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있는데 왜 마다할까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8.10.2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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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출신, 금융회사행 ‘러시’공직자 윤리법은 ‘있으나 마나’
▲ 금융감독원(위)의 고위 퇴직자들이 재직 당시 관리ㆍ감독했던 금융회사에 재취업한 사례가 적지 않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우리나라는 누구에게나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공무원에게는 특별한 예외 조항이 있다. 현행 ‘공직자 윤리법’에 따르면, 공무원과 공직 유관 단체의 임직원은 퇴직일로부터 2년간, 퇴직 전 3년 이내에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私)기업체나 법인·단체에 취업할 수 없다.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퇴직 공직자의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공직에 재직할 때의 업무상 비밀이나 인적 관계를 이용해서 재취업한 회사 등에 특혜나 편의를 제공하는 부조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이다.

그런데 금융감독원의 고위 퇴직자들이 재직 당시 관리·감독했던 금융회사에 재취업한 사례가 적지 않다. 매번 이런 문제가 논란이 되고 개선책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좀처럼 달라지지 않고 있다. 금융사에 새 둥지를 튼 금감원 간부 출신들 가운데는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로부터 “재취업에 문제가 없다”라는 판정을 받은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직자의 재취업 허용 제도에 허점이 많다”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고위 공무원의 재취업을 관대하게 승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재취업에 문제 없다” 판정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동철 의원실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퇴직한 금융감독원 2급 이상 임직원 가운데 46명이 금융회사로 재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6년 15명, 2007년 21명 그리고 올해는 8월 현재까지 10명이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등에 재취업했다. 은행에 새 둥지를 튼 임직원이 16명으로 가장 많았고, 증권 12명, 보험 9명 그리고 신용정보사나 신용카드 회사 등이 9명이었다. 금감원 임원 출신은 4명이었으며, 1급 퇴직자는 23명, 2급은 19명이었다.

우선 임원 출신으로 금융사에 재취업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금감원 증권 담당 부원장보로 1년9개월 동안 근무했던 신해용씨는 지난 2006년 2월 퇴사해 3개월 후인 같은 해 5월 미래에셋생명보험의 상임고문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지난 4월부터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정태철 전 증권 담당 부원장보는 지난해 3월 퇴사하자마자 하나은행 감사위원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그리고 3년 동안 금감원 감사로 재직했던 방영민씨도 지난 2007년 6월 서울보증보험 대표이사로 제2의 직장을 선택했다. 2년간 회계 담당 전문심의위원을 지낸 임석식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난해 2월 퇴사해 5월에 한국기업평가 사외이사로 갔다가 올해 3월 다시 국민은행 사외이사로 등재되었다.

특히 금감원 재직 당시 맡았던 업무와 연관성이 많은 금융회사로 자리를 옮긴 이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 2006년 5월 현대증권 감사위원으로 자리를 옮긴 변원호 전 조사1국장은 재직 당시 증권 관련 불공정 거래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는 업무를 맡았다. 행정자치부는 변 전 국장이 현대증권을 상대로 불공정거래를 조사한 사실이 없다며 취업을 승인해주었다. 하지만 참여연대는 당시 “현대증권이 불공정거래 조사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연무 연관성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전 금감원 간부는 “금감원 2급 이상 출신이라면 여러 부서를 이동하면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그 정도 간부급이라면 다른 부서에 있는 사람들과도 잘 알고 지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재직 당시 자신이 직접 업무를 맡지 않았다 해도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 다 연결될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보험검사1국에서 근무한 유양기 코리안리재보험 감사(1급)를 비롯해 보험검사2국 출신인 김용걸 동양생명 감사, 보험검사1국을 거친 손광기 삼성화재 감사, 비은행검사2국의 소순배 신한생명 감사 등도 여기에 속한다. 

2급 출신의 경우, 전주출장소장 출신인 최상훈 전북은행 감사, 보험검사2국의 장명식 녹십자생명보험 감사, 은행검사1국 김기섭 한국상호저축은행 감사, 조사2국의 김기훈 대신증권 감사, 보험검사1국의 이상일 메리츠화재 감사, 증권검사2국의 이원관 CJ투자증권 감사, 은행검사1국의 김상화 제일상호저축은행 감사 등은 자신들이 금감원 재직 당시 처리했던 업무와 연관성이 많은 회사로 옮겨간 것으로 분석되었다.

퇴직 공직자의 직무 관련 업체 재취업은 개인의 축적된 전문성을 활용한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김동철 의원은 “재취업자가 인맥을 통해 청탁과 알선, 로비 활동에 주력함으로써 부패의 연결 고리로 활용되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라고 강조했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앞두고 ‘김앤장’으로 몰려

한편, 지난 2006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퇴직한 2급 이상 임직원 가운데 로펌행을 선택한 이들은 6명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모두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 4월 김앤장은 ‘금융팀’을 새롭게 꾸렸다. 그러면서 김순배 금감원 신용감독국장(1급)이 팀장을 맡았다. 이후에도 금감원 부원장 출신인 김중회 KB금융지주 사장이 지난해 9월부터 한동안 김앤장에 적을 두기도 했다. 

이처럼 김앤장으로의 엑소더스가 이어지는 것은 내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을 앞두고 금융 전문가들에 대한 변호사업계의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금감원의 경우 2급 이상 퇴직자는 퇴직 후 2년 동안, 퇴직 전 3년간 업무와 관련된 금융회사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한 규정에 걸려 퇴직 인사들이 갈 수 있는 자리가 한정되어 있는 사정도 겹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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