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해 꽂힌 드라마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01.20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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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 10대 시청자 끌어들이며 시청률 급상승

▲ 지난해 12월22일 열린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 참석한 연기자들, 왼쪽부터 김준·김범·구혜선·이민호·김현중 씨. ⓒ시사저널 임준선

현대판 귀족인 초상류층 재벌 계급에 외모까지 환상적인 4명의 꽃미남이 등장하는 ‘하이 판타지 로망스’ <꽃보다 남자> 열풍이 심상치 않다. <베토벤 바이러스> 이후 다시 한 번 드라마 신드롬이 재현될 태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베토벤 바이러스> 신드롬이 ‘강마에’ 김명민의 연기력과 드라마의 완성도에 초점이 모아지며 찬사 일색으로 흘러간 반면, <꽃보다 남자> 열풍은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드라마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에 대한 이슈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KBS 2TV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24부작 월화 미니시리즈 <꽃보다 남자>는 1월5일 첫 방영에서 14.3%의 시청률을 기록한 이후 3회 만에 시청률 20%를 넘어섰다.

시청률 상승은 광고로 이어져 1회 3개로 시작했던 광고 편수가 4회에는 20개를 넘어섰다. 주로 주 시청자층인 10~20대를 겨냥한 광고들이다. 주요 다운로드 사이트에서도 <꽃보다 남자>의 인기가 다운로드 순위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14일 발매된 OST 앨범의 판매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배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극을 이끌어가는 F4 역할을 맡은 신인급 연기자 이민호, 김현중, 김범, 김준은 차세대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언론과 네티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드라마가 인기를 모으다 보니 원작 만화를 확인하려는 사람도 늘어났다. 오래전에 한 번 보았던 사람들도 다시 한 번 읽으며 이전 기억을 상기하고 있다. <꽃보다 남자>의 한국판 출간을 맡고 있는 서울문화사의 관계자는 “2회에 걸쳐 재판에 들어갔다. 판형이 커지고 작가가 새롭게 표지를 그린 소장본 완전판도 발매되어 마니아 독자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꽃보다 남자>는 카미오 요코가 1992년부터 2004년까지 연재한 일본 만화가 원작이다. 일본에서만 6천만부에 가까운 판매고를 기록하며 순정만화 사상 최고의 판매부수를 올렸다.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전에는 ‘오렌지 보이’라는 제목의 해적판이 인기를 얻기도 했다. 라이센스를 취득한 서울문화사가 1997년부터 36권의 정식 단행본을 발매해 1백50만부가량 판매했다.

국내 제작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까지만 해도 <꽃보다 남자>가 우리나라 드라마 시장에서 이렇게까지 성공가도를 달릴 것이라는 것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원작이 매력적인 캐릭터와 잘 짜인 이야기 구조를 가진 인기 만화라는 강점이 있었지만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등으로 몇 차례씩 제작되었기에 사실상 국내에서 볼 사람은 다 보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언승욱, 주유민, 오건호 등이 주연한 타이완판 드라마 <유성화원>과 마츠모토 준, 오구리     등이 주연한 일본판 드라마 및 영화는 케이블TV와 스크린을 통해 국내에 이미 소개된 바 있다. 한국에서 다시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진 눈길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네티즌 사이에 타이완판, 일본판과 한국판의 캐스팅과 스토리, 완성도에 대한 비교 논쟁이 벌어지면서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오히려 높였다. 특히 캐스팅에서는 한국의 주인공들이 원작 캐릭터에 가장 가깝고 꽃미남 지수에서도 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많다. 네티즌들이 뽑은 가상 캐스팅에서 하나자와 루이 역에 가장 잘 어울릴 것으로 꼽혔던 김현중은 멋진 외모로 연기력 논란을 잠재우고 있다. 제작사인 그룹에이트의 기획PD는 “스타와 신인을 가리지 않고 원작의 캐릭터에 가장 일치하는 배우를 선택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라고 말했다.

<꽃보다 남자>의 인기 요인은 신선함에서 찾을 수 있다.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는 신데렐라 판타지는 새로울 것이 없지만 오랜만에 등장한 정통 트렌디 드라마라는 점이 사극, 시대극, 통속극 등에 밀려 드라마에서 떠난 10대들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20대 초반의 청춘 스타가 대거 등장하는 드라마라는 점도 10대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과장되고 유치해도 억지 설정 없어 ‘유쾌’

▲ 의 국내 정식 단행본 표지.

<꽃보다 남자>에는 불륜이나 출생의 비밀, 불치병 등의 억지 설정이 없다. 그동안 <조강지처 클럽>이나 <너는 내 운명> 등을 통해 억지 설정을 지겹도록 지켜본 시청자들은 과장되고 유치하지만 유쾌한 드라마의 등장을 반겼다.

전기상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순정만화의 기본적인 멜로는 있지만 코믹하고 유쾌한 요소가 더 많이 가미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원작 만화가도 이 부분을 강조했다. 그룹에이트의 기획PD는 “원작자의 요구 사항 중에는 시작부터 끝까지 누가 죽는다거나 불치병에 걸리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 들어 있었다”라고 말했다.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가진 드라마의 큰 틀에서 벗어나는 에피소드를 경계한 것이다.

원작에 충실한 각색도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 캐릭터의 이름과 배경 설정 등 기본적인 현지화와 일본 작품 특유의 왜색을 수정하는 필수적인 작업을 제외하고는 원작의 기본 골격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일본판·타이완판과의 차별적 재미를 주기 위해 첨가된 일부 에피소드와 한국 상황에 맞게 개연성을 부가하기 위한 약간의 변화만 주었다.

드라마에 대한 좋은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몇몇 장면이 미성년자인 주인공들이 할 만한 행동 범위를 벗어났다는 지적이다. 학교 폭력 묘사가 과도한 것도 지적되었다. 고교생의 나이트클럽 출입, 여고생의 호텔 투숙, 가학적 성향의 집단 따돌림 장면이 문제시되었다.

사실 원작에 비하면 드라마에서의 묘사는 많이 순화된 것이다. 원작 만화는 F4를 비롯한 귀족학교 학생들이 벌이는 왕따, 이지메, 학교 폭력 등에 대한 묘사 강도가 세다. 현실적 묘사보다는 과장된 묘사가 선호되는 만화의 장르적 특성상 폭력 묘사가 조금 강하더라도 밝은 이야기의 흐름을 해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사로 넘어오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령 만화에서 100t 무게의 해머에 맞고 해롱대는 장면이 실사로 옮겨진다고 하면 코믹에서 호러로 급변할 수 있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상류층 고등학생들의 생활 묘사가 자칫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거대한 저택에서 1억원짜리 몸치장을 하고 고급 스포츠카를 끌고 다니는 고등학생의 삶은 보통 사람의 삶과 거리감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전기상 PD는 “럭셔리한 요소도 볼거리이다. 재미있는 설정으로 밝은 드라마를 보여주겠다”라고 말했다.

<꽃보다 남자>는 완벽하기보다는 커다란 장점으로 작은 단점들을 커버하고 있는 드라마이다. <꽃보다 남자>가 유쾌하고 명랑한 드라마로서의 장점을 극대화하며 시청자 폭을 넓힐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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