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현정은 현대건설에 운명 건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8.12.0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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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다각화 포트폴리오의 핵심으로 설정 자금 부족 등이 인수전 ‘걸림돌’

▲ 고 정주영 회장의 4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정몽준 의원(가운데)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오른쪽) 등 현대그룹 가족들이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그룹은 올해를 재도약의 해로 삼고 있다. 그룹도 본격적인 현정은 회장의 색깔로 변신하고 있다. 이를 위해 친정 체제 구축, 신사옥 마련, 현대건설 인수 등을 차근차근 추진하고 있다. 우선 현대그룹의 경영진은 현정은 회장의 친정 체제로 완전 재편되었다.

현재 현대그룹의 계열사는 모두 8개 사이다. 이 중 그룹 내 최장수 CEO이자 고 정몽헌 회장의 친구였던 김병훈 현대택배 사장이 지난 10월28일 사표를 냈다. 이로써 현대그룹 사장단은 모두 현정은 회장이 임명한 사람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현대택배 사장은 당분간 현회장이 겸직하고 있다.

그런데 김 전 사장의 사임을 두고 그룹 안팎에서 온갖 억측이 난무했다. 지난 10월 말과 11월 초에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김 전 사장과 관련된 기사가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홍보실 이준기 차장은 “일부 언론 기사에는 현대증권과 현대상선이 2천5백억원을 지원한다고 되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언론사에 정정을 요구했는데, 스스로 기사를 내린 것이다. 현대아산 지급 보증 문제도 콘도가 제대로 분양되면 금방 해소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라고 해명했다.

현대그룹의 최우선 사업은 현대건설 인수이다. 현대건설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맨손으로 피땀 흘려 일군 기업이다. 현대아산이 대북 사업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면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의 뼈대나 다름없다.

최근에는 숙원 사업이던 사옥 마련에 성공

현대건설도 현대그룹만큼이나 부침이 심했다. 현대건설은 고 정몽헌 회장이 물려받았으나 지난 2001년 경영난으로 채권단에 넘어갔다. 당시 현대건설은 2조9천억원의 적자를 냈고, 부채도 4조4천억원이나 되었다. 2006년에 가까스로 정상화된 후 지금은 옛 현대건설의 명성을 대부분 회복했다. 말 그대로 알짜배기 기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현대건설은 올해나 내년쯤에 매각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가는 최대 1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현대그룹은 사업 다각화와 경영권 안정을 위해 현대건설을 반드시 인수한다는 계획이다. 현대건설 인수를 통해 건설과 제조가 주축이 된 인프라 사업 부문, 해운과 택배를 중심으로 한 통합물류 사업 부문, 증권이 중심이 된 금융서비스 사업 부문 등 3대 사업 축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상하고 있다. 이것의 중심에는 현대건설이 있다. 하지만 현대건설 인수에는 걸림돌이 많다. 자금도 부족하다. 최대 라이벌은 정몽준 의원의 현대중공업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06년 현대상선 주식을 대량 매입하면서 현대그룹 경영권을 노렸으나 실패했다. 현대중공업은 공식적으로는 현대건설 인수에 대해 언급을 피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건설이 매물로 나올 경우 인수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인 관계도 현대그룹에 우호적이지 않다. 현대건설의 채권단은 산업은행과 우리은행이다. 아무래도 정부의 입김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정몽준 의원은 친이명박계이지만 현정은 회장의 외삼촌인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은 친박근혜계이다.

만약 현대건설 인수에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이 맞붙는다면 현대그룹이 결코 유리한 입장이 아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현대그룹의 경영권에 상당한 위협이 된다. 현재 현대상선 지분 구조는 현정은 회장 등 우호 지분이 46.3%이다. 현대중공업 등 범 현대가는 33.48%를 가지고 있다. 현대건설도 8.3%의 지분이 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을 인수하게 되면 41.78%의 우호 지분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이 또다시 치열한 경영권 다툼을 벌일 수도 있다.

현대그룹은 최근 그룹의 숙원 사업 중의 하나인 사옥 마련에 성공했다. 지난 11월6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삼성카드 본사 사옥(2개 동)을 1천9백80억원에 매입했다. 내년 5월쯤에는 현대상선 등 전 계열사를 차례차례 입주시킬 예정이다. 현대그룹은 지난 2001년 현대 계동 사옥을 현대자동차에 매각한 후 건물을 임대해서 사용해왔다. 현대가의 맏형 겪인 현대·기아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은 현대그룹 경영권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이다. 동생인 정몽준 의원과 제수인 현정은 회장 중 어느 편도 들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정몽구 회장도 아버지가 일군 현대그룹에 대해 애착이 남다르다. 이런 사실을 엿볼 수 있는 것이 계동 사옥의 ‘現代’ 표지석이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002년 현대건설로부터 사옥을 매입하면서 계동 현대 사옥 앞에 있던 ‘現代’ 표지석을 치웠다가 지난 1월 말 원상 복구했다. 이 표지석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 시절부터 현대그룹의 상징으로 남아 있었다.

최근 재계의 최대 관심사는 현정은 회장의 후계 구도이다. 현회장은 고 정몽헌 회장과의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외아들인 정영선씨(23)는 공익근무를 마치고 미국 유학 준비중에 있으며, 장녀 지이씨(31)는 현대유엔아이 전무이다. 차녀인 영이씨(24)는 펜실베이아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

현재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자녀는 정지이씨가 유일하다. 정지이씨는 지난 2004년 현대상선에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2006년 전무까지 초고속 승진을 했다. 정전무는 어머니인 현정은 회장을 그림자처럼 수행하고 있으며, 지난 2005년에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최근에는 현회장의 러시아 방문길에 동행하기도 했다. 정전무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현대그룹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 분명하다. 정영선씨는 경영에는 직접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현대그룹의 투자회사인 현대투자네트워크의 2대 주주이다. 영선씨는 미국 유학을 마친 후에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인 사고와 부드러운 카리스마, 강한 추진력으로 헤쳐나갈 것”

▲ 현회장의 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 ⓒ현대그룹 제공
현대그룹은 ‘현정은의 현대’로 바뀌고 있다. 현정은 회장은 숱한 역경을 겪으면서 경영자로서 탄탄한 입지를 굳혀왔다. 지난 5년간은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그룹 총수가 되는 경영 수업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현회장을 ‘고 정몽헌 회장의 대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그룹의 능력있는 경영자로 인정하고 있다.

현회장은 올해를 기점으로 새로운 현대를 만드는 데 진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취임 5주년을 맞아 그룹 사보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벌써 이렇게 빨리 시간이 흘렀나 싶을 정도로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지금 이 시점이 현대그룹이 나갈 여정의 첫 번째 고지라고 생각한다. 다시 새로운 변화와 도약을 다짐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 관광이 중단되면서 현정은 회장의 계획은 약간의 차질을 빚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그룹의 ‘위기설’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측은 “긍정적인 사고와 부드러운 카리스마 그리고 강한 추진력으로 헤쳐나갈 것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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