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만 꾸던 ‘꿈의 야구장’은 언제쯤?
  • 정철우 (이데일리 기자) ()
  • 승인 2009.02.10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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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주 구장, 최악의 환경에도 지자체들 건설 외면…법규가 민간 투자 막아

▲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대구 구장. 건축물 안전 진단 결과 심각한 위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합뉴스

대구 시민야구장 덕아웃 뒤 선수단 라커룸으로 가는 통로는 마치 건설 현장을 방불케 한다. 건설 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철근 등이 곳곳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대구 구장은 지난 2006년 정밀 안전진단을 한 결과 E등급을 받았다. E등급은 건축물의 안전에 심각한 위험이 있어 즉각 사용을 중지하고 보강 또는 개축을 해야 하는 상태를 말한다. 철근은 붕괴를 막기 위한 임시 방편이다.

광주 무등야구장은 1만4천석 규모의 구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홈팀인 KIA 구단은 실제로는 1만1천명 정도만 입장시키고 있다. 1만4천석은 30년 전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물샐 틈 없이 꽉 채웠을 때 나오는 숫자이다. “무등야구장에 정원대로 관중이 들어오면 여기저기서 난리가 날 것”이라는 것이 KIA 관계자의 한탄이다. 광주 구장의 건립 연도는 1965년. 1982년 프로야구가 생긴 뒤 지자체는 매년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입장료 수입을 떼어갔다.

두 야구장은 야구 인프라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도 최악의 야구장으로 악명이 높다. 선수들은 물론 팬들 역시 새로운 구장 신축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갖고 있다. 팬들의 성화에 몰린 대구광역시와 광주광역시는 잇따라 새로운 야구장 신축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철회하고 말았다. 야구인들은 “삽으로 땅을 파기 전까지는 절대 믿을 수 없다”라며 시의 행정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야구장 신축 문제가 불거지면 지자체의 답은 이제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지방 정부의 재정이 열악해 도저히 새 구장을 지을 여력이 생기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프로구단이 쓸 수 있는 야구장을 신축하는 데 돈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2001년 문을 연 문학구장은 5백50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되었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 투입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물가로는 1천억원에서 1천5백억원 수준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지자체들의 살림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대구와 광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가 더 많이 침체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 시설에는 돈 퍼부으면서…”

그러나 야구인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지자체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야구 관계자는 “지자체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의문을 품게 되는 대목이 있다. 오페라극장 같은 문화 시설을 짓는 데는 엄청난 돈을 쓰는 곳이 많다. 그러나 유독 체육 시설을 짓는 데는 인색하다. 정치인들의 속내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문화 시설 준공은 업적이 되지만 체육 시설을 지으면 특혜나 낭비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야구 관계자는 “1980~90년대만은 못하다고 해도 대구나 광주에서도 연 40만명의 관중이 야구장을 찾고 있다. 이렇게 많은 시민이 찾는 공간을 새롭고 쾌적하게 만드는 작업에 소홀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야구가 시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기쁨을 주는지 생각한다면 야구장 건립에 드는 돈은 결코 헛된 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포항, 전주 등 대구나 광주보다 규모가 작은 도시들이 최근 잇달아 야구장 신축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이 밝힌 건립 이유는 ‘시민의 편의를 위해서’이다. 포항의 경우 대구를 홈으로 쓰고 있는 삼성라이온즈의 경기를 유치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

꼭 지자체가 돈을 대야만 야구장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간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야구장을 신축할 동력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법의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야구장, 특히 돔 구장 건설에 관심을 보인 기업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관련법을 검토하던 중 모두 계획을 철회했다.

민간 기업이 돔 구장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야구’만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돔 구장을 지으며 백화점이나 웨딩홀 등 상업 시설을 함께 입점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야구장만 운영해서는 좀처럼 수익을 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5백만 관중 시대가 다시 열렸다고는 하지만 입장 수익 정도로는 투자비를 뽑는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현행법은 야구장 내 상업 시설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법규상 야구장 등 체육 시설에 들어올 수 있는 상업 시설은 매점 정도에 불과하다. 음식을 조리하기 위해 가스 설치를 하는 것도 법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법만 바뀌면 돔 구장 당장 지을 수 있어

예외는 있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해 지은 각 시도의 월드컵경기장에는 상업 시설을 유치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월드컵을 위해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상일 KBO 운영본부장은 “상업 시설만 허용되면 돔 구장도 지금 당장 지을 수 있다. 그러나 법의 규제 때문에 좀처럼 일을 진척시키기 어렵다. 법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그래서 일단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이 밝힌 다른 계획이란 국회의 스포츠진흥법 통과이다. 현재 국회에는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발전을 위한 제안 두 가지가 계류 중에 있다. 축구는 지자체가 시민구단에 직접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고, 야구는 구단이 경기장을 장기 임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현재 야구장은 프로구단이 자발적으로 개·보수를 할 수 없다. 시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20년 이상의 장기 임대가 가능해지면 네이밍 마케팅(구장 이름 공개 매각 등)이나 다양한 시설 확충으로 수익을 늘릴 방법이 생긴다. 그러나 현재는 최대 3년, 심하게는 1일 계약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대구광역시는 지난해 호기롭게 돔 구장 건설 계획을 들고 나왔다. 돔 구장은 2천억~3천억원은 들어가야 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적자 타령을 하던 약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전제가 있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유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프로리그의 시즌 일정 탓에 3월에 열려야 하는 WBC를 한국에서 유치하려면 돔 구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부상 위험 없이 야구하기에는 3월의 한국 날씨가 너무 차갑기 때문이다. 대구시가 WBC를 끌고 들어간 이유는 간단했다. 중앙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대규모 국제 체육행사를 유치하면 중앙 정부에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다 할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WBC 유치도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일 뿐이다. 말은 너무도 번지르르했지만 아무런 실속도 없는 해프닝이었다.

안산시의 경우 민자 유치를 통한 돔 구장 건설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이 역시 상업 시설을 함께 지을 수 없다는 법규 등에 막혀 여전히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안산시는 여전히 강한 의지를 갖고 있지만 민간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안산시의 돔 구장 건립’을 자신의 치적 중 하나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신상우 전 KBO 총재는 퇴임 인사에서 “결국, 돔 구장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라고 아쉬워한 바 있다.

지난해 아마추어 야구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동대문구장이 철거되었다. 역사를 보존해야 한다는 반대 목소리가 높았지만 도시 개발 논리에 밀리고 말았다. 서울시는 대신 7개의 야구장을 신축하기로 야구계와 약속했다. 동시기에 한 도시에 7개(간이 야구장 포함)의 야구장이 세워진다는 것은 그것대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이 없는 건축은 흉물을 남길 수밖에 없다. 아직 모든 구장이 지어진 것은 아니지만 출발은 개운치 않은 입맛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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