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혀’로 누가 거짓말 하나
  • 명운화 (소설가) ()
  • 승인 2008.10.1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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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장편소설 <혀> 표절 논란…심사위원과 작가 지망생 간 분쟁이라 문단 ‘시끌’

▲ 조경란 장편소설 의 동명 소설집 가 출간돼 화제이다. 등단한 지 10년이 넘은 중견 작가에게 작가 지망생이 표절을 주장하며 펴낸 것이다. ⓒ시사저널 이종현

2007년 11월 문학동네 출판사에서는 조경란의 장편소설 <혀>를 출간했다. 그리고 다음해 2008년 9월 글의꿈이라는 출판사에서 동명의 소설집을 펴내는 일이 벌어졌다. 글의꿈 출판사가 펴낸 소설집 말미에 작가 주이란씨는 자신의 신춘문예 응모작을 “조경란씨가 표절했다”라고 주장했다. 주이란씨는 조경란씨의 장편소설 <혀>를 대상으로 저작권 분쟁 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한 상태이다. 소설가 조경란씨는 자신은 “절대 표절한 적이 없으며 <혀>는 이미 10년 전에 구상한 작품으로 신인 작가 주이란씨의 주장은 터무니없고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모호한 구석이 있다. 표절 시비를 따지기 이전에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조경란씨의 <혀>를 발행한 문학동네측은 “이미 10년 전에 조경란씨의 작품 구상을 듣고 출판 계약을 한 바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10년 전에 작성되었다는 출판 계약서에 <혀>에 관한 제목과 시놉시스가 명기되어 있는가라는 필자의 질문에는 “출판 계약서에 <혀>에 관한 제목과 시놉시스는 실려 있지 않다. 출판계약서에 제목과 시놉시스를 싣지 않는 것은 출판계의 관행”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가 곤란한 것은 주이란씨 쪽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소설집에 실린 작품이 과연 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과 동일한 작품인지 증명하기가 쉽지가 않다. 주지하다시피 신춘문예 응모작은 당선작을 제외하고 모두 폐기 처분되기 때문이다. 다만 주이란씨는 소재와 시놉시스를 조경란씨가 저자의 허락 없이 사용했으므로 분명한 표절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소재·시놉시스 흡사해 둘 중 하나 표절 가능성

정리하자면 문학동네에서는 10년 전에 이미 조경란씨의 구상을 듣고 출간 계약을 했다. 하지만 그 구상이 <혀>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주이란씨의 경우에는 신춘문예에 <혀>라는 작품을 응모했다. 하지만 응모작이 과연 존재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두 번째는 저작권 분쟁조정위원회에서 과연 두 작품을 엄밀하게 비교하면서 시시비비를 가려낼 수 있는가이다. 예컨대 저작권분쟁조정위원회에서는 법규에 따라 작품의 외형을 분석하고 표절 시비를 가리는 데 주력할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주이란씨의 경우에는 단편소설이고 조경란씨의 경우에는 장편소설이다. 서술 방법과 인물, 작품 배경, 사건의 진행 방향도 상이하다. 두 작품의 외형을 보고 표절 시비를 가리기는 사실상 힘들다. 하지만 작품의 핵심이 되는 혀라는 예민한 신체 기관을, 나와 타자와의 소통을 변형된 야누스적인 새로운 의미로 상징화한 보기 드믄 소재, 그리고 맛보고, 거짓말하고, 사랑한다는 테마가 흡사하다는 점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다.

소재와 시놉시스가 흡사하다는 점은 분명히 표절 시비를 가릴 수 있는 대상이다. 만일 조경란씨가 주이란씨의 소재와 시놉시스를 차용했다면 그것은 표절에 해당한다. 저작권 분쟁조정위원회에서는 묘사와 소설 전개 방식 등 외형적인 면을 두고 잣대를 들이대며 표절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릴 수 있지만 만일 소재와 시놉시스를 표절했다면 사실 모든 것을 표절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옷을 갈아입고 치장을 했다고 해서 사람이 바뀌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조경란씨는 2007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심사위원이었고, 주이란씨는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혀>라는 단편소설을 응모했다고 밝혔다. 주지하다시피 신춘문예에는 풋풋한 신인들의 작품이 한 해에 수백, 수천 편씩 몰려든다. 신춘문예를 심사한 심사위원들에 따르면 간혹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작품 때문에 애를 먹거니와 참신하고 기발한 소재를 탈락시켜야 하는 안타까움을 표현하기도 할 만큼 신춘문예라는 곳이 소재의 백화점이기도 한 것이다. 심사위원도 신이 아닌 이상 기발한 소재에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작가 지망생이 기성 작가로부터 사사를 받는 경우 작가 지망생의 소재를 차용해 작품을 발표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대학원생의 논문을 교수가 자신의 것인 양 발표하는 경우와 흡사하다. 하지만 대다수 작가 지망생의 속앓이로 그칠 뿐 이슈화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 결과가 어떤지 확연히 알기 때문이다. 김윤식 교수의 저서 <한국 근대소설사 연구>의 표절을 지적한 이명원씨가 대학원에서 왕따에 시달리다가 결국, 대학원을 중도에 그만둔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표절자에 대한 비난보다도 신고자를 왕따시키는 이상한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문단·언론이 대충대충 넘어갈지 ‘주목’

만일 주이란씨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번 사건은 지금까지 문단에서 일어난 표절 시비와는 매우 상이한 경우이다. 신춘문예라는 신성한 부문에서 심사위원이 응모작의 소재와 시놉시스를 슬쩍 훔친 것이기 때문이다. 스타 반열에 있는 기성 작가가 무명의 작가 지망생 아이템을 훔쳤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을 벗어나기 힘든 경우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모든 작가 지망생들은 문예지나 신춘문예에 응모하기 이전에 인터넷 문학 관련 카페에 글을 올린 뒤 응모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심사위원 불신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국 문단에서 표절 시비가 일어난 것이 하루이틀이 아닌 것을 보면 오늘의 사건은 새삼스럽지도 또 놀랄 일도 아니다.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신경숙의 <딸기밭>, 권지예의 <봉인>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스타 작가들의 작품이 표절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한국 문단 역사상 표절로 인해 누가 법적인 제제를 받거나 문단에서 퇴출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마광수 교수가 자신의 시집 <야하디 얄라셩>에서 제자의 시를 실어, “나도 이제 노망이 들었나 보다”라는 반성을 보인 것이 신선해 보일 정도로 기존 표절 시비 당사자들은 침묵과 변명으로 일관해왔고 문단과 언론은 대충대충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렇다면 문단에서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그것은 문단 권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금까지 표절 시비에 휩싸인 많은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어떤 제재를 받지 않고 버젓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보더라도 그 아성이 얼마나 두터운지 알 수 있다.

그 아성이 두터울수록 작가들은 표절의 유혹을 받고 또 무의식적으로 표절을 하더라도 발뺌을 함으로써 세월이 흐르면 유야무야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2008년 현재 대한민국은 사회 각 부분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져 있고 또 진행 중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정신적인 두뇌 중 전두엽측을 맡고 있는 문단이라는 분야는 아직도 줄기차게 1970년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신인 작가들과 작가 지망생들은 기성 문인 앞에만 서면 아직도 한없이 작아지는 약자에 불과하다. 문학 권력자들이 약자의 생살 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일어난 표절 시비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한국 문단의 민주화가 시급히 요구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 문단을 위해 촛불을 드는 집단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 식대로, 혹은 우리끼리라는 울타리에 싸인 한국 문단은 지금 너무 멀리 가버렸다. 너무 멀어 이제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은 잊혀지기 마련이다. 한국 문학 위기의 주범은 표절자에 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한국 문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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