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열 3주 가면 소아암 의심”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8.06.1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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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홍회 삼성서울병원 소아암센터장 / “제대혈 이식의 치료 성과는 선진국 수준”

▲ 서울대 의대 졸업.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소아 암센터장. ⓒ시사저널 황문성

아이가 암에 걸렸다고 하면 곧 사형선고를 받은 것처럼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부모는 눈물을 흘리며 만사를 포기해야 했다. 조기에 발견했어도 오진이라며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다니다 치료 시기를 놓치는 예도 많았다.

지금도 사고사를 제외하면 소아암이 어린이 사망률 1위다. 매년 1천5백명의 아이들이 암에 걸리고 이 중에서 백혈병으로 신음하는 경우가 5백명으로 가장 많다. 이 수치는 계속 늘어나고 있어 향후 5년 내에 어린이 3천명 중 1명이 소아암에 걸리게 된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소아암 중 가장 흔한 암이 백혈병이다. 일반암(고형암)과 달리 혈액암이어서 조혈모세포 이식이 최선의 치료법이다. 과거 조혈모세포는 골수 이식으로 충당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제대혈 이식으로 더 좋은 치료 실적을 거두고 있다.

구홍회 삼성서울병원 소아암센터장은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백혈병 전문의다. 소아청소년과 교수이기도 한 구센터장은 1996년 2월부터 2006년 7월까지 1천건의 조혈모세포 이식을 성공시켰다. 그의 제대혈 이식 치료 성과는 미국과 일본에서도 인정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구팀장으로부터 제대혈 이식을 비롯한 최신 소아암 치료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소아암에서 가장 흔한 암은 무엇인가?
소아암에는 백혈병, 신경모세포종, 악성림프종, 뇌종양, 윌름스 종양(Wilms tumor) 등이 있다. 이 중에서 혈액암이라고 부르는 백혈병이 가장 많은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성인 암 중 백혈병이 2%대인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편이다.

소아에게 주로 발병하는 암이 신경모세포종이다. 신장 윗부분에 있는 부신수질이나 교감신경에 발생하는 암으로 90% 정도가 5세 이전에 발견되고 드물게 태아 초음파로도 발견된다. 이 두 가지 암은 불치병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어온 대표적인 소아암이다.

소아에 생기는 암을 소아암이라고 통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학 교과서에 ‘소아는 성인의 축소판이 아니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소아는 성인과 생물학적 특성이 다르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암세포가 생긴 후 3~6개월이면 진단될 정도로 소아암의 진행 속도는 빠르다. 그러므로 성인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소아를 치료해서는 곤란하다. 당연히 소아에 맞는 치료법이 따로 있다. 특히 소아 질환의 경우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발 없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인암과 비교해 소아암 치료는 어떻게 다른가?
성인암 치료의 정석이 ‘수술 후 항암요법’이라면 소아암의 경우는 그 반대다. 항암요법으로 암 크기를 최소화한 후에 개복 수술로 암덩어리를 떼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항암요법에도 눈에 띄는 차이점이 있다. 예를 들어 뇌종양에는 방사선 치료가 최선책이지만, 뇌가 완전히 발육하지 않은 3세 미만 소아에게 방사선은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런 경우 항암요법을 사용한다. 통상적인 항암요법에서 환자의 체표면적에 따라 항암제의 양이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 소아에게는 항암제 용량을 적정량보다 3~5배 높인 ‘고용량 항암요법’을 시행한다. 선뜻 생각하기에는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소아는 성인보다 신진대사가 뛰어나기 때문에 고용량 항암요법에 잘 견딘다.

몇 차례의 항암요법으로 암 크기를 작게 만들어 수술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몸속에 숨어 있는 미세한 암세포를 한 번에 몰살시키기 위해 고용량 항암요법을 사용한다.

▲ 고용량 항암요법 이후에는 골수 또는 제대혈 이식이 필수다.
  항암제를 고용량으로 사용하면 정상적인 조직도 파괴하는 것 아닌가?
마치 원자폭탄처럼 암을 한 번에 초토화하지만, 주변 조직도 파괴한다. 특히 손상된 골수는 회복되지 않아 골수부전과 같은 심한 부작용이 생긴다. 이때 미리 채집해둔 조혈모세포(Hematopoietic Stem Cell)를 이식하면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다. 조혈모세포는 혈액을 만드는 어미 세포라는 뜻이며, 백혈구·적혈구·혈소판 등을 만들어낸다. 조혈모세포 이식은 최근 매우 주목받고 있는 치료법이다. 여러 불치병을 완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조혈모세포를 구하려면 골수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소아암 중 가장 흔한 암인 백혈병은 골수 이식이 최선이다. 골수 이식은 조혈모세포 이식을 뜻한다. 골수는 주로 형제로부터 구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기증을 받아야 한다. 기증받은 골수라도 조직접합성항원(HLA)이 일치해야 하는데, 요즘 저출산의 여파로 적합한 골수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백혈병 환자 3명 중 2명은 HLA가 일치하는 골수를 구하지 못해 사망한다.

그러나 이런 한계도 이제는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탯줄에 있는 혈액, 즉 제대혈을 이식하는 것이다. 6개의 HLA 타입이 모두 일치해야 하는 골수와 달리 제대혈은 4개만 일치해도 이식할 수 있다. 기증받은 제대혈 중에서도 이식에 적합한 제대혈을 구할 가능성이 골수보다 커진 셈이다. 게다가 이식한 골수가 신체를 공격하는 이식편대숙주반응(GVHD)이라는 치명적인 부작용도 골수 이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구하기 쉬워진 만큼 제대혈 조혈모세포의 치료 성과도 좋아야 할 텐데.
제대혈 이식의 치료 성과는 골수 이식과 비교해 손색이 없을 정도로 좋다. 국제골수이식은행(IBMTR)과 유럽제대혈이식그룹이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소아 환자 중 제대혈을 쓴 환자와 골수를 쓴 환자를 비교해 연구한 결과 3년 생존율이 제대혈 64%, 골수 66%로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3~4년 전까지만 해도 제대혈 이식은 HLA가 일치하지 않아 골수 이식이 어려울 경우에만 차선책으로 사용될 정도로 푸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골수가 있어도 제대혈을 이식할 정도로 치료 성과가 좋다. 이를 바탕으로 성인 암에도 제대혈 이식을 적용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두 단위 제대혈을 연구한 것으로 안다.
제대혈의 단점이 단위당 세포 수가 적다는 점이다. 좀 복잡한 이야기이지만 쉽게 설명하면 환자에게 20개 세포가 필요한데 한 개의 제대혈에 10개 세포만 있을 경우 또 다른 제대혈 한 개를 더 이식하는 것이다. 이를 두 단위 제대혈(Double Unit CBT) 이식이라고 하는데, 2004년 11건 중 4건에서 완치를 보였다. 2005년에는 12건 중 5건, 2006년 15건 중 13건에서 성공함으로써 두 단위 제대혈 이식이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신경모세포종은 과거 골수를 이식해도 생존율이 20~30%밖에 되지 않았다. 두 단위 제대혈 이식을 하면서 생존율을 선진국 수준인 60~70%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치료법은 특히 성인에게 발생하는 다발성 골수종에 좋은 치료 성과를 보이고 있다.

소아의 범위를 몇 세까지로 잡아야 하는가?
과거에는 소아를 15세까지로 선을 그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18세까지로 연장하고 소아과도 소아청소년과로 명칭을 바꾸는 추세다. 소아에서 자주 발생하는 질병이 20대에서 발병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20대도 소아의 범위로 넣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혈액학회가 2년 전 발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15~21세에 발병한 백혈병은 내과보다 소아과의 치료 성과가 더 우수하게 나왔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소아의 범위를 21세까지 잡기도 한다.

소아암의 원인 중 밝혀진 것이 있는가?
발암물질이 암을 일으켰다는 확증이 없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가 암에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는 있지만 소아암과 관계가 있다는 근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아이가 밥을 먹기 전부터도 소아암은 발병하므로 음식과 관계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소아 백혈병은 다량의 방사선, 벤젠, 중금속, 살충제와 같은 화학약품 등이 한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뇌종양의 경우는 바이러스 노출과 화학약품이 의심되며, 악성 림프종은 바이러스 노출과 면역 결핍 등이 원인으로 추측되고 있다.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면 소아암을 예방할 수 없다는 의미로 들린다.
불행하게도 소아암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부분의 소아암은 재발 확률이 낮다는 점이다.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할 수 있는 확률이 80%로 높다. 따라서 조기 발견이 최선의 예방책이다.

예방할 수 없다면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증상은 무엇인가?
아이들은 아파도 표현을 못해 부모의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잘 놀던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고 하면 대부분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 성장통일 경우 아픈 부위를 주물러주면 아이가 좋아한다. 그러나 만지지 못하게 할 정도로 통증을 호소하면 진찰을 받아야 한다. 아이가 평소와 달리 반찬 투정을 하며 밥을 먹지 않거나 간식을 따로 먹지 않았는데도 밥을 먹지 않기도 한다. 또, 평소에 낮잠을 잘 자지 않던 아이가 피곤해하며 계속 잠을 자거나 평소보다 현저히 활동량이 떨어진다면 그 이유를 찾아보아야 한다.

체온이 38℃를 넘으면 감기로 판단하고 해열제를 먹이는데, 고열이 3주 이상 계속되면 소아암을 의심해야 한다. 백혈병인 경우 백혈구 감소와 세균 감염으로 열이 난다. 몸에 멍이 있는 경우도 흔한 증상이다. 입술, 손바닥, 발바닥이 유난히 하얗거나, 손으로 아래 눈꺼풀을 뒤집어 보았을 때 엷은 붉은색이면 혈액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구토를 하기도 하는데, 특히 새벽에 심하면 뇌종양을 의심할 수 있다. 아이 배를 잘 만져보아 덩어리가 잡히는지 수시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소아암의 하나인 윌름스 종양은 신장에 생기며 배가 점점 불러오는 특징이 있다.

소아암 치료에서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소아는 방사선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좋기 때문에 컴퓨터단층촬영(CT)을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물론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좀더 좋은 영상을 얻을 수 있는 CT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병원마다 소아전문의는 있지만 협진에 필요한 세부적인 전문의는 아직 부족하다. 병리과, 소아흉부외과, 소아외과, 소아비뇨기과 등의 전문의가 더 확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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