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정치 실험인가, 본색 드러내기 인가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8.08.1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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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 당내 반대 무릅쓰고 자유선진당과 원내교섭단체 합의…“정체성이 무엇이냐“ 의문 제기돼
▲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가 교섭단체 공동구성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한 후 악수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국민과의 소통을 부정하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창조한국당 김서진 최고위원이 자유선진당과 공조를 합의한 문국현 대표를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공론화 과정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기능적으로, 실용적으로 접근하는 문대표의 행보가 이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당내 민주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라고 비난하면서 “그렇게 이대통령을 닮고 싶으면 혼자 당을 떠나라”라고 요구했다.

문국현 대표의 정치 행보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지난 8월6일 자유선진당과 함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자마자 ‘이념과 정체성을 무시한 야합’이라는 비판의 중심에 놓였다. ‘창조적 진보’를 주창하면서 어떻게 ‘정통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과 공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그 대상이 이회창 총재라는 데 대한 내부 반발이 거세다.

창조한국당 내에서 이총재는 ‘차떼기의 원조’로서 대표적인 ‘부패 정치인’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문대표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이총재의 출마에 대해 “이미 국민에게 두 번이나 버림받은 과거 세력의 재등장에 불과하다. 이명박 후보와 함께 부패 올림픽의 금메달과 은메달을 다투게 되었다”라고 혹평한 바 있다.

그랬던 문대표가 이총재와 손을 잡는 ‘변신’을 강행하게 된 정치적 배경은 무엇일까. 문대표는 “양당의 차이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합의하고 실천해나간다면 우리 정치가 국민에게 좌절이 아닌 희망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이번 연대가 당의 주요 정책을 국회에서 효과적으로 논의하는 방편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공론화 과정 무시하는 행보가 MB와 닮았다”

하지만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전망이 많다. 실제 교섭단체를 구성한 이후에도 양당은 정치적 현안에 대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연주 KBS 사장의 해임 요구 논란부터 그렇다. 자유선진당이 “더 이상의 추태를 보이지 말아달라”라고 정사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한 반면, 창조한국당은 “검찰과 감사원까지 동원해 KBS 장악에 나섰다”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대통령의 장관 임명 강행에 대해서도 “청문회를 열지 못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책임”이라는 자유선진당과 달리 창조한국당은 “대통령의 독단”이라고 비난했다.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문제를 놓고도 찬반 입장이 확연히 갈렸다. ‘대운하 저지’ ‘검역주권 및 국민 건강 수호’ ‘중소기업 육성’ ‘고품질의 공교육 추진’ 등 4대 정책에서 공동 보조를 취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정책 공조보다는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갖기 위한 임시 방편으로 두 당이 뭉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창조한국당은 이번 합의를 통해 원내‘제3당’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추가 협상에서 각 당에서 1인씩 총 2명의 공동 원내대표를 두도록 합의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의석 수 18석인 자유선진당의 입장에서는 부당하다고 여길 수도 있는 결과다. 향후 국회 운영 전반에 영향력을 발휘할 경우 문대표의 정치적 운신 폭도 그만큼 넓어지게 된 것이다.

문대표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예상 밖의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그의 이런 처신이 ‘정치 실험’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실리적이다. 정계 입문 때부터 그랬다. 대선을 앞두고 경제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는 범여권의 영입 제의를 뿌리치고 독자적인 정당을 창당했고, 결과적으로 대권 주자로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당시 장외 주자로 거론되었던 다른 대권 후보들과 대비되는 정치적 성과였다.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일찌감치 대선 불출마를 선언해 정치권과 멀어졌고, 범여권 내 지지율 선두를 달리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문대표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손 전 지사는 장고 끝에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했지만 민주·개혁 진영의 벽은 높고 두터웠다. 후보 경선에서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의 ‘조직’에 밀렸다. “새 정치를 위해 불쏘시개가 되고 치어리더가 되겠다”라던 그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문대표는 원래 미국 공화당 성향의 정치인”

후보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민사회 원로들이 설득에 나섰지만 그는 정동영 전 장관이 후보로 낙점될 것이 뻔해 보이는 단일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불쏘시개’나 ‘치어리더’가 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대선 캠프를 이끌던 핵심 참모들도 후보 단일화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그의 반응은 냉담했다.

단일화를 거부하고 독자 후보로 대선을 치른 문대표의 선택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당초 기대했던 10%대에는 못 미쳤지만 5.8%의 득표율로 1백37만여 표를 획득했다. 단일화 실패의 책임을 떠 안는 정치적 부담이 생겼지만 대외에 현실 정치인으로서 가능성을 입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당 붕괴 위기를 극복하는 승부수도 적중했다. 대선이 막을 내리자 당 내에서는 문대표에 대한 불만이 들끓었다. 창당 작업에 핵심적 역할을 한 고위 당직자들이 “1인 정당의 한계가 드러났다”라는 비판과 함께 집단 탈당하는 사태까지 발생하는 등 남은 당직자들 사이에 ‘당이 문을 닫는 것 아니냐’라는 불안 섞인 전망이 나올 정도로 내분은 격렬했다. 얼마 남지 않은 총선은 물 건너간 듯 보였다.

문대표는 ‘서울 은평 을 출마’를 선택해 당을 회생시켰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재오 의원을 상대로 총선 도전에 나선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 반대’를 기치로 내건 그는 또 한 차례 ‘문풍(文風)’을 불러일으켰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문대표는 여유 있게 당선되었고, 낙선한 이의원은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야당 대권 주자들이 줄줄이 낙선한 것과 대비되어 그 성과는 더욱 돋보였다. 이런 문대표를 놓고 그의 진정한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의 그간 행적을 보면 철저히 실리를 좇는 흔한 정치인에 불과하다.

혹자들은 그의 정치 성향이 사실상 보수에 가깝다고 보기도 한다. 이미 탈당한 창당 주역들의 평가가 그렇다. 그런 만큼 이총재와 ‘연대의 악수’를 나누는 그의 모습을 두고 “놀랍지 않다”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대선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맞았던 한 인사는 “문대표 자체가 가족을 중요시하고 경제적 여유 속에서 기부를 강조하는 미국의 공화당 성향의 정치인이다. 적당한 분들이 만났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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