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이미지 씻고 민심에 호소
  • 김영화 (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09.01.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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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저지’ 성공한 민주당, ‘2차 입법 전쟁’ 준비하며 대국민 홍보에 박차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어쩌면 연말 연초 입법 전쟁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 1월15일 ‘MB악법 저지 대전·충남 결의대회’에 참석한 정세균 민주당 대표(앞줄 맨 오른쪽). ⓒ연합뉴스

지금 민주당에서는 공식적으로 승리 대신 ‘1차 저지’라는 표현을 쓴다. 정부와 여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언론 관련법, 출자총액제한 폐지, 금산분리 완화법, 사회 개혁 법안 등 대부분 쟁점 법안을 다시 밀어붙일 것이 분명한데, 민주당이 과연 2차 저지에도 성공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82석의 민주당은 본회의장 점거 같은 실력 저지를 제외하면 1백72석의 한나라당에 맞서 싸울 방도가 마땅치 않다. 하지만 실력 저지 카드를 남발할 수 없다는 데 민주당의 고민이 있다. 한 재선 의원은 “다시 몸으로 싸우는 것은 민주당으로서도 부담이다. 날치기를 막기 위해 본회의장을 미리 점거하는 전략도 이미 상대에게 보인 패가 되어 현실적으로 사용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실력 저지는 더 이상 쓰기 어려운 카드

그나마도 소수 야당의 의사 진행 방해 카드가 전처럼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이 국회 폭력 사태를 부각시키면서 ‘폭력 정당’ 이미지가 점차 무거운 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당은 이같은 보수 진영의 공세가 결국은 2월 임시국회에서 ‘MB 악법’들을 강행처리하기 위해 야당의 손발을 묶어 놓으려는 사전 정지 작업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이 12일간의 국회 본회의장 점거 농성을 합리화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명분이 무엇이든 점거 농성은 대화와 타협, 선의의 경쟁을 골간으로 하는 의회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행동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2월 임시국회에서 다수결의 논리 앞에 맥없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소수 야당 민주당이 기댈 구석은 민심밖에 없어 보인다. 민주당 내 비주류 연합체인 민주연대가 1월14일 개최한 ‘MB 악법,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 토론회는 이런 고민을 잘 보여준다. 이 자리에서 민주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종걸 의원은 “한나라당과의 입법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적 지지 여론을 확산시켜야 한다. 언론노조, 시민·사회 단체 등과의 ‘MB 악법 저지’ 공동 전선 재구축을 통해 범국민 저항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민주연대 지도위원인 천정배 의원도 “2월 이후에도 MB 악법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인지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정치권만으로는 저지할 방법이 없으며 지난해 촛불민심에 필적하는 민심의 폭발을 만들어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터진 소속 의원들의 해외 골프 여행 파문은 뼈아픈 악재였다. 물론 접대를 받은 것이 아니라 회비를 거두어 골프 비용과 숙박비를 충당했고, 국회 회기 중이지만 휴일을 이용한 여행이었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심 하나 바라보고 정치하는 야당이, 큰 싸움을 앞두고 민심의 역린을 건드린 것은 문제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당사자들도 이견이 없다. 한 핵심 당직자는 “굳이 비유하자면 12일 농성 투쟁의 절반 정도는 까먹은 셈이다”라고 아쉬워했다.

그래서 지금 민주당이 무엇보다 공을 들이는 것이 바로 대국민 여론전이다. 당 지도부는 1월16일 대전·충남을 시작으로 전국 시도에서 ‘MB 악법 규탄 및 철회 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지방에서부터 밑바닥 여론을 다지겠다는 복안이다.

가급적 ‘자숙 모드’를 유지하자던 민주당이 최근 국회 폭력사태에 대해 공세적인 자세로 돌아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여당의 공세를 방치해 ‘폭력 정당’의 오명을 뒤집어쓸 경우 민심 얻기가 요원해진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회유린·야당탄압 저지 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국회 폭력 사태의 전말을 밝히기 위한 청문회 개최를 거듭 요구하는 역공을 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해 12월18일 한나라당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단독 상정 당시, 외통위 회의장에 갇혀 있었던 민주당 최규식 의원도 최근 한나라당 소속 박진 외통위원장과 당시 회의장에 있었던 한나라당 외통위원 10명을 형법상 감금죄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국회 폭력 사태가 부각되면서 정작 한나라당이 원인 제공자였다는 사실은 가려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이다.

민주당은 1차 입법 전쟁에서 정부·여당의 일방적 밀어붙이기에 대한 비판이 먹혀들었다면, 2차 입법 전쟁에서는 개별 법안에 대한 대국민 여론전이 승부를 가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MB 악법’ 네이밍 전략이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평가에 따라 주요 법안의 문제점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소책자와 동영상물을 배포할 계획이다.

‘의장 직권상정’ 폐지 등 제도 보완에도 골몰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하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민주당은 현재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아예 폐지하거나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와 함께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 행위인 필리버스터 제도의 도입도 주장하고 있다. 소수 야당이 숨 쉴 공간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언제든 ‘다수당의 밀어붙이기→소수당의 물리적 저항’ 패턴이 재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차원이다. 물론 한나라당이나 보수 언론이 야당의 폭력 사태만 부각시키는 데 대한 맞대응의 성격도 있다.

2차 입법 전쟁은 1차 때처럼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식의 싸움이 아니라 저강도 분쟁이 상임위 곳곳에서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렇게 되면 여야 간에 어느 정도 주고받기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일단 방송법, 금산분리 완화법, 한→미 FTA 비준안 조기 처리 등은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천명한 상태이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이고, 양보할 것은 무엇인지의 기준은 매우 유동적이다. 아마도 그 기준점은 민주당의 ‘MB 악법’ 논리가 얼마나 여론을 파고드는지에 따라 어느 한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2차 입법 전쟁이 본회의장 문을 걸어잠근 채 인간 사슬로 저항한 1차 입법 전쟁보다 더 힘든 싸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는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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