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식장ᆞ학원 안 갈 수도 없고…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09.3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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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암물질 기준치 초과 등 공기 오염 심각 공공 이용시설 정화 대책 마련 서둘러야

일본 와세다 대학 건축학부의 다나베 교수는 최근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루 기준으로 사람이 코나 입으로 받아들이는 물질의 양을 분석한 내용이었다. 총량을 100%로 보았을 때 가장 많이 받아들이는 것은 다름 아닌 공기(83%)였고, 음료수는 8%, 음식은 7%였다.

공기 가운데는 실내 공기가 57%로 공장 등의 산업 배기(9%)나 실외 공기(5%)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의 생활은 실외보다는 거의 실내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1970년대부터 ‘SHS’(Sick House Syndrome·새집 증후군) 등 실내 공기 오염으로 나타나는 폐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왔다. 국내에서도 최근 새집 증후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관련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실내보다 실외 공기의 오염도에 관심이 치우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각 시·도나 지자체에서는 대기 중 미세먼지나 이산화질소 발생률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며 지하철역,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의료기관 등의 오염 실상을 ‘다중 이용시설 등의 실내 공기질 관리법’에 따라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예식장, 영화관, 공연장 등 대중이 많이 찾는 다른 시설물의 경우는 아직 관리 규정조차 없어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다. 하관수 한국오존협회 이사(바이오존코리아 대표)는 “일반인들이 하루의 85~90%를 실내에서 생활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렇다 보니 실내 공기 오염도 또한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아직 관련 규정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 사람들도 당장 피해가 없다는 이유로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 예식장들은 평균 오염도가 기준치보다 60%나 높아 대책 마련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시사저널 사진

영화관 등도 아직 관리 규정조차 없어

특히 겨울철의 경우 실내에 머무르는 비율이 더 높아진다. 추운 날씨로 인해 환기를 소홀히 하다 보니 오염 수치 또한 평소보다 2~3배 정도 증가하기 때문에 대책 마련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환경부는 뒤늦게 예식장, 공연장, PC방, 영화관 등 그동안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공공 이용시설에 대한 실태 조사(2006년 6월~2007년 7월, 전국 2백60개 다중 이용시설 대상)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가 오염 천지에서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식장이나 학원, 영화관 등에서 발암물질인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가 기준치를 훨씬 초과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발암물질에 노출된 채로 결혼식에 참석하고 공연을 감상을 하며, 미세먼지를 마시면서 영화를 보고 있다.

시설별로 볼 때 오염도가 가장 심한 곳은 예식장이었다. 예식장의 경우 오염도가 기준치 대비 60% 초과하면서 조사 대상 중에서 오염 수치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아무래도 장소가 밀폐되었을 뿐 아니라 사람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다른 시설물에 비해 공기 오염도가 높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주기적인 리모델링으로 내장재를 자주 교체하는 것도 오염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시 복지건강국 위생과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오염물질 평가 요소는 신축이나 리모델링 공사에서 발생하는 포름알데히드와 환기 부족으로 인한 이산화탄소량이다. 예식장은 이런 오염 요인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뒤를 이어 학원이 54.2%, 공연장이 40%, 실내 체육시설이 25% 순으로 조사되었다. 이들 시설 또한 밀폐된 공간에 사람이 많이 모이면서 오염도가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일부의 경우 포름알데히드나 이산화탄소가 동시에 높게 나타나는 곳도 있었다.

이 관계자는 “포름알데히드의 경우 국제암연구센터에서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이산화탄소도 많으면 졸음이나 두통,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을 유발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무 시설이나 복합 건축물은 실내 공기 정화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오염도 또한 9.1~13.7%로 낮게 나타났다. 시설별로 비교해보니 오염 물질 또한 일정 부분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예식장이나 공연장, 전시장 등은 잦은 인테리어 공사 등으로 포름알데히드에 비교적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천식이나 기관지염, 폐렴 등을 유발하는 미세먼지나 알레르기성 질환을 일으키는 부유 세균의 경우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PC방이나 노래방, 주점 등에서는 포름알데히드 검출량이 적은 대신 미세먼지나 부유 세균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노래방의 경우 조사 대상 중에서 미세먼지나 부유 세균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복지시설 또한 다른 오염물질보다 미세먼지나 부유 세균이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이용 계층 자체가 오염도에 민감한 노약자나 어린이임을 감안할 때 호흡기 질환 예방을 위한 환기 개선이나 습도 조절 등의 조치가 요구되고 있다.

노영만 한양대 교수(한국실내환경학회 이사)는 “대중들이 이용하는 시설마다 오염도가 다르게 나타나는 만큼 차별해서 접근해야 할 것으로 본다. 특히 청소년 이용이 잦은 학원이나 PC방, 영화관 등은 보수적 기준을 적용해 오염 방지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박미자 환경부 대기보전국 생활환경과 과장은 “예식장이나 영화관, 학원 등은 그동안 개인이 운영하기 때문에 실태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관리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시설까지 조사를 한 만큼 좀더 포괄적으로 공기 오염 방지 대상에 넣어 대책을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박과장은 또 “사회복지시설 등 소규모 시설에 대해서는 시설 관리자 등을 대상으로 한 관리 지침을 개발해 자율적인 관리를 유도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강조했다.

자동차 실내 오염도, 외부보다 2~10배 높아

공공 이용시설은 아니지만 자동차의 실내 오염도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대기자원위원회는 최근 자동차 내부의 오염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자동차 내부의 오염도가 외부보다 2~10배나 높게 나타났다. 발암물질인 벤젠이나 톨루엔의 양도 차량 내부에서 바깥보다 훨씬 많이 검출되었다.

하관수 한국오존협회 이사는 “일반인에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자동차의 ‘새차 증후군’ 또한 심각하다. 특히 겨울에는 실내 온도가 높기 때문에 먼지를 걸러내는 폐의 기능도 떨어지게 된다. 차내로 유입된 먼지가 운전자의 폐에 고스란히 쌓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운전 중에 다량의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트럭이나 버스 등은 가급적 따라가지 않는 것이 좋다. 내부 세차를 자주 하고 차량 내에 기생하는 세균과 곰팡이의 서식 환경을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방향제 사용은 자제해야 한다.

아파트의 경우도 오염 문제에는 각별히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최근 새집 증후군이 논란거리가 되자 새집에 대한 대비는 비교적 철저히 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헌집 증후군’의 오염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

환경 기술 전문 회사인 에코후레쉬 조금용 대표는 “오래된 집안의 곳곳에 숨어 있는 곰팡이와 세균 등은 새집 증후군보다 더 위험하다. 그러나 아무런 지식이나 대비 없이 노출되어 있어 알게 모르게 건강을 해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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