 숨 막힐 듯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어 공연이 끝난 후 극장을 나설 때는 공연이 더 계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라고 많은 사람이 브로드웨이에 몰려드는 이유를 설명했다.

근대 초기만 해도 유럽에서 공연 예술은 왕족들의 후원 아래 ‘세바스찬’ 같은 귀족들의 호응 없이는 무대에 올릴 수 없었다. 객석도 없는 맨땅에서 공연을 훔쳐보았던 ‘천한 것들’(서민)이 부르주아들로 성장해 정식 관객들로 채워진 것은 산업혁명 덕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뮤지컬이 브로드웨이 100년 역사를 이어가는 동안 오로지 ‘팔아서 돈 되는’ 공연만 제대로 대접을 받았다.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세계

저자는 브로드웨이에서 감히 ‘예술’이 앞장서서 깃발을 흔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모든 기준은 관객이 즐거워하며 기꺼이 ‘돈’을 지불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돈 놓고 돈 먹는,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세계인 것이다. 한국에서 최근 몇 년간 뮤지컬 열풍이 몰아친 이유를 얼핏 알 수 있게 해주는 설명이다.

 “팔아서 돈 되는 무대를 만들어라!” 투자자들과 제작자들이 엄청난 공력을 쏟아부은 덕에 관객들은 내용을 잘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에도 짜증보다 ‘너무너무 황홀했다’며 상기된 표정으로 공연장을 나서는 것이다. 저자는 모든 공연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뮤지컬은 ‘환상’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실재’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제 전세계에서 뮤지컬의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자국의 독특한 음악극 전통을 기반으로 뮤지컬을 만들거나 개성 있는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내는 추세이다. 이제는 한국의 창작 뮤지컬계도 이런 사실을 대부분 인식해 공연 만들기에 임하고 있다. 이제 뮤지컬은 브로드웨이가 아니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저자는 브로드웨이의 불황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어서 어쩌면 한국이 제2의 브로드웨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저자는 “뮤지컬을 쇼 비즈니스로 일구어낸 브로드웨이를 배우지 않고는, 시대와 관객에 응전하는 뮤지컬의 역사를 배우지 않고서는 그것은 왔다가 가버리는 열풍에 그치고 말 것이다”라고 말했다.

뮤지컬 영화를 집중적으로 다룬 이 책의 마지막 장은 21세기 브로드웨이의 새로운 경향과 흐름을 두루두루 아울렀다. 새로운 흥행 코드, 달라진 극장 환경, 뮤지컬 영화의 활성화 등 업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주요 이슈들과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마음은 넓은 공연장에 들어선 기분이 든다. 이제 봄기운이 완연할 텐데, 뮤지컬 시장도 꽃망울을 터뜨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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