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카에 목맨 지자체들
  • 김 지 혜 (karam1117@sisapress.com)
  • 승인 2008.07.1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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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완화’ 움직임에 “지역 경제 살릴 묘약” 법석…환경 단체들과 곳곳에서 마찰

전국 10여 개의 지자체에서 ‘케이블카 대전’이 벌어지고 있다. 케이블카 설치를 밀어붙이려는 해당 지자체와 이를 반대하는 환경 단체들 간의 공방전이다.

지자체들은 저마다 환경부의 규제 완화 조치가 내려지는 대로 케이블카 설치 작업에 나서려 하고 있다. 이미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만반의 준비를 끝낸 곳이 있는가 하면 주민들을 동원해 찬성 집회를 여는 곳도 있다. 이들 지자체는 한결같이 관광객을 유치해서 침체된 지역 경제를 살리려면 케이블카를 반드시 세워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에 맞서 지역 환경 단체와 불교 단체들은 국립·도립공원 내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환경을 해치게 된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낸다. 게다가 지자체가 명분으로 삼고 있는 경제 활성화의 근거가 미약하다며 투명하고 양심적인 자료를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자체들 “적은 돈 들여 관광객 유치 가능”

제주도는 2005년 자체적으로 ‘불가’ 판정을 내렸던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를 다시 검토하고 있다. 강원도 양양군에서는 지역 단체들까지 가세해 ‘(설악산)오색 케이블카 설치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환경부에 관련 법률 개정을 촉구했다. 지리산을 끼고 있는 전남 구례군과 산청군도 ‘침체된 지역 경제를 일으킬 절호의 기회’라며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주민들에게 선언했다.

이렇게 케이블카 열풍이 일자 덩달아 나서는 지자체들도 있다. 전북 남원시 관계자는 “주변 지역에서 하는 일이라서 우리도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아직 구체화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경우에 따라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지자체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골프장과 리조트 건설에 비해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의 국립공원과 도립공원 주변의 지자체들은 케이블카를 세운다면 화려한 지역 풍광을 관광 자원으로 삼아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케이블카의 설치 비용과 관리 비용이 그리 많지 않고, 산위에 설치할 수 있다. 외진 곳에 설치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반발이나 토지 보상 문제와 같은 골칫거리도 없다.

지자체들의 케이블카 설치 경쟁은 지난 5월 이명박 대통령이 시·도지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규제 완화’를 논의함에 따라 가열된 측면이 있다. 얼마 후 박삼구 전경련 관광산업특별위원장(금호아시아나 그룹 회장)까지 공저인 자리에서 “제주도 한라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도록 규제를 완화해 달라”라고 언급한 것이 전해지자 지자체들은 환경부 규제가 완화되리라는 기대에 부풀게 된 것이다.

대구의 ‘갓바위 케이블카’에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논란이 집약되어 있다. 갓바위는 부처가 갓을 쓰고 있는 특이한 형상에다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속설 때문에 늘 사람들로 붐비는 대구시내의 명소다. 대구시는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며 갓바위에 오르는 길 중 하나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지역의 환경 및 불교 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갓바위를 관리하는 선본사 도감 혜찬 스님은 “매년 8백50만명이 찾아온다. 이미 갓바위는 몸살을 앓을 만큼 사람들로 넘치는 곳이다. 케이블카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 환경이 파괴되고 불교 성지가 훼손되는 것은 물론 관광객들의 안전까지 장담 못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환경 단체들은 케이블카가 생기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에 우려를 표명한다. 현재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는 내장산의 천연기념물 ‘굴거리나무’ 군락은 이미 망가졌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관광객들이 걸어 내려오면서 길을 만들고 지형을양분화해 놓았기 때문이다. 갓바위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이 지역 환경 단체들의 주장이다. 불자나 산을 좋아하는 등산객이 찾는 지금에 비해 훼손이 더욱 심해지고 쓰레기 투기 등으로 오염물질이 나돌아 갓바위의 이미지가 사라지게 될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케이블카 추진위원회에서는 케이블카가 생기면 오히려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등산로는 매년 30cm씩 훼손되지만 케이블카는 공중으로 다니므로 관광객들이 삼림과 직접 접촉할 기회가 줄어 훼손 정도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 최근 대구시가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고 있는 팔공산의 갓바위에서 일부 등산객들이 케이블카 설치에 반대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설치업자와 바로 옆 식당만 돈 벌 것”

하지만 환경 단체들은 이를 억지 논리라고 반박한다. 지리산생명연대 김혜경 사무처장은 “케이블카가 친환경적인 수단이 되려면 생태계 보존 계획에 따라 등산로를 막고 케이블카만 운행하는 해외의 모범적인 사례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환경 단체들은 더구나 지자체들이 나서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검증되지 않은 명분 때문에 환경 보존을 위한 법령과 지침들을 고치려 하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현재 국립공원 부근 상가들은 관광객들이 자가용으로 와서 한두 시간 경관을 둘러보다가 준비해온 음식을 먹고 금방 떠나버리는 여행 패턴이 정착되면서 오히려 슬럼화되고 있다. 케이블카를 설치할 경우 이런 경향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의 윤주옥 사무국장은 “경제 활성화는 케이블카 설치 업자와 매표소 바로 옆 식당들에게나 해당된다. 지역 전체의 경제 활성화와는 거리가 멀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갓바위 케이블카 추진위원회’는 케이블카 입구 예정지 인근 ‘집단시설지구’ 상인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 지자체들은 “환경 단체만 빼고 모든 주민들이 찬성한다”라고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갓바위를 관리하는 선본사에서 진행한 ‘케이블카 설치 반대 서명’에는 3천여 명이 참여했다. 어머니와 갓바위를 자주 찾는다는 대구시민 김지은씨는 “노약자나 장애인을 생각해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환경을 살려야 한다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의를 모으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환경부의 이동욱 사무관은 “규정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의 요구를 고려해 합리적으로 개선하려고 한다. 하지만 환경 단체들은 지난 2004년 환경부의 ‘삭도 지침’ 발표 이후 한 건도 없었던 케이블카 사업이 새 정부의 출범과 때맞추어 봇물처럼 쏟아지는 현실을 우려하고 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구태우 사무국장은 “무조건 반대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케이블카 열풍은 잘못되었다. 케이블카를 세우겠다면 대구시청과 추진위는 케이블카 설치에 따른 지역 경제 유발 효과의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확실한 환경 파괴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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