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추부길-노건평 핫라인 있다
  • 소종섭, 김회권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11.1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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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전부터 가동..BBK,박연차 회장 사건 관련 막후 대화도
▲ 노건평씨. ⓒ시사저널 임준선

이명박 대통령측과 전임 노무현 대통령측 사이에 핫라인이 가동 중인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밝혀졌다. 이대통령측에서는 ‘대운하 전도사’로 불리는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측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가 창구이다. 대선 전부터 작동되기 시작한 이 라인은 지금도 막후에서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겉으로 드러난 상황으로만 보면 전·현 정권이 핫라인을 가동하는 것은 의외라는 느낌이 든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전 정권 죽이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검찰·경찰·국세청 등 권력 기관들이 총동원되어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기업들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서부지검은 ‘프라임게이트’라고 불리는, 노무현 정권 당시 동아건설을 인수하는 등 급성장한 프라임그룹을 수사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에서 국세청장을 지낸 이주성씨가 이 수사에 걸려 구속되었다. 서울중앙지검은 참여정부 실세와 연결되어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남중수 전 KT 사장을 구속했다. 이밖에 강원랜드와 애경백화점, 대한석탄공사, 한국관광공사 등 전 정권 실세들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던 기업들은 예외 없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국세청도 거들었다. 노 전 대통령의 허리를 수술했던 우리들병원과 노 전 대통령의 유력 후원자 중 한 명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운영하는 회사들을 상대로 칼을 들이댔다.

추부길 전 비서관이 먼저 노건평씨에게 접근한 듯

이뿐인가.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대로 ‘국가기록물 유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 9월17일 이호철 전 민정수석과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을 피고발인 자격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조만간 봉하마을 사저를 방문해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비단 이 사건 만이 아니다. 여권은 틈만 나면 노 전 대통령을 공격한다.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은 지난 11월12일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에 ‘전직 대통령 함구 특별법’이 필요한 것 같다”라는 성명을 냈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비준하기에 앞서 재협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힌 노 전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드러난 핫라인의 존재는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대통령의 측근인 추부길 전 비서관이 어떻게 노건평씨와 만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 11월5일 기자와 만난 추 전 비서관은 건평씨와 접촉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했지만 구체적인 부분과 관련해서는 “나중에 밝힐 일이다. 말할 수 없다”라며 말을 아꼈다. 다만 그는 “대선 전부터 노건평씨를 만났다. 나는 내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면 누구든 찾아가서 만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추 전 비서관이 건평씨에게 먼저 만나자고 제안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는 또 “전·현 대통령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좋다.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일은 이제 없어야 한다”라고 말해 무언가 의미심장한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론을 낳았다.

하지만 그가 어떤 명목으로 건평씨에게 만남을 제의했는지, 건평씨가 왜 만남에 응했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에 대해 여권의 한 핵심 소식통은 “대선 때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추 전 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측과 관련 있는 유력한 정보를 입수했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것을 바탕으로 만남을 제의했고 건평씨가 이에 응했다는 것이다. 특별한 인연도 없는 건평씨가 추 전 비서관에게 만나자고 제안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소식통의 말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추 전 비서관은 대선 당시 한반도대운하특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2007년 2월, 이대통령이 “대운하 홍보를 책임져달라”라고 하면서부터 대운하에 관심을 갖고 독일·네덜란드 등을 방문하고 연구 작업을 해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1992년 제14대 총선 때 서울 종로에 출마한 이명박 대통령의 홍보 책임자가 되면서 이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그는 인수위 시절에는 당선인 비서실 정책기획팀장이라는 중책을 맡았고, 이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있다가 지난 6월 청와대가 개편되는 과정에서 물러났다.

핫라인, 이명박 대통령도 알고 있었을 듯

▲ ⓒ연합뉴스
추 전 비서관은 15, 16, 17대 총선 때 이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의 선거 캠프에서 전략기획팀장으로 일했기 때문에 정치권에는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정가에서는 추 전 비서관이 단독으로 행동하지 않고 이의원과의 조율 속에 건평씨와의 접촉을 유지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면 이대통령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대선 전과 청와대 비서관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라인이 계속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대통령 또한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추 전 비서관 또한 “전·현 대통령 간에 핫라인을 갖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 않나”라고 말해 ‘핫라인’의 존재를 인정했다.

지난 대선 당시 이대통령 캠프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이 핫라인의 역할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명박 캠프에서 이른바 BBK 사건을 방어하기 위해 가동했던 라인 가운데 하나가 ‘노건평 라인’이었다”라는 것이다. 이 인사에 따르면 당시 이대통령측은 추 전 비서관을 통해 건평씨에게 “오버하지 말아라. 있는 대로만 수사하라”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추 전 비서관은 이에 대해 묻자 “어떤 일이든 한 사람이 노력해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러 요소가 결합해서 일이 이루어진다”라고만 말했다. 그는 “(건평씨와 주고 받은 대화가 효과가 있었냐고 묻자) 효과가 있었다고 할 수도 없고, 없었다고 할 수도 없다. 반영이 되든 안 되든 나는 그쪽에 전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그쪽도 내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라고 알듯 모를 듯한 이야기를 했다.

▲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오른쪽)과 박회장이 사들이 옛 노건평씨 소유 건물(왼쪽) ⓒ시사저널 임준선
최근 만난 한 사정 기관 관계자는 “최근 건평씨가 추 전 비서관에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국세청 조사 등과 관련해 선처해달라고 부탁했고 추 전 비서관이 나름으로 움직인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박연차 회장은 1988년 노건평씨의 임야 9만평과 2002년 4월 노씨 처남 명의의 경남 거제 구조라리 땅과 주택을 사들이고 박회장이 갖고 있는 골프장의 공사를 건평씨가 관여하는 회사가 맡는 등 남다른 관계를 유지해왔다. 박회장은 노무현 정권 때 농협의 자회사였던 휴켐스를 인수해 특혜 시비에 휘말리면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9월 말 박회장을 출국금지 조치했으나 그 뒤 수사에 별다른 진척이 없다. 국세청도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박회장은 지난 10월30일 창사 37주년 기념행사 때 “이달 중순에 세무조사가 끝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12월 중순까지 연장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시절에 도왔을 뿐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지은 죄가 없다”라고 기자들에게 하소연하기도 했다.

지난 11월10일 김해에서 만난 노건평씨는 “박회장이 심하게 우울증이 왔다. 건강이 안 좋아졌다. 어떻게든 노무현 정부 때 사람들을 털어서 흠집을 내려는 것 아니냐. 세무조사를 해도 나오는 것이 없으니 더 한다고 한다. 언론이 이런 것을 좀 써달라”라며 열을 냈다. 그는 추부길 전 비서관에게 박회장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다는 것과 관련해서는 말을 삼갔다. 건평씨는 “…괜히 쓸데없는 말만 나오고…. 되지도 않는 말이다”라고 말하며 입을 닫았다. 그러나 <시사저널> 취재 결과 추 전 비서관이 박회장을 위해 나름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것은 건평씨가 추 전 비서관에게 박회장 얘기를 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사건은 추부길-노건평 핫라인을 통해 우리가 모르는 많은 일들이 오갔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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