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만 잔뜩 넣고 발 빼려나
  • 무주·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08.11.11 13: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주 기업도시, 금융 위기 여파로 좌초 위기…주민들, 대한전선 상대 “집단 소송” 별러

▲ 무주 기업도시 개발이 지연되면서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지난 11월4일 오전 11시, 전북 무주군 내 한 국도를 타고 무주리조트로 향하다 보니 빨간색 현수막이 자주 눈에 띄었다. 현수막에 담긴 내용은 대한전선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무주 기업도시의 개발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대한전선은 무주 군민과의 약속을 이행하라’라고 쓰인 현수막은 군청과 관공서가 위치한 무주군 내 번화가에도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지역 농민회나 청년회 등의 명의로 펼쳐져 있는 현수막의 내용은 왠지 공허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의 말을 들으니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주민 신창섭씨는 “무주가 관광레저형 기업도시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지 3년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까지 토지 보상 공고는 물론이고, 기업도시 개발을 위한 투자자조차 모집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기업도시가 들어설 예정인 무주군 안성면 일대의 주민들은 현재 재산권 행사를 일절 못하고 있다. 지난 2005년 무주군에서 인근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버려 땅을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다. 그렇다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다. 언제 개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농사를 지었다가, 1년 농사를 망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주민들은 보따리를 싸놓고 개발이 되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업 주체인 대한전선이 개발 일정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주민 김용붕씨는 “대한전선이 과연 기업도시 개발을 할 의욕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5년 기업도시 유치 때만 해도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공청회를 갖는 등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발을 빼는 모습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지역 경제 살아날까 기대했다 낙담 

결국 최근 들어 무주군 내 40여 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대책위원회가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지난 9월 임종욱 대한전선 부회장과 SPC(특수목적법인)인 무주기업도시㈜ 송경 대표에게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밝히라는 것이었다. 지난 10월에는 기업도시 문제가 군 의회 안건으로 올라가면서 군 전체의 논란거리로 비화되었다.  

그동안 무주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간은 지난 2005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전선은 당시 무주군 안성면 금평·덕산·공정리 일대(7백67만평 상당)를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로 개발하는 사업 시행자로 선정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총 사업비만 1조4천1백71억원에 달하는 매머드급이어서 현지 주민들에게 큰 기대를 안겨주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업 진행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대한전선은 무주군과 공동으로 무주기업도시㈜를 설립했다. 대한전선이 4백40억원을, 무주군이 18억원을 출자했다. 이 회사 직원들은 계열사인 무주리조트에서 주로 충원했다. 기업도시 개발을 위한 인프라 공사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전라북도는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의 무주 안성 나들목에서 안성면에 이르는 3.5km 구간의 진입도로를 개설하기 위해 4백90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무주군에서도 이주 마을 조성을 위해 50여 억원을 조달하기로 했다. 이와 더불어 토지 보상 작업을 위한 조사도 병행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무주 지역 주민들의 가슴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태권도진흥재단이 추진하는 태권도 공원과 함께 기업도시까지 들어설 경우 지역 경제가 크게 살아날 것으로 기대했다.  무주기업도시 조성 사업에 이상 기류가 감지된 것은 올 초부터이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면서 사업 주체인 대한전선의 자세가 소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민 김봉중씨는 “연초로 예정된 토지 보상 계획 공고가 5월과 7월로 잇달아 연기되었다. 이때부터 지역 주민들을 사이에서 ‘대한전선 철수설’이 흘러나왔다”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동요하자 사업 주체인 무주기업도시나 대한전선은  “일시적으로 사업이 중단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본사의 입장이 달리 정해진 것은 없다. 현재로는 사업 추진 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할 수 없다”라고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무주기업도시가 최근 무주군 사회단체협의회에 보낸 공개 질의 답변서에 따르면 사업 추진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경 대표이사 명의로 작성된 이 답변서는 “국내외 금융시장 불안이나 부동산 경기 악화로 인해 시장 여건과 국내 경기가 불투명한 마당이어서 사업성이 현격히 떨어질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대한전선 역시 이같은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가시화된 금융 위기로 인해 사업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해야 할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로는 사업 여건이 호전되지 않는 한 연기가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기업도시는 특정 기업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사업이 중단된 것은 사실이지만, 사업을 포기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결정된 것이 없다”라고 강조했다.

무주군청 “일단은 지켜볼 뿐 방법 없다”

▲ 무주군 주민이 기업도시 개발 지연에 따른 대책회의를 갖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답답하기는 대한전선의 파트너인 무주군청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태임에도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무주군청 관계자는 “대한전선에서는 투자자 모집이 여의치 않아 사업 진행이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일단은 지켜볼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대한전선이 사업을 접은 것 아니냐”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주민 김용환씨는 “대한전선에서는 공동 투자자를 유치할 때까지 사업 연기가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사업을 접기로 결정해놓고 하는 소리가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한전선이 정부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엄살을 부리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무주기업도시가 작성한 답변서에도 비슷한 의도가 담겨 있다. 답변서는 “중앙 정부나 지자체가 기업도시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등  여건이 호전되기 전까지는 사업 추진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사업이 더 이상 지체될 경우 상경 투쟁이나 피해자 집단 소송을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무주군의회 역시 강하게 대응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무주군의회 이대석 의장은 “무주군 기업도시가 애초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하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대한전선의 애매한 태도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