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차 나도 경기 본능은 그대로”
  • 이영미 (일요신문 기자) ()
  • 승인 2009.02.1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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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여자핸드볼팀 임오경 감독 인터뷰 / “편견과도 싸워온 길, 둘러 가고 싶지는 않아”

ⓒ시사저널 유장훈

“어휴, 저건 오버스텝이잖아! 왜 (심판은) 휘슬을 안 불지?” 지난 2월11일, ‘2009 SK 핸드볼 큰잔치’가 열리던 서울 잠실학생체육관. 전날(10일) 경기를 마치고 정읍시청과 한국체대의 여자부 경기를 관전하러 온 서울시청 임오경 감독(38)은 마치 자신이 경기석 벤치에 앉아 있는 것처럼 흥분과 진정을 수차례 반복했다. 이미 개막전을 포함해 두 차례의 경기에서 패배의 아픔을 당하며 호된 지도자 데뷔전과 신고식을 치른 탓인지 그녀는 “지금 당장의 목표는 첫승이다. 첫승을 해야 선수들 사기가 살아날 것 같다”라며 승리에 대한 갈증을 여러 차례 표출했다.

임오경 감독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부터 1996년 애틀랜타, 2004년 아테네올림픽까지 금메달과 은메달을 목에 걸며 대표팀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대학 졸업 후 곧장 일본 실업팀 히로시마 메이플 레즈팀 창단팀 선수로 뛰다 감독을 겸하는 등 플레잉 감독이 되어 팀을 정규리그에서 8차례나 정상에 올려놓은 실력가이다. 지난해 서울시청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14년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그녀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후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서울시청 감독 공식 데뷔전이자 개막전 경기가 하필이면 대표팀에서 스승으로 모셨던 임영철 감독과의 맞대결이었다. 임영철 감독이 이끄는 벽산건설은 국내 최강의 여자팀 아닌가?

솔직히 개막전을 벽산과 붙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 창단팀과 국내 최강팀이 개막전에서 맞붙을 수 있겠나. 그런데 개막을 앞두고 가진 지도자회의에서 핸드볼 발전과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서울시청과 벽산건설이 붙어야 한다는 것이 협회측 입장이었다. 아무래도 임영철 감독은 대한민국 최고의 핸드볼 지도자로 평가받는 분이고, 나는 그분 밑에서 운동을 했던 선수 출신이다 보니 핸드볼에 대한 관심을 끌어 모으는 데 좋은 ‘소재’라고 생각한 것 같다.

감독 데뷔전 상대치곤 너무 강팀이었지만 서울시청 선수들도 나름 선전했다.

선수들이 연습할 시간이 너무 없었다. 더욱이 핵심 멤버 2명이 대표팀에 차출되는 바람에 1주일도 제대로 호흡을 맞추지 못했다. 경기를 하면서 서로 손발이 안 맞는다는 것이 여실히 나타났다. 임감독님은 벤치에 여유있게 앉아 계시는데 나는 잠시도 앉아 있을 수가 없더라. 생방송으로 중계까지 되는 상황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임영철 감독이 경기 후에 ‘임오경 감독이 지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라고 조언을 해줬다. 선수 시절부터 이기는 데에만 익숙한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의 맹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이는데….

임감독이 잘못 알고 있는데 나는 지는 경기도 숱하게 많이 해봤다. 대표팀도 결승전에서 매번 깨지고 은메달·동메달만 목에 걸고 오지 않았나. 더 이상 얼마나 더 지는 것을 알아야 하는 건지는 몰라도, 굳이 지는 것을 배우지 않아도 패배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이길 날보다 질 날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신생팀이다 보니 만만한 팀이 한 팀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지다가 어느 순간 1승, 2승을 챙기고, 또 그러다 보면 최강전에도 진출해 있지 않겠나.

창단팀 감독으로서 애로 사항이 많을 것 같다. 가장 힘든 부분이 있다면.

처음에는 선수단을 구성하는 자체가 어려웠다. 워낙 선수들이 없다 보니 마치 구걸하는 심정으로 선수들을 스카우트했다. 그리고 기존 선수들과 새로 입단한 선수들 사이에 호흡을 맞출 시간이 부족해서 자꾸 좋지 않은 플레이가 연출된다. 가장 큰 문제는 팀을 이끌 리더가 없다는 사실이다. 리더 역할을 해줄 선수가 한 명만 있더라도 팀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런 실력을 갖춘 리더를 키우는 것이 내 몫인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가끔 경기를 관전하다 보면 내가 옷 갈아입고 들어가서 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젊은 선수들처럼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는 못해도 선수들을 리드할 수 있는 역할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일본에서처럼 플레잉 감독도 가능하다는 얘기인가?

개막전부터 뛰었다면 모르지만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들어가는 것은 모양새가 좀 그렇다. 만약 우리 팀이 최강전까지 올라간다면 한 번 고려해볼 만하다.

일본에서도 창단팀을 3년 만에 정규 리그 우승팀으로 만들었다. 지도자 생활의 처음도 그렇고 지금도 이상하게 창단팀과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서울시청이라는 핸드볼 팀을 만들면서 말로 표현 못할 정도의 어려움들이 잇따랐다. 하지만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3년 만에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고, 그 후 계속해서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지금 서울시청은 제대로 완성된 팀이 아니다. 계속 다듬고 깎고 보완해야 하는 팀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일본에서처럼 임오경의 색깔이 묻어나는 팀으로 탄생되지 않겠나.

선수 시절, ‘나중에 지도자가 되면 이런 감독은 정말 되지 말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있었다면?

경기에서 졌다고 선수를 ‘잡들이’하는 감독이 제일 싫었다. 경기 중에 선수들에게 대놓고 야단치고 소리 지르는 지도자도 싫었다. 그런데 하다 보면 나도 그런 감독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지도자가 되고 나서 제일 꼴불견인 선수 스타일을 꼽는다면?

무조건 ‘개기는’ 선수다.(웃음) 감독이 야단 좀 쳤다고 바로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입 다무는 선수도 부담스럽다. 감독이라는 자리에 있다 보면 선수들과의 세대 차이를 제대로 공감한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나는 선수 때 안 그랬는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핸드볼은 특히 몸싸움이 심한 종목이다. 선수 시절의 임오경은 몸싸움 잘하기로 유명하지 않았나?

웬만해서는 몸으로 부딪혀 넘어지거나 밀리지 않았다. 선수 때 내 별명이 ‘탱크’ ‘짱구’였다. 그리고 코트에만 들어가면 이중 인격자로 변모했다. 한마디로 싸움꾼이었는데 그렇게 뛰다가도 코트 밖으로 나오면 온순한 성격이 되었다. 내 몸 안에서 ‘경기 본능’ ‘생존 본능’이 꿈틀거렸던 모양이다.

한국 스포츠계에서 여성 지도자는 다양한 ‘벽’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똑같은 지도자라고 해도 여성은 선입견이나 편견과 싸워야 한다. 이런 점들에 대해 실감하고 있는 편인가?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웃음) 여자 감독, 술 문화, 뒷담화 등등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방송 해설도 하고 이런저런 인터뷰에 소개되고 <우생순>이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나에 대한 핸드볼 관계자들의 시각이 극과 극을 달렸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임오경이라는 감독을 이해해주는 선배나 선생님들도 많지만 뒤에서 씹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단 한 순간도 내 자신의 이익이나 영리를 위해 매스컴을 이용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여성이라는 신분으로 사회 생활하기가 힘든 나라이다. 그렇다고 그런 편견들 때문에 가고자 하는 길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 코치 겸 주니어 대표 감독을 맡고 있는 남편 박성우씨가 이번 데뷔전을 앞두고 당부한 말이 있다고 들었다.

욕심 부리지 말고, 졌다고 선수들 ‘잡들이’하지 말라고 하더라. 딸 세민이(10)한테 자랑스런 엄마, 아빠로 기억될 수 있게끔 열심히 살자고 말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사람들은 임오경을 ‘독종’으로 안다. 그러나 핸드볼 때문에 남편과 떨어져 살며 외로움도 느낄 줄 알게 되었고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깊게 절감했다. 부끄럽지 않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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