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다니는 ‘밥줄’ 중국에 내줄라
  • 심정택 (자동차산업 전문가) ()
  • 승인 2008.07.2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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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트럭 수입 추진 중…2륜차는 벌써 시장 잠식
ⓒ시사저널 황문성

고유가, 원자재가 인상, 미국발 금융 위기 등으로 국내 경기가 휘청대면서 서민 경제가 깊은 시름에 빠지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계층이 서민이다. 불황에다 기업 구조조정으로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면 누구나 쉽게 눈을 돌리는 분야가 소자본 창업이다. 10년 전 외환위기 시절, 소액으로 뒷골목에서 창업이 가능했던 치킨이나 김밥 프랜차이즈 업계는 오히려 활황을 맞기도 했다. 당시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의 오너들은 소규모 창업 붐을 타고 지금은 수백억 원대의 자산가들이 되었다는 것이 프랜차이즈업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창업도 소액이나마 나름의 자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들보다 못한 빈곤층의 삶은 더욱 고달프기 짝이 없다. 요즘 농촌에서 수확한 과일이나 채소를 직접 판매하기 위해 주택가나 도심의 빈 공간 등을 돌며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1t 소형 트럭이나 경상용차에 생계를 의지한다. 야채, 생선, 꼬치, 오뎅, 호떡, 샌드위치, 커피 등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옮겨 다니면서 판다. 당연히 소형 상용차의 수요가 늘겠지만 이마저도 고유가에 발목이 잡혔다.

소형 차종을 생계 수단으로 이용하는 길거리 영세상인들은 기름 값을 아끼기 위해 이동 거리를 줄여, 하루 대여섯 곳의 판매 장소를 서너 곳으로 줄이고 있다. 기름 값이 무서워 판매 장소를 줄이다 보니 매출은 이전보다 못한 것이 당연하다.

1t 트럭으로 과일 장사를 하고 있는 김 아무개씨(45)는 “하루 수입의 절반 이상이 기름 값으로 들어가고 있다. 과일을 팔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녀야 하는데 기름 값이 비싸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생계 수단으로 경유를 쓰는 소형 화물트럭과 승합차를 모는 서민들은 경유 가격의 고공비행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1t 트럭으로 이삿짐을 옮겨주는 이 아무개(53)씨는 “지난해 한 달에 25만원 들던 기름 값이 지금은 50만원을 넘어섰다. 정부에서 유류 보조금을 1년에 80만원 정도 준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 적자를 메우기는 어림도 없다”라고 푸념했다.

기름 값 오른 후 판매 장소 절반으로 줄여 매출도 반토막

경기 부진의 골이 깊어지고 기름 값마저 급등세를 지속하자 경유를 연료로 쓰는 소형 상용차 판매가 급감하고 있다. 생계형 자영업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현대차의 1t 트럭 포터는 지난 6월 5천3백35대가 판매되어지난 5월(6천6백94대)보다 20.3% 줄었다. 기아차의 1t 트럭인 봉고의 판매량 역시 같은 기간보다 11.5% 감소했다.

현대차의 1t급 승합차인 스타렉스는 지난 6월 2천9백69대가 팔려 지난 5월(3천4백73대)보다 14.5%가 줄었다. 전년 같은 달(6천5백37대)에 비해서는 무려 54.6%가 급감한 것이다. 올봄 본격적으로 재생산을 시작한 GM대우의 경상용 트럭인 라보는 지난 6월 1천8백52대가 판매되어 5월(1천9백26대)보다 3.8%가 줄었다. 경상용 코치인 다마스만 같은 기간 2.6% 판매량이 늘었다.

지난해 국내 전체 트럭 시장의 규모는 15만1천10대였다. 이 중 1t급(1~1.5t)은 11만8천59대로 전체 트럭 시장의 78%를 점유할 정도로 절대적이다. 1t 소형 트럭 가격은 1천2백만~1천7백만원대다. 현대차 포터2가 일반캡, 수동변속기 기준으로 1천1백89만원이고, 더블캡, 자동변속기 사양이 1천6백72만원이다.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포터는 최근 수년 사이에 30~40% 이상 가격이 올랐다. 기아차 봉고 트럭은 표준캡 기준으로 1천1백65만원이고, 더블캡이 1천4백36만원이다. 1.2t급은 1천5백만~1천6백만원 정도 한다. 스타렉스는 12인승 수동변속기 차가 1천7백75만원이고, 11인승 고급형 자동변속기 차량이 2천5백75만원이다.

시장에서는 현대·기아차가 사실상 시장을 독과점하다 보니 ‘가격 정책도 일방적이다’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 차종들은 시장에 출시된 지 10년이 넘은 장기 베스트셀러다. 그동안 차량 사양 개발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승용차처럼 대규모의 투자 연구 개발이 이루어진 차들도 아니다. 이미 수년 전에 투자 대비 손익분기점이 지난 차들인데도 현대·기아차는 양 차종 가격을 지속적으로 올려왔다.

특히 이들 차종의 고객은 영세 생계형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이고, 차량 구입시 승용차와 달리 리스, 할부 조건도 불리하게 적용받고 있다. 이들 차종이 주연료로 쓰는 경유 가격 상승 압력과 더불어 소비자들이 신차 구입시 받는 비용 압박 또한 심하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일반적인 평가다.

ⓒ시사저널 임영무



차 값 계속 올리는 현대ᆞ기아차 독과점이 문제

대우타타상용차가 소형 트럭 및 버스 사업에 참여할 예정이지만 완전 경쟁 체제로 가기보다는 현대·기아차 독과점에 편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관측이어서 소형 상용차의 가격 인하는 요원한 일이다. 다만 GM대우가 경상용차인 0.8t급 코치인 다마스와 트럭인 라보의 생산을 재개해 영세 상인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다. LPG를 쓰는 이들 차종은 생산이 재개되면서 모델별로 100만원 가까이 가격이 오른 7백만원대의 가격표를 달고 나왔다.

정부에서 내년부터 배기량 1천cc 이하 생계형 승합·화물 자동차의 취득세와 등록세를 전액 감면해줄 방침이다. 하지만 취득·등록세 감면액은 각각 8만원이어서 신차 판매 실적을 좌우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국산차 값이 비싸다 보니 중국차의 수입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은 생계형 창업자들은 품질보다는 가격을 따져 차를 구입한다고 말한다. 많은 창업자들이 국산차 가격도 만만치 않다 보니 중국산 차라도 구매할 뜻을 비치고 있다고 한다. 최근 LS전선은 미쓰비시 경상용차 수입 추진을 검토했으나 이를 접었다. 품질이 좋은 일본차보다는 품질은 낮지만 가격 경쟁력이 있는 중국산 차에 대한 선호가 있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치킨 등 소자본 배달 사업에 있어 2륜 오토바이는 필수적이다. 2륜 오토바이 시장은 일본 유명 브랜드의 디자인을 흉내 낸 이른바 ‘짝퉁’ 중국산 제품들이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중국산 오토바이들은 50㏄의 경우 100만원 내외면 구입이 가능하다.

오퍼상 및 자동차업계에서는 국내 시장 흐름을 반영해 중국산 소형 상용차 및 경상용차 수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소형 상용 전문 업체인 D사 1t 트럭이 중국 현지 가격으로 3만2천 위안(약 5백40만원)이다. 디자인이 세련되지 못하고, 운전석인 캡의 폭이 좁은 등 불편한 사항이 있으나 현지 수출가로 수입되었을 경우에는 가격의 우위를 바탕으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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