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가 ‘짝퉁’에 왜 치이나
  • 정준모 (미술비평가) ()
  • 승인 2009.02.17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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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기 쉬운 유사품에 만족하는 풍토가 문제 창조적 개발 부추겨 세계적 명품 내놓아야

▲ 루이뷔통 가방 진품과 위조품. ⓒ연합뉴스

몇해 전 한국 관광객이 유명한 L사의 짝퉁 가방을 들고 파리를 여행하다 가방에 문제가 생겨 본사를 찾아가 직접 A/S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아해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나라의 이른바 짝퉁 문화의 수준을 보면 그것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우리나라의 수준은 세계적인 명품 가방을 OEM으로 제작해 수출하는 정도이니 그 까다롭기로 소문난 L사의 본사도 속아 넘어갈 가방 하나쯤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수 있다. 그러면서 이내 드는 생각은 그 기술력과 제조능력을 가지고도 왜 우리 이름으로, 우리 브랜드로 된 가방은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우리는 1970년대 압축 성장 시대를 거치면서 ‘빨리 빨리’를 외치며 앞만 보고 달려왔고 그 결과, 우리가 부러워하던 나라들이 오히려 우리를 부러워하는 형편이 되었다. 이런 성과를 얻기까지 우리는 빠르게 절대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사치와 호사를 죄악시하고 절약과 검소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던 사회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이후 살림 형편이 조금 나아진 지금, 우리는 일본과 중국과 함께 세계 최대의 명품 소비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보통물건 100개를 만들어 팔아 명품 하나 사오는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다.

하나의 명품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요즘 우리는 중국의 짝퉁 브랜드를 지적하지만 아직도 ‘어디선가 본 듯한 옥경이’ 같은 상표들이 우리 주변에 여전하다. 창조적인 브랜드 개발보다는 만들기 쉬운 유사품에 만족한다. 예전에 대우자동차 심볼 마크와 해외에서 선전하며 짝퉁 브랜드까지 등장하고 있는 LG의 마크도 미국 어느 단체의 그것과 닮았다고 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노래방의 비알콜 음료로 맥주 CASS와 꼭 닮은 제품이 나오기도 했다. 등산용품을 만드는 K2의 경우도 이런 짝퉁과의 전쟁을 불사해야만 했다.        

▲ 반포대교 주변 조감도. 인공 섬의 구조와 모양이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무르 강에 있는 것과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명품 없는 ‘명품 소비국’ 오명 벗기 힘들어

이렇게 품질과 디자인 그리고 철저한 마케팅과 브랜드화 전략으로 만들어지는 명품은 단순하게 명품과 같은 수준의 제품을 제조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세계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면서 명품 대접을 받는 상품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품의 특징은 기술력이 우선되는 제품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명품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누구든지 만들 수 있지만 아무나 만들 수 없는’ 명품이 나올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제대로 이렇다 할 세계적인 명품 또는 명품 브랜드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우선 비슷하면 된다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무엇을 하나 만들고 세우는 데도 그 쓰임새만 맞으면 된다. 하지만 명품이란, 쓰임새는 물론 의미와 가치 그리고 역사 속에서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동시에 담겨야 한다. 우리는 당장의 성과와 평가에 더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외국 여행길에서 본 그럴 듯한 것을 뚝딱 세우고 채우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 이런 사례는 너무도 많다.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최근에도 이런 일이 서슴없이 벌어진다. 예를 들면, 반포대교 인근에 세워지는 인공 섬은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무르 강에 있는 것과 너무나 유사하다.

명품의 조건 중 하나는 브랜드이다. 그리고 브랜드의 가치는 디자이너의 이름과 디자인과 직접 연결된다. 그리고 명품 브랜드는 또 다른 명품을 낳는다. 이것은 삼성이나 LG가 자사의 휴대전화에 명품 브랜드를 붙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가장 힘 있고 규모가 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고 발주하는 일들에서 디자인과 브랜드 네이밍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이들도 볼멘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정부 예산이라는 한정된 자원과 규정 등이 그들을 옭아매고 있는 한 이런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국가나 자치단체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의 부족한 안목에 비해 과다하게 행사되는 권한이 한국의 명품화를 가로막는 큰 전봇대이다. 요즘 도처에서 들리는 명품 도시 건설, 명품 관광 등등의 구호성 명품 마케팅은 진정한 명품과는 거리가 멀다. 구호로, 현수막 내거는 유치한 방법으로 명품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다. 

 따라서 하나의 명품이 만들어지는 것은 모든 것이 명품화될 때 가능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사람이 있다. 세계를 누비는 일본의 건축가·디자이너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사람을 기르는 데 너무도 인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경우 세계적인 명품디자이너가 될 때까지 전력을 다해서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며 전략적으로 접근한다. 세계 최고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열정과 최고가 된 사람에 대해서 무한한 존경과 영광을 돌리는 태도가 명품 일본을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디자인과 솜씨라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명품이라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브랜드로 정착하려면 우선 소비자가, 즉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고 인정해주는 안목과 깊이 있는 심미안을 갖추어야 가능하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가 아닌 조금 비싸도 다홍치마를 가지려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고상한 품위와 지위를 과시하려는 태도와 일반 소비자들의 시기와 선망이라는 이중적 심리를 마케팅에 이용할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의 수준이다. 수준 높은 소비자들만이 명품을 만들 줄 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런 일급의 소비자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현재 대개의 명품 브랜드 소비층은 유행을 따르는 형편이다. 이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소비가 좌우됨을 의미한다.

파워 있는 명품 만들려면 수준 높은 소비자 양산해야

▲ LG 프라다폰. ⓒ시사저널 임준선

따라서 우리 시대의 명품이자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가진 명품 브랜드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미감과 취향에 따라 고가임에도 기꺼이 손에 넣어줄 고객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고급한 국가 브랜드를 만들고 유지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외국의 것을 모방하고 짝퉁으로 위안 삼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파워 있는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소비자들을 양산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시각 문화의 기본이자 안목의 근원인 다양한 시대와 경향을 대변하는 ‘원본이 있는’ 미술박물관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과학과 기술 그리고 정보화로 어떤 의미에서 원본이 사라진 ‘짝퉁의 시대’이다. 이제 인간의 따스한 숨결 대신 흔적과 허상만 남아 있는 시대에 원형·원본에 대한 갈증은 더해갈 것이다. 바로 그 갈증을 채워 원본에 대한 열망이 커질수록 명품에 대한, 브랜드에 대한 욕구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만 명품 시장이라는 블루오션에서 예외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이제라도 창의력과 독창성에 불을 지펴 구들장을 덥히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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