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많이 읽고 라디오 들으면 전두엽 치매 예방할 수 있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8.09.0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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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전문의 나덕렬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 “환자로 보지 말고 가족처럼 보살펴야”

ⓒ시사저널 박은숙

흔히 노망이라고 부르는 치매에는 명쾌한 치료법이 없다. 대표적으로 퇴행성 치매인 알츠하이머와 혈관성 치매가 있다. 혈관성 치매는 원인이 밝혀진 만큼 조기에 발견하면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한 번 손상된 뇌세포는 재생되지 않아 대부분의 치매는 치료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어느 질병보다 예방이 중요한 것이 치매다.

국내 최고의 치매 전문의인 나덕렬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화목한 가족관계와 함께 건강한 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치매 예방법이자 치료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전국 치매클리닉에서 사용하는 치매 진단표 ‘한국형 신경심리검사 도구’를 개발해 우리나라 치매 진료 수준을 한 단계 높여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교수를 만나 최신 치매 치료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가장 좋은 치매 치료법은 무엇인가?
환자나 보호자는 약물 치료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연 치유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자연 치유라는 것은 치매 환자를 방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가족이나 지인들이 치매 환자와 더 긴밀하게 접촉하며 보살펴야 한다. 말을 많이 건네고 일도 같이 하며, 한 몸처럼 감싸주어야 한다. 실제로 치매 환자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치료 효과는 180˚ 달라진다. 치매 환자가 병자로서 취급받는 것과 인격체로서 취급받는 것은 치료 효과에서 큰 차이를 드러낸다. 물론 치매의 원인이 뚜렷한 경우라면 약물이나 수술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

원인이 뚜렷하다는 것은 어떤 경우인가?
혈관성 치매가 대표적이다. 당뇨, 흡연, 지방 섭취, 고혈압, 고지혈증 등으로 뇌혈관이 막히면 뇌경색이 생기고, 뇌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뇌세포가 괴사한다. 이럴 때 건망증이 잦아지는데 이를 혈관성 경도인지장애라고 한다. 장애를 빨리 발견해서 약물 등으로 치료하면 효과가 좋다. 그런데 방치하면 뇌 괴사 부위가 넓어져 치매로 발전한다. 이 밖에 영양소 결핍, 신체적 질환, 우울증, 알코올 등으로 생긴 치매는 그 원인에 맞는 약물과 상담 치료로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다. 퇴행성 치매인 알츠하이머도 혈관과 관련이 있다. 혈관성 치매 환자처럼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혈관도 깨끗하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평소 피를 맑게 유지해야 혈관성 치매는 물론 알츠하이머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음주와 치매는 어느 정도 관련이 있나?
알코올은 치매의 적이다. 알코올성 치매라는 용어까지 있다. 이른바 필름이 끊어지는 경우가 잦으면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 알코올은 해마(hippocampus)와 함께 기억을 담당하는 유두체(mammillary body) 등을 손상시킨다. 특히 앞쪽 뇌인 전두엽이 크게 손상된다. 전두엽 치매는 가장 좋지 않은 증세를 보이므로 전두엽의 기능을 활성화시켜 치매를 예방해야 한다.

전두엽의 활성화와 치매 예방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전두엽의 기능이 활발하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 40대 중반의 중소기업 사장이 치매에 걸린 예를 들어보자. 그는 똑똑하고 유머 감각도 풍부했다. 판단력도 뛰어나서 사업가로서 만점이었다. 등산을 좋아해서 우리나라의 모든 산은 다 등반했고, 외국에 있는 명산도 자주 올랐다. 몇 년 전 그는 4천7백m 높이의 히말라야 산에 올랐는데 평소보다 피곤을 느끼더니 결국 셰르파의 등에 업혀 산을 내려왔다. 이후 그는 일에 의욕을 보이지 않고 멍한 사람처럼 지냈다. 뇌 사진을 찍어보니 저산소증으로 전두엽에 이상이 나타나 치매가 생겼다. 이 사례로 논문을 써서 외국 학술지에 발표했더니 외국 의사들도 같은 증상을 보인 환자를 보았다며 e메일을 보내왔다.

후두엽은 기억을 하는 곳이지만 전두엽은 그 기억을 끄집어내 편집하고 조립해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곳이다. 따라서 전두엽에 치매가 생기면 단순히 기억 장애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또, 화를 많이 내고 공격적으로 바뀌는 등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따라서 평소에 전두엽을 활성화시켜 전두엽 치매를 막아야 한다.

전두엽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여러 방법이 있지만 가장 먼저 독서를 추천하고 싶다. 책을 읽으면 전두엽과 후두엽이 쉬지 않고 신경 신호를 주고받는다. 후두엽에 임시 저장해둔 책 내용이 독서하는 동안 계속 전두엽으로 이동한다. 상상하고 분석하기 위한 것인데 이를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이라고 한다. 작업 기억이 전두엽을 활성화시킨다. 또, TV보다 라디오가 전두엽 활성화에 좋다. 방송 내용에 집중해야 하고 그 상황을 상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자리에서 아이에게 부모가 책을 읽어주면, 부모는 독서하고 아이는 라디오를 듣는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뇌의 다른 부분에서도 치매가 생길 수 있지 않은가?
물론이다. 가장 흔하면서 대표적인 치매인 알츠하이머는 후두엽에 생긴다. 전두엽 치매와 달리 알츠하이머 환자는 기억 장애를 호소하지만 가족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알츠하이머도 시간이 지나면 후두엽에서 전두엽으로 퍼지면서 결국, 모든 인지 능력을 상실한다.

알츠하이머는 약물로 조절되지 않나?
유전과 노화로 발병하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환자의 뇌를 보면 베타아밀로이드(β-amyloid)라는 단백질이 많이 발견된다. 이 단백질이 뇌에 붙어 있는 것을 노인반(senile plaque)라고 하는데, 이것이 뇌세포를 손상시킨다. 한마디로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뇌에 쌓이는 것인데 쌓이는 속도를 늦추는 약물이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추는 정도다. 3~5년 내에 치매의 진행을 정지시키는 약물이 개발될 것이다.

건망증과 치매는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
건망증은 기억력이 쇠퇴한 것일 뿐,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건망증은 세세한 부분을 잊는 경우이지만, 치매는 사건 자체를 잊는다. 예를 들어 옷을 입는 법 자체를 잊어버린다. 건망증은 주변에서 힌트를 주면 곧 기억해낸다. 하지만 치매는 끝내 기억을 하지 못한다. 치매의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기억 장애, 언어 장애, 방향감각 상실, 계산력 저하, 성격 및 감정의 변화 등 다섯 가지를 들 수 있다. 이 중 3개 이상에 해당하면 치매를 의심하고 진단받을 필요가 있다.

진단은 어떻게 하나?
혈액 검사나 뇌사진 촬영 등으로 진단할 수 있다. 발바닥을 긁어 반응을 체크하는 물리적인 검사 방법도 있고, 신경심리검사를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겹쳐진 오각형을 보여주고 똑같이 그리게 해도 치매 환자는 공간 지각 능력이 떨어져서 못 그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진단법은 환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를 병력 청취라고 하는데 치매인지 아니면 단순한 기억력 감퇴인지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치매 환자라도 증상이 매우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한 가지 일을 오랜 기간 반복하면 뇌겉질(뇌피질)이 두꺼워진다. 뇌겉질에 그 일에 관한 정보가 쌓이는 것이다. 가족도 못 알아볼 정도로 중증인데, 계산 능력만큼은 탁월한 환자가 있었다. 알고 보니 평생 세무사로 일했던 사람이었다. 계산 능력이 뇌겉질에 쌓여 있었고 다른 기능은 다 소실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평소 살았던 삶의 방식이 치매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보면 된다. 부정적인 사고와 불량한 언행을 했던 사람이 치매에 걸리면 매우 난폭해지고 거칠어진다. 반대로 건강한 언행과 건전한 사고를 했던 사람은 치매가 걸려도 증상이 온순하다. 또 이런 사람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적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나는 이를 ‘예쁜 치매’라고 부른다.

치매는 질환인가 증상인가?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 치매다. 과거에는 치매 노인에게 노망났다고 하면서도 동네 사람들이 그를 배려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 생기는 노인성(퇴행성) 치매를 남의 일처럼 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포용한 것이다. 그런데 서양 의학이 들어와 ‘노망’을 ‘치매’로 보기 시작하면서 질환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덧붙여 설명하면 치매는 상대적 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천재부터 치매 환자까지 일직선상에 있고, 모든 사람은 그 사이에 있는 한 점에 놓여 있다. 정상인이라도 천재들 사이에 있으면 상대적으로 치매 환자가 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환이나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 잠깐 동안이나마 치매를 경험한다.


나덕렬 교수는 누구?

1973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80년과 1985년 서울대 의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 병원 신경과 전임의와 임상교수로 근무했고, 1993년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 신경연구센터에서 연수과정을 밟았다. 1994년에는 미국 플로리다 대학 신경과에서 연수과정을 거쳤다. 1995년부터 현재까지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대한치매학회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10여 편씩 모두 51편의 연구 논문을 해외 저명 학술지에 발표했다. 1995년 개발한 치매진단표인 ‘한국형 신경심리검사 도구’는 전국 치매클리닉에서 치매 진단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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