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날은 저물어 팍팍한 마음 달래줄 '엄마'가 필요해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8.12.15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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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신경숙, '두 여자 전성시대' 예고


문학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리더로는 소설가와 시인이 골고루 꼽혔다. 팍팍해진 현실 때문인지 서사적인 이야기보다 감성적인 글쓰기를 하는 문인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소설가 공지영·신경숙 씨가 공동 1위를 차지해 ‘두 여자’의 전성시대를 예고했고, 시인 안도현·문태준 씨가 그 뒤를 이어 ‘감성 회복’을 바라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언제부터인가 국내 소설계에 재기발랄한 신인들이 가세해 선배들과 경합을 벌이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최근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가수 타블로가 펴낸 소설집 <당신의 조각들>이 서점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한 달여 베스트셀러 순위를 지킨 것은 문단의 얼굴을 붉히게 만든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국내 소설가들은 지금 외국 작가들에게 영토를 많이 내주고 있다. 최근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눈먼 자들의 도시>의 스페인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 <사랑하기 때문에> 등으로 탄탄한 마니아 층을 형성한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 올해 펴낸 산문집 <흐르는 강물처럼>의 인기가 언제 시들지 모를 정도인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 등 유럽·미국 대륙과 일본 등에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한 서점 통계에 따르면 한국 소설 판매량이 외국 소설 판매량의 4분의 1 정도인 형편이다.

독자의 사랑을 받는 것은 ‘이름값’ 하는 몇몇 중견 작가들뿐이다. 김훈·이외수·황석영 등 ‘나이 드신’ 작가들이 쟁쟁한 외국 작가들의 책들과 경쟁하며 체면을 지켜주었다. ‘차세대 리더’로 꼽힌 공지영씨가 지난 봄에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펴내며 지난해 말 낸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의 여세를 이어갔다. 또, 신경숙씨는 지난해 <리진>으로 6년의 ‘침묵’을 깨고 돌아와 최근 <엄마를 부탁해>를 펴내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르며 ‘재기’에 성공했다.

소설의 묘미는 무엇보다 재미이다. 읽는 재미가 있어야 감동도 주고 메시지도 분명히 던져줄 수 있다. 감동과 메시지를 찾아보겠다고 재미없는 이야기에 인내하며 견디는 독자는 드물 것이다. 공지영·신경숙 씨가 차세대 리더 1위에 오른 배경에 이 점도 분명히 작용했으리라 본다. 작가들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작품이다. 작품으로 승부를 걸었기에 독자들의 사랑이 지속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불러들여 울고 웃고 또 함께 분노하고 고민하는 한 ‘두 여자’와 독자들과의 끈끈한 유대는 끊어지지 않을 듯하다.

시인 안도현·문태준도 주목…‘감성 회복’ 기대

안도현 시인은 올해 <간절하게 참 철없이>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등을 엮어내는 등 꾸준한 창작 활동을 해내고 있다. <가재미>로 잘 알려진 문태준 시인은 <그늘의 발달> 등을 펴내 시들지 않는 창작욕을 과시했다. 안도현 시인은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문태준 시인은 불교방송국 제작 PD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연수씨는 올해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과 산문집 <여행할 권리>를 잇달아 발표해 여전히 저력을 발휘하고 있고, 지난해 말 <퀴즈 쇼>를 출간한 김영하씨는 지난여름 ‘여행자’ 시리즈 2편 <김영하 여행자 도쿄>를 펴냈다.

시인 송찬호씨는 ‘늘 빠르고 폭력적이고 불운한 것들로 가득 찬 듯한 세상 한 쪽에 도사리고 있는 아름다움의 힘과 실체’를 찾아 들려준 공으로 올해 미당문학상을 수상해 눈길을 끌었다.

성석제씨는 지난 6월 산문집 <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를 펴낸 데 이어 최근에는 소설집 <지금 행복해>를 펴내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올해 초 <그녀의 눈물 사용법>을 펴낸 소설가 천운영씨와 최근 <앱솔루트 바디>를 펴낸 소설가 박민규씨도 국내 작가 중 차세대 리더 10위 안에 꼽혔다.

한국 문학의 흐름에서 ‘여성 작가’가 뚜렷하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로 기억된다. 이념과 사상이 소설의 화두로 자리 잡았던 1980년대에는 남성 작가들이 쓴 대하 역사 소설이나 현장 소설들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썰물 빠지듯 그런 문학의 조류가 지나간 1990년대에는 여성 작가들이 강점을 가질 수 있는 가족과 개인에 얽힌 소소한 읽을거리가 봇물 터지듯 터져나왔다. 특히 1980년대 운동권이나 노동 현장을 지나온 여성 작가들은 ‘여성 해방’이라는 화두를 세밀하게 또는 예리하게 다듬어냈다. ‘운동’에서 축적한 논리와 시대의 변화에서 읽은 가능성으로 무장한 여성 작가들은 뭇 여성 독자들의 가슴을 헤집고 들어가 한 판 굿을 벌이듯 당기고 밀고 부수고 풀어 헤치며 부둥켜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가부장 사회에서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결점이나 과거지사 등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흉이 되지 않았다. 차분하게 ‘커밍아웃’하고 소곤거리듯 새로운 질서를 말하는 그 이야기들은 가부장 사회가 억압해온 온갖 사슬들을 댕강댕강 끊는 예리한 ‘칼의 노래’였다.

그녀들의 문학은 그렇게 여성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의 희망을 제시하는 구원의 메시지였다.

여성 작가들, 1990년대 문단에 활기 띄워

1963년,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다른 환경에서 자라 따로이 20여 년의 집필 활동을 해온 두 작가는, 중견 작가들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기에 힘겨워하는 시절을 보기에 따라서는 쉽고 편안하게 보냈다. 자기 표현과 사회와의 소통을 하는 데서 조직에 얽매이거나 집단적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문학이라는 창작 방식이 여성들에게 유리한 시절이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공지영씨는 1990년대 문단에 페미니즘을 확산시키고, 페미니즘 확산의 덕을 가장 많이 본 작가로 인식되고 있다. 작가 인생 20년을 훌쩍 넘으면서 그녀는 그런 인식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듯하다. 비판과 칭송이 엇갈리는 논쟁 속을 그녀는 ‘무소의 뿔처럼’ 정면으로 돌파했고, 다양한 소재와 주제로 쉼 없이 화제를 이끌어냈다.

공지영씨는 1988년, 1년 전에 있었던 구로구청 농성 사건을 소재로 한 단편 <동트는 새벽>을 문예지 <창작과 비평>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발을 내디뎠다. 그 뒤 386 운동권 출신으로서 후일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통했다. 1997년에 장편 <착한 여자>를 내놓으면서 페미니즘 작가로 명성을 굳혔다. 2005년에는 사형수와 여교수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장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큰 인기를 모아 지지부진했던 한국 소설에 활기를 띄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 자전적인 소설 <즐거운 나의 집>과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펴내 자신의 자리를 확인한 그녀는 최근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소설 <도가니>를 연재하면서 또 다른 ‘도전’에 연말연시를 바치고 있다.

신경숙씨는 한 일간지 조사에서 국내 문인 중 ‘감수성이 가장 뛰어난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인된 문장가인 셈이다. 그녀는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겨울우화>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 <풍금이 있던 자리>가 평단과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스타 작가로 도약했다. 작품성과 대중성의 경계를 잘 타왔다는 평, ‘자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더 정치적이지도 더 사회적이지도 않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서술해내는 것이 장점’이라는 평을 받았다. <외딴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딸기밭>을 펴냈고, 이후 6년 만인 지난해 <리진>으로 독자들을 다시 끌어모은 뒤 최근 펴낸 <엄마를 부탁해>로 인기몰이를 하며 언론의 관심까지 독차지하고 있다.

 


▲ 공지영 ㅣ 소설가. 1963년 서울 출생. 1988년 에 으로 데뷔. 21세기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 수상. ⓒ그림 최익견

이름 앞에 ‘최고, 베스트’가 붙기도 한다. ‘공지영 신드롬’이라는 말도 있었다. 부담되지는 않나?

부담된다. 문화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 ‘대중들의 변덕’에 시달린다. 독자의 사랑을 못 받으면 당장 수입이 줄어드는데 프로로서 그 점도 마음에 걸려 한다. 하지만 최고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리는 사람이 나오기를 바란다.

최근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새 소설 <도가니>를 연재하고 있다. 악플로 여겨지는 댓글이 눈에 띄던데, 악플에 대항할 내공이 있는가.

그 점을 주위 사람들이 걱정해주셨다. 악플은 누구나 싫은 것이다. 그전에도 당했는데 그 고통을 삶으로 견뎠다.

<도가니>는 ‘청각장애인 학교인 광주 인화학교 성폭행 사건 판결을 수화로 전해들은 청각장애 학생들의 이상한 신음소리가 법정을 울렸다’는 기사의 마지막 줄에 충격을 받고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했다. <도가니>는 어떤 작품인가?

사건이 발각되고 조사가 이루어지는데 사건에 연루된 상류층 인사들이 담합해서 사건을 덮으려 하자 그에 맞서 진실을 밝혀내려고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는 딸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엄마와 딸이 소통하기도 쉽지 않다. 그 책은 어린 독자들에게도 많이 읽힌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터넷 연재에서도 어린 독자들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고 쓰는가?

작가에게는 책을 내는 자체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댓글을 보면서 놀랐다. 읽어주시는 분들 중에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숨어 있던 분’들도 많다는 것을 느끼면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놀랍고도 감사했다.

한때 페미니스트로 불리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수식어가 떨어져나갔다.

10년 전 이야기이다. 자유주의자니 페미니스트니 다 얽매는 것 같다. 나는 어디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다고 숨어 지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거리낌 없이 살고 싶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좌충우돌’이다.  

취업 문제 등으로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힘들다고 한다.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어려운 젊은이들을 보면 가슴이 무너질 정도로 아프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한다. 취직이 안 되거나 하는 그런 시대는 언제나 있었다. 요즘 20~30대를 보면 무의미한 인생을 사는 것 같다. 수능 다음에 토익 점수, 사회에 나가서는 연봉을 따지는…. 그것은 감옥 같은 것 아닌가. 그들에게 결여된 것은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미’인 것 같다. ‘의미’를 못 찾으면 인생은 부질없고 처참하다.


▲ 신경숙 ㅣ 소설가.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1985년 에 소설 로 데뷔.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수상. ⓒ그림 최익견
발표한 작품마다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눈물을 훔치게’ 한 결과로 1위에 선정된 것 같다. 소감은?

갑자기 들은 소식이라…. 누군가가 지켜봐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를 부탁해>가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일부에서 1997년 김정현 작가의 <아버지>와 비교해 2008년 출판계 키워드의 하나로 어머니를 말한다.

그저 쓰고 싶은 작품을 썼던 것이지 사회 분위기에 맞춘 것은 아니다. 어떤 사회에서든 어머니라는 상징이 따뜻하고 건강하게 상처 없이 존재하기를 바랐는데,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라는 상징을 잃어버렸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첫 문장을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로 시작해서 개개인의 어머니 찾기를 시도해본 것이다.    

오래전부터 어머니가 화두였다고 말했다. 책이 나온 뒷얘기가 있다면.

작가가 되기 전부터 작가가 되면 어머니 얘기를 써보리라 생각했었다. 글을 쓰게 된다면 어머니 마음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이 되기를 희망했다. 너무 늦게 나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1980~90년대를 지나오면서 문학 속에서 억압의 상징으로서 ‘아버지 죽이기’ 작업이 많이 진행되었다. 그 덕에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문학 속에서는 상당히 사라지거나 희화화의 대상이 된 것 같다. 그러면 어머니는? 힘 센 아버지 옆에 존재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오늘날의 우리를 있게 한 어머니는 방치되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상생활과 닮았다. 하지만 어머니 이야기를 쓰기가 쉽지 않았다. 어머니를 ‘엄마’로 바꿔 부르자 달라졌다. 

<엄마를 부탁해>에서는 각각 화자의 시점이 다르다. 그런데 ‘나’를 지칭하는 것은 엄마뿐이고 모두 ‘너, 그, 당신’으로 지칭된다.

문학 속에서도 엄마를 주변에만 두었지 그 자리를 중앙에 내줘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늦었지만 엄마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것이 작가로서 엄마들에게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배려였다. 더 나아가 엄마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지점까지 가보고 싶었다.       
 
어머니를 여읜 사람들은 ‘살아계실 때 잘해드려라’라고 말한다. 지난해 겨울 집필하는 동안 보름인가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고 들었다. 

개인적인 상황으로 엄마가 서울에 와 계셨다. 사춘기 때 엄마와 떨어져 살기 시작한 이후로 30년 만에 처음 그리 여러 날을 보냈다. 새벽에 엄마가 자고 있는 방으로 건너가 그 옆에 나란히 누워서 옛이야기들을 많이 나눴다. 엄마 마음속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처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무슨 얘기인가를 하다가 딸인 내 가슴에 안겨 우는 엄마를 보면서 오늘날의 우리가 존재하도록 기반이 되어준 분을 그리 두었다는 아픔이 밀려왔다. 엄마 얘기에 귀 기울일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 이 작품을 쓰는 동안 가장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러면 이 책은 자전적인 내용인가?

엄마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엄마를 피해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의 엄마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엄마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엄마를 지닌 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 엄마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20여 년 글을 써오면서 본인의 문장과 서술 방식의 변화에 대해 말한다면?

나는 글 쓰는 일 밖에 모르는 사람이고 글을 쓰는 일로 세상과 소통을 해왔다. 내게 절실한 것은 읽는 이에게도 절실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써왔을 뿐이다.

‘신경숙 마니아가 몇십만 명’이라는 식의 말도 나돈다. ‘신경숙 장르’라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몇십만 명은 과장된 말이고 처음부터 쭉 따라 읽어온 독자들은 있다. 내 소설은 읽기가 쉬운 소설이 아니다. 스토리텔링에 의존하는 서사를 향해서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식의 서술 방식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며 상징이며 보편성을 떠난 독자적인 시공간들이 소설 속에 무수하게 들어와 있다. 그런데도 놓치지 않고 따라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내 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쓰든 인생이란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성찰이다. 나는 문학 작품을 읽으며 사회적 단절을 지나왔고 내면의 변화를 겪어왔다. 내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누가 나를 설득하려고 하면 더 튕겨져 나가는 성격이어서 쓰는 나도 읽는 독자를 설득할 생각은 없다. 소설의 흐름에 따라 뒷문을 열어둠으로써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 거기까지가 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작품의 마침표는 읽는 사람이 찍는다고 본다. 내 독자들과 함께 보기 좋게 나이가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선배 작가들 중에 엄마 같은 존재로 생각되는 분을 꼽는다면.

박경리, 박완서, 오정희…. 힘든 시대를 겪어온 분들이기 때문에 강인하고 아름답다. 잘 늙고 싶다는 바람이 생길 때 그들을 생각한다. 내게는 문학의 어머니 같은 분들이다.   

어려울 때 어머니를 떠올리면 눈물만 그렁그렁해진다. 방황하는 젊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30대 이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 힘들지만 먼저 이 일을 하면서 살면 행복하겠다 싶은 일을 정하고, 정해졌다면 그 일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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