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화려한 식품 안전 대책, 개념부터 바로잡아라
  • 박기환 (중앙대학교 식품공학과 교수) ()
  • 승인 2008.10.06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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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 요소’와 ‘품질 관리 요소’ 명확히 구분해 정책 수립·집행해야 …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도록 생산과 검역 분리하는 조치도 필요
▲ 박기환 (중앙대학교 식품공학과 교수)

매년 반복되는 식품 사고가 올해는 식품 이물과 수입 쇠고기로 마감하는가 했더니, 멜라민 파동이 전세계를 덮쳤다. 그로 인해 다시금 정부의 식품 관리 체계가 허술해서 사태를 더 확산시키고, 국민의 불안을 가중시켰다는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국민이 정부를 못 믿겠다고 하고 수입 식품을 포함한 모든 먹을 거리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의원들까지 나서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한 식품 안전 대책을 제시하고 있어 우리는 지금 식품에 관한 한 ‘대책의 홍수’ 속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기관에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과 예산 확충은 해주지 않은 채 실현이 어려운, 말뿐인 대책만 내놓는다면 더 이상 국민의 먹을거리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 그렇다면 수많은 대책 제시 속에서도 식품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사건 터질 때마다 실효적 대책 없이 국민만 혼란에 빠뜨려

식품은 100% 안전하고 완전한 것이 없기에 현재의 과학적 기술에서 최대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적용해 식품제조업자, 연구자 등은 가공 식품을 개발·생산해야 하고 정부는 소비자가 안심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소비자들은 아직도 생산품의 결함과 식품 위해의 차이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불량 식품, 부정 식품, 위해 식품을 혼동하고 있다. 국민을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만드는 데는 언론의 책임도 크지만, 행정 당국이 식품 안전과 품질을 명확히 구분해 정책을 수립·집행하지 못하고 있는 데 기인하는 바가 크다.

▲ 10월2일 식품의약품 안전청 정의섭 위해관리과장이 멜라민이 검출된 뉴질랜드 타투아 사의 분유 원료 락토페린이 사용된 국내 분유와 이유식에 대한 검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식품 안전이란 식품 섭취로 인해 소비자가 상처를 입거나 질병에 걸리는 등 건강에 위해를 발생시키는 모든 위해 요소를 다루는 것이다. 반면, 식품 품질이란 소비자가 제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들을 말한다. 부정적 요소로는 부패, 오물 오염, 변색, 이취 등이 있고, 긍정적 요소로 원산지, 색, 조직감, 가공방법 등이 있다. 안전 요소인가 품질 요소인가는 식품 안전 확보를 위해 전세계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HACCP 시스템(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에서도 관리기준(control point)과 중점 관리 기준(critical control point)을 결정하는 데 적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벌레, 오물, 머리카락, 비병원성 부패, 내용량 부족, 식품 안전과 무관한 규정 위반 사항 등은 중점 관리 기준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식품의 품질과 안전성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인체에 위해를 주지 않는 식품에 자연적으로 존재하거나 또는 혼입을 완전히 막을 수 없는 이물들에 대한 최대 잔류량(The Food Defect Action Levels)을 설정하고 있다. 이 지침에 의하면 금속성 물질의 경우 7mm의 기준을 설정해 이보다 큰 것은 위해 요소이고 작은 것은 이물로 규정해 품질 관리의 측면으로 접근하고 있다.

크기별로 개에게 먹인 후 위벽에 난 상처 여부로 금속 이물의 위해 여부를 판단한 것이다. 우리가 안전문제로 보는 벌레, 곰팡이 등 소비자 입장에서는 조금 황당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식품의 품질 관리 측면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기준 설정을 과학적 근거에 기초해서 한 것이라 이해 당사자 간 안전 문제 측면의 불필요한 논쟁은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올해 초에 발생한 이물 사고로 인해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이물 관리 지침에 의하면 금속성 이물의 경우 인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줄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하며, 스테플 심·클립·볼트·너트·베어링·2.0㎜ 이상 크기의 철수세미 등 금속성 이물로 범위를 설정하고 있다. 또한 곰팡이가 발생해 보고 대상이 되는 식품은 살균 또는 멸균해 밀봉·포장한 빵류, 음료, 레토르트 식품 등의 제품을 의미하나, 외국의 경우 식품 중 곰팡이는 곰팡이 독소의 섭취로 소비자에게 위해를 줄 수 있는 견과류, 곡류 등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가공 식품의 유통 중 발생하는 이물의 곰팡이와는 식품 안전 측면에서 명확히 구별하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의 식품 안전에 대한 인식을 돕기 위해서라도 품질 관리 측면에서의 이물에 대한 개념 정립과 과학적 관리 체계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당정 협의를 거쳐 발표된 당정 합동 식품안전 +7 대책에 포함된 OEM 수입 식품 및 반가공 수입 식품 여부에 대한 ‘전면(前面) 표시제’ 도입은 소비자가 식품 구매시 품질과 가격 측면으로 고려하는 원산지를 식품 안전 측면으로 접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의 수입 식품 사고는 중국 내 소비 제품과는 무관하게 싼 가격을 맞추려는 국내 수입업자들이 저지른 불법 행위였으나, 그 원인은 무시한 채로 단순히 멜라민 사고로 중국산은 전부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국민이 오해하게끔 하는 대책인 것이다.

규제 완화한다고 식품 안전 확보 규정 삭제하는 일 없어야

한나라당에서 제시한 대책 중 긴급 회수 품목에 대한 TV 자막을 방영하도록 하는 식품 위해 발생 경보제 도입은 그동안 식품의약품안 전청에서 국민에게 위해 정보를 신속히 알리는 방안으로 검토되었으나, 자막 방영에 소요되는 경비가 막대해 실행하지 못한 대책이다. 또한 수입 식품 검사 인력 및 장비의 확충 없이 수입 식품에 대한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수입 식품 정밀검사 비율을 현행 20%에서 30%로 대폭 강화하는 것은 검사 대기 기간의 연장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정부가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형국이 될 것이다. 중국 칭다오 등 수입이 많은 지역에 민간 현지 식품 검사 기관을 설치하고, 안전하고 검증된 식품만 수입을 허가하겠다는 것도 정부의 역할 없이 비용은 소비자에게 넘기고, 책임은 업체에게 지우는 일이다. 정부에서 예산을 확보해 지원하지 않은 채 국내 기업들의 자력으로 현지 검사 기관을 설치하는 비용을 누가 부담하게 될지는 뻔한 것이다. 신속한 회수체계 구축도 식품 이력 추적제가 시행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복잡한 유통 구조를 가진 상황에서 위해 식품 회수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에서는 대책만으로 끝날 대책이 될 것이다.

식품 안전성 확보에 대한 노력은 아무리 해도 과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규제 개혁 완화 차원에서 식품 안전 확보를 위해 필요한 규정들을 삭제했고, 농림수산식품부로 축산식품부분관리를 이관하는 등 식품 안전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매우 부족하다. 식품 검역 체계의 일원화는 식품 사고 때마다 거론되었지만 매번 흐지부지되었고, 전 정부에서 모든 식품 안전 관리를 도맡는 ‘식품안전처’ 설립을 주도했으나 정권 말기의 정치 논리로 무산되었다. 멜라민 사고로 인해 한나라당과 정부가 당정 협의회를 열어 7개 부처에 흩어져 있는 식품 검역 업무를 일원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하는 등 식품 안전 관리 주체를 통합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자 여러 의견들이 도출되고 있다. 식품 검역 체계의 일원화와 관련해서는 영국의 광우병 사태를 계기로 선진국은 생산과 검역이 분리되는 것을 식품 안전 관리의 기본으로 하고 있다. 국가도 견제를 위해 삼권이 분리되어 있고, 건설 사고를 막기 위해 감리가 따로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산과 안전 관리는 분리되어야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생산 기반 구축과 식품 안전 관리 시스템이 확보되는 것이다.

사고가 날 때마다 무조건 식품 행정 기관에 대한 언론과 국회, 소비자 단체의 질타와 이를 모면하기 위해 마구 쏟아내는 대책으로만 끝나는 현재의 대응 방식으로는 더 이상 식품 안전 사고를 막을 수는 없다. 많은 식품 사고들에서 반복되는 ‘거짓말이고, 은폐했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하나의 대책이라도 제대로 달성하기 위한 정책이 수립·실행되도록 충분한 예산과 조직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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