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복지에 ‘내일’이란 없다
  • 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 승인 2008.09.0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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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회 구성원의 이해관계 걸린 문제…정책의 최상위에 올려야 마땅
▲ 노인들에게 삶의 활력을 되찾아줄 수 있는 공동체적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공원 벤치에서 한담을 나누는 노인들 모습. ⓒ시사저널 황문성

한국사의 새로운 흐름은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도래다. 장수 사회의 도래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생활 전반에 걸쳐 예상할 수 없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노인 복지는 결코 단일 계층이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구성원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이다. 복합적인 문제를 다각적으로 풀 수 있는 부가가치가 높은 국가적 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 20세기 빈곤과 질병의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면서 우리 노인 세대는 국가 안보와 경제 발전을 위해 땀 흘려 헌신해왔다. 그럼에도 정작 국가 발전에 기여해온 노인 세대가 소외되고 어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사회 통합을 위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누적되고 있는 노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정책적인 대안과 실천이 뒷받침되어야겠지만, 정부의 참여와 정책만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가족·지역 사회·국가의 삼위일체적 배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노인과 관련된 모든 의사 결정 과정에 노인들의 견해가 반영될 수 있도록 참여 민주주의가 제도화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노인 자신 또한 스스로 배우고 노력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이제 막 고령화 사회의 초입에 들어선 단계이므로 서두르지 말고 지금부터 차근차근 대비해나가야 한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속도로 빨리 다가온 저출산·고령화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우리 나름의 노인 복지 정책이 시나리오에 불과하지 않도록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한다.

▲ 정부가 노인복지에 많은 예산을 책정했다고 해서 나무랄 사람은 없다. 사진은 지난 5월 서울 서초구청 직원 부인 자원봉사자들이 주최한 ‘사랑의 된장ᆞ간장 나누기 행사’에 참석한 노인들 모습. ⓒ연합뉴스

‘실버 쓰나미’, 강 건너 불 아니다

어쨌든 한국의 노인 복지는 이제 전환기를 맞고 있다. 기존의 공적인 노인 복지 정책이 국가에 의해 한층 강화되어야 한다. 사회적 취약 계층에 대해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한편, 새로운 중산층 노인을 위한 새로운 민간 시장 경제에 의한 노인 복지 정책을 추진해나가야 하는 시점에 이르고 있다. 이제 노인 문제는 단순히 노인과 그 가족만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문제이다. 또 이 문제에 대해 대응해오던 기존의 노인 복지적 대응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 대응책이 강구되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21세기 노인 복지는 저출산과 함께 새롭고 광범위한 국가적 대응책을 요청하는 거대한 물결로 다가오고 있다. ‘실버 쓰나미’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한 노인들에게 삶의 활력을 되찾아 줌으로써 고령화 시대에 대응하는 공동체적 지혜가 필요한 시점에 있다.

노인 문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해진다. ‘산업 정보화 사회의 진전으로 일에서 은퇴한 노인들은 경제적으로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오래 사는 사람 중에서 장기 요양 보호가 필요한 노인들은 누구로부터 어떻게 보호를 받을 것인가?’ ‘특히 전통적인 가족 부양 기능이 쇠퇴하는 상황에서 누가 부양 기능을 대신해줄 것인가?’ ‘국가·사회에 의한 노인 부양 부담이 증대할 때 경제 성장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염려해 노인 복지 정책은 계속 뒤로 미루어지지 않겠는가?’ 등 수 많은 문제들이 우리 앞에 하나의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앞으로 노인 복지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노인 복지가 단순히 ‘노인’만을 위한 시혜적인 복지가 아니라 결국, 전체 사회 구성원을 위한 사회권적 복지임을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노년은 전 생애 과정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생애 주기일 뿐 아니라 노인은 사회적 은퇴자가 아닌 연령에 맞는 새로운 사회적·경제적 활동을 시작하는 사회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의 노인 문제는 소득 보장, 복지 선진국에서는 사회 참여와 여가 활동 등 사회적·심리적 문제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고령화 사회를 맞은 선진 국가에서는 연금과 보건·의료 면에서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 사회·가족 및 개인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고령화를 단절적인 인생의 주기로 보지 않고 생애 주기적 관점을 바탕으로 유아기 때부터 노령기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하는 정책적 대안을 강구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과거와는 달리 차세대의 노인 부양 부담을 경감하고, 특히 국가와 개인 그리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연계를 강화해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경제적 안정을 누리고 있는 노인들이 스스로 보호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게 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 무료 진료를 받고 있는 노인들. ⓒ연합뉴스

건강한 사회는 노인의 가치가 인정되고 역할이 살아 있는 사회

건강한 고령 사회는 노년기의 가치가 인정되고 노인의 역할이 살아 있는 사회이다. 적절한 지원을 통해 노인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그것을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 안전망 구축은 현재의 노인뿐만 아니라 이제 곧 노년층으로 편입될 활동성 있는 ‘예비 노인’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노인 개개인의 차원에서도 길어진 노년기를 의존적인 존재로 생활한다고 하는 것은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이므로 생산적이고 자율적으로 살 수 있는 ‘활동적인 노화(Active Ageing)’가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데에는 선진국들도 견해를 같이한다.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노인 문제의 고리를 풀지 않고서는 선진 사회로의 진입은 한낱 허구일 뿐이다. 건강한 사회는 노인의 가치가 인정되고 노인의 역할이 살아있는 사회여야 한다. 노인 자살이라든가 고독사(孤獨死)·인권 침해 등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현안이다. 노인 복지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래서 ‘노인 복지에는 내일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제부터라도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노인 복지에 관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생각을 달리하면 길이 보일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과감하게 노인 복지를 정책 순위의 상위에 올려놓아보자. 노인에 대한 투자는 절대 낭비가 아니다. 가령 정부가 노인 복지에 많은 예산을 책정했다고 해서 잘못했다고 나무랄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닥칠 노후에 대한 가장 확실한 보험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정책 입안자들이 하루빨리 깨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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