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물선을 사랑한 3세대 거포
  • 정철우 (이데일리 기자) ()
  • 승인 2009.01.06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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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2008 시즌 홈런왕 타이틀 따내며 세대 교체 선언…안정감 있는 타격도 장점

▲ 지난 시즌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김태균이 중간 담장을 넘기는 1점 홈런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헤라클레스’ ‘달걀 장사’ 등의 애칭으로 불리던 심정수(34·전 삼성)가 얼마 전 은퇴를 선언했다. 심정수의 퇴장은 단순히 ‘야구를 잘했던’ 스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포 2세대와의 이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심정수는 이승엽과 함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을 풍미한 거포였다. 이만수, 김봉연, 장종훈 등 1980~90년 세대를 뛰어넘어 50 홈런 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이승엽은 여전히 쌩쌩한 현역이지만 그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 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따라서 심정수의 은퇴는 토종 거포 2세대의 멸종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선수가 바로 김태균(29·한화)이다. 이대호와 함께 한국 프로야구의 거포 3세대를 이끌 주역이기 때문이다.

김태균은 2008 시즌 생애 첫 홈런왕 타이틀을 따내며 본격적인 거포 세대 교체를 선언했다. 큼직한 덩치와 힘 있는 스윙으로 김태균은 일찌감치 거포의 이미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홈런왕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승엽이나 심정수의 벽에 막혔는가 하면 동갑내기 라이벌 이대호나 힘 좋은 용병들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김태균 입장에서는 입단 8년 만에 2인자 설움을 털어낸 셈이다.

단순히 한 번 홈런왕을 차지한 것만으로 그를 ‘최고’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목표를 눈앞에 두고 나면, 또 그 영광의 꿈을 안고 나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점에서 김태균에게서 오늘보다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김태균은 기복 없는 꾸준한 성장 곡선을 그린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김태균은 8년 통산 타율이 3할8리나 된다. 마구잡이로 크게 치는 타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2년차 징크스를 겪었던 2002년(타율 .254)을 제외하면 늘 2할9푼 이상의 안정된 타율을 기록해왔다.

홈런이 안타의 연장선상에서 뿜어져나오는 것임을 감안할 때 김태균의 안정감 있는 타격 성적은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2003년 31개를 때려낸 이후 주춤했던 홈런 수도 이제 다시 30개를 넘어서며 도약의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홈런은 관중몰이와 동의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김태균의 성장은 한국 프로야구 부흥의 또 다른 흥행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입단 첫해에 20개 홈런 때려내

ⓒ연합뉴스
어찌 보면 김태균은 기대만큼 빠르게 큰 선수는 아니다. 지난 2001년 한화에 입단한 김태균은 그해 20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10대의 나이(고졸 1년 혹은 2년차)에 두자릿수 홈런을 때려낸 선수는 그를 포함해 김재현·최정(이상 SK) 등 3명뿐이고, 20개 넘게 친 선수는 그와 김재현뿐이다. 또한, 이승엽에 이어 입단 3년차 만에 30개의 홈런을 돌파한 두 번째 선수라는 의미 있는 기록도 남겼다.

등장이 화려했던 만큼 그에 거는 기대는 더욱 컸다. 그러나 김태균은 이후 잠시 성장이 멈추었다. 타율은 높게 형성되었지만 홈런은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 20개 후반을 맴돌던 홈런 수는 2006년 13개로 급격히 떨어졌다. 약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몸쪽 공 공략에 허점을 드러낸 탓이었다. 치명적이지는 않았지만 최고가 되는 길에는 큰 장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김태균은 이내 스스로 해법을 찾아냈다. 타석에서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대신 활시위를 당기 듯 상체를 최대한 뒤로 끌어당기며 힘을 장전했다. 또한, 오른 팔꿈치를 최대한 몸에 붙인 뒤 나무를 패듯 V자를 그리는 스윙으로 몸쪽 공을 잡아내기 시작했다. 김인식 한화 감독은 “타자는 세 구멍(몸쪽·가운데·바깥쪽 코스) 중 두 구멍만 잘 쳐도 3할 타자는 될 수 있다. 김태균은 이제 세 구멍을 모두 칠 수 있는 선수이다”라는 최고의 평가를 하기도 했다. 그 결과가 2008 시즌의 홈런왕이다. 몸쪽 공 공략에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타율은 물론 홈런까지 다시 늘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김태균은 2008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1루수 부문 수상자가 된 뒤 이런 소감을 밝혔다. “내년에는 50개의 홈런을 쳐내서 다시 이 자리에 서고 싶다.” 이제 본격적인 홈런 사냥에 나서겠다는 의미이다. 이승엽·심정수 등 선배가 열었던 50 홈런 고지를 다시 정복해 새로운 홈런 르네상스 시대를 열겠다는 각오인 것이다.

넘어야 할 산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4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내는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그 역시 또 한 번 변신에 나서야 한다. 김태균은 파워포지션(스윙이 시작되는 타점)이 높지 않은 스타일이다. 쉽게 말해 힘껏 치려고 방망이를 높이 치켜드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대다수 거포들은 뒷동작이 크다. 공을 맞히는 시간이 조금 느려질 수는 있어도 많은 힘을 싣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김태균은 홈런보다는 안타에 치중하는 스윙을 했다. 물론 힘을 더 싣기 위해 노력하기는 했지만 더 많은 홈런을 뽑아내기에는 조금 부족함이 있었다.

“팀을 위한 배팅은 재고해야”

한 구단의 전력분석팀 분석원은 “한 시즌 50개의 홈런은 그냥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홈런에 대한 분명한 철학과 욕심이 있을 때 가능하다. 김태균은 지금까지 팀을 위한 배팅(타격 에버리지가 높은 타격)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더 많은 홈런을 치기 위해서는 과감히 버릴 것은 버리고 택할 것은 택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타자가 더 많은 홈런을 위해 변신을 시도한다는 것은 결코 녹록한 결심이 아니다. 혹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홈런을 노리려다 타격 밸런스가 흐트러지게 되면 팀에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김태균처럼 팀의 중심 타자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모험은 걸어볼 만하다.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열매가 너무도 달콤하기 때문이다. 이승엽은 “우리나라 야구는 홈런을 많이 의식하는 타자에게 인색하다. 실패했을 때의 질타가 너무 강하다. 그러나 홈런은 단순한 개인 기록이 아니다. 홈런이 나온 뒤 덕아웃 분위기에는 다른 적시타와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 점수 차가 크게 벌어져도 거포가 많은 팀은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과연 김태균의 선택은 무엇일까. 홈런 맛을 본 잠재된 거포의 본능이 되살아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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